휘준은 문을 열고 제과점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변두리 허름한 동네 입구에 밤늦게까지 불 켜놓은 유일한 상점. 통행금지 가까이까지 불을 밝혀 외롭고 지친 밤 행인들의 발걸음에 위안을 주는 등대와 같은 곳. 휘준이 이 제과점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여점원이 가게 닫을 준비를 하다가 고개를 들고 휘준을 맞는다. 말은 없이 눈만 들고 가만한 얼굴로 손님을 바라본다. 휘준은 남아 있는 빵들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달라고 눈짓과 몸짓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여점원은 말없이 나무집게를 들어 빵들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그러나 익숙한 손길로 흰 종이봉지에 담는다. 하나, 둘, 셋……. 그런 다음 주문하지 않은 빵을 여러 개 집어 봉투에 넣는다. 그리고는 종이봉지 윗부분을 붙잡고 세 번 살짝 접는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봉지 윗부분을 잡고서 한가운데에서부터 양쪽 가장자리로 날을 세우며 주욱 밀어간다.
여점원은 봉지를 건네주었다.
휘준은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까딱하고는 말없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오늘까지 내리 사흘 자정 직전에 들른 제과점. 첫날부터 여점원은 아무런 말이 없이 빵을 덤으로 넉넉히 넣어주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둘째 날도 그랬다. 셋째 날인 오늘도 역시 똑같았다. 마치 벙어리처럼 아무 말로 하지 않은 채 다소곳한 자세로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을 맞으며, 빵을 봉지에 넣고 돈을 받고 휘준이 나갈 때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무표정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러나 눈빛만은 부드럽고 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휘준은 자신이 이 제과점에 왜 사흘 연속 들르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자정 가까이 이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사흘 전까지만 해도 제과점은 휘준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았다. 단지 불을 밝히 켜놓아 제과점 근처 길이 환해서 위안을 얻었던 것밖에는.
휘준은 제과점에서 나와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갔다. 대전에서 외곽으로 약간 벗어난 대승리 산자락 중턱의 빈민촌. 낮고 허름한 집들의 양철처마가 잇닿아 있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좁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휘준의 마음은 줄곧 제과점 점원에게 가 있었다. 이십대 초반일 테지만 얼굴 생김은 좀 어려 보였다. 대리석처럼 차갑고 흰 피부. 무표정하고 갸름한 얼굴. 미인형은 아닌데도 눈에 금방 띄는 모습. 마음은 얼굴 표정과는 달리 어쩐지 따뜻할 것 같았다.
휘준이 반쯤 부서진 나무문을 밀고 부엌 딸린 방 안으로 들어갈 때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산비탈 중턱의 조악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주욱 늘어서 있는 빈한한 동네. 가로등은 물론 없었다. 자정이 막 넘어가는 시각의 이 판잣집 동네는 여기저기에서 컹컹 짓는 똥개들 소리만 들릴 뿐, 구름이 잔뜩 끼어 별도 없는 시커먼 하늘 아래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암흑의 바다 속 같은 느낌이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 휘준은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방문을 여는 순간 늘 느끼는 실망감이 또다시 확 몰려왔다. 어둡고 냉습한 방 안의 공기. 곰팡내와 눅눅한 냄새가 동시에 밀려나오면서 휘준의 코를 강하게 찔렀다.
휘준은 공중전화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집에는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은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휘준이 대전에 몰래 숨어들어 객지생활을 하게 된 지 세 달. 마치 3년은 지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전에도 여기저기 몇 달간 떠돌았다. 환열이 죽고 나서 혼란시기를 거쳐 이리저리 흘러다니다 이곳까지 왔다. 남들은 도피했다고 하겠지만 휘준 자신은 스스로 세상과 격리됐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나 이 말이나 결국 같은 것이겠지만.
“민기라는 친구가 풀려났대. 법대로 보내달라고 했다나 봐.”
개자식!
“다른 얘기는 없었고?”
“글쎄……. 뭐 별로.”
“알았어. 고마워. 늘 신세만 져서.”
“무슨 그런 말을. 그런데 몸은 괜찮은 거지? 잘 지내는 거야?”
“괜찮아. 내 걱정 마. 다음 주에 또 전화할게.”
대전 친구가 전화로 이렇게 알려주었다. 서울의 성진에게서 들은 내용을 전해 준 것이다.
민기 그놈 결국 저 하나 살자고 동료들 모두 팔아먹었군.
그러나 뜻밖에도 마음에 분노는 오르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해 온 것이었다. 그 자식 민기는 처음부터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주변 친구들 모두 끌어들인 뒤 혼자서 잘난 척해 가며 설쳐댈 때 어딘지 그 말이나 행동에 과시와 가식이 들어가 있는 듯 느껴져서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준은 혼자서 머리를 끄덕이며 대전역 쪽으로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전역 맞은편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남문시장이 나온다. 그 뒤로 돌아서 10여 분 걸어가면 지저분한 공장 몇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끝자락에 용민중학교가 나타난다. 정식 학교가 아니라, 극빈자 가정이나 시골에서 무작정 올라와 떠도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야학과 같은 곳이다. 교사들은 사회 여기저기에서 어찌어찌하여 알고 왔거나 그 학교를 세운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사회인이지만 휘준처럼 대학생도 몇 있었다.
휘준은 서울에서 도피하여 이곳저곳 다니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되어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월급이라고는 한 달 식대도 안 되는 금액. 수업은 오후 3시에 시작해서 밤 9시에 끝난다. 학생들은 생각보다는 제법 많아서 학년별로 한 학급씩 모두 100명가량 된다. 이들 모두 낡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까만 교복을 차려입고 다녀서 마치 공민학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휘준은 오전에는 시장에 가서 물건 날라주거나 심부름해 주며 용돈을 벌고 점심때쯤 학교로 간다. 학교가 끝나고 잔일을 마무리한 뒤 다른 선생님들과 어울려 신세한탄 주고받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가 끝난다. 주로 걸어서. 학교에서 대승리 입구 동네의 집까지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버스로 가자면 한번 갈아타야 해서 교통비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휘준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서울에서 휴학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준은 시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저 사회 부적응자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고 지낼 뿐이었다.
휘준은 학교가 끝나자 늘 가깝게 지내던 구 선생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교문을 나서서 어두운 밤길로 들어갔다. 오른쪽에는 높은 시멘트벽이 길게 세워져 있고 그 너머는 철도 길이었다. 가로등은 저 멀리 남문시장 쪽으로 가야 듬성듬성 있어서 학교와 시장 사이는 깜깜절벽이었다. 땅바닥은 늘 시커먼 흙이 진득거렸고 온갖 불쾌한 냄새가 길과 공기 자체에 배어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이 길을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매일 밤 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휘준 자신은 시장 쪽 가로등의 빛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걸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에 전화로 알게 된 민기 소식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평소 이 길을 걸으며 느꼈던 답답함은 올라오지 않았다.
환열. 개죽음. 그게 뭐란 말인가, 개죽음이 아니라면.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놈이 경찰 정보과에 끌려들어 갔다가 나와서 한 달 만에 죽었다. 강의 받던 도중에 고꾸라지면서.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행정고시로 관가에 진출하겠다며 공부만 하던 녀석이 어느 날 죽고 만 것이다. 제 아버지가 장면 정부 시절 민주당에 잠시 들어갔었던 것이 빌미가 되어 그저 조사만 하겠다고 하며 정보과에 데려갔다가 그대로 정보부로 연행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녀석이 신문방송학과에 다닌 것이 죄가 되었던 것 같다. 혹 미래에 반정부 쪽에 설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미리 화근을 자르자는 속셈으로 끌고 갔었겠지. 그러나 정보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열 자신도 그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곧 죽을 줄 알았으면 어떤 식으로든 폭로했을 것이다.
환열이 죽고 나서 경기도 비봉의 천주교 묘지에 찾아갔을 때 휘준은 분노로 가득차서 복수를 다짐했다. 휘준과 환열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1년간 짝으로 붙어앉아 지냈다. 농담 잘 하고 웃음기 많았던 녀석.
둘은 모두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에 가입해서 명동에 있는 대성빌딩에 자주 드나들며 그 일대를 누비기도 했다. 환열은 졸업하면서 곧바로 대학으로 진학했고, 휘준은 1년 재수한 뒤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시절에도 둘은 자주 만나면서 가깝게 지냈다. 둘 다 정치에는 별 관심 없었고 오직 고시공부에만 매달렸다. 환열은 행정고시, 휘준은 외무고시.
- 그럼 너는 왜 외무고시를 보려는 거야? 영문과 학생이 학문에는 관심 없고 출세에만 눈이 멀었나?
- 출세해야지. 출세, 나갈 出, 세상 世. 세상으로 나가고 싶단 말야. 넓은 세상으로. 여기는 너무 좁아. 숨이 막혀. 맨날 아옹다옹 싸우기만 하고. 정치건 사회건 학교건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 네 속 좁은 생각은 안 하고 세상 탓만 하는구나.
- 속 큰 너는 이 좁은 나라에 남아서 장관이나 해먹고, 족 좁은 나는 저 광활한 바깥으로 나가는 거지.
- 말은 잘 해요. 행동은 못 하고.
- 너보다야 낫구먼.
환열과 휘준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만났다. 다른 곳에 가봐야 시국 이야기로 시끄러워 머리만 아팠다. 얘들아, 니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저 알아서 잘 굴러간다. 니들 할 일이나 해. 휘준과 환열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모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환열이 죽었다. 그 뒤 휘준의 길은 바뀌었다.
유신정권에 독기 품은 휘준. 그러나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음으로는 영화 찍고 소설 쓰고 각본 만들었지만 현실에서는 무기력 그 단어 하나밖에 없었다. 휘준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소리 높여 외쳤다. 휘준이 할 수 있는 일 단 한 가지,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것.
내 친구 죽인 값 네 놈 목숨으로 갚아라!
남들보다 더 크게, 남들보다 더 앞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남들보다 더 처절하게.
그러나 그 대가는 도피였다.
휘준은 온갖 상념에 빠진 채 두 시간여를 걸어 대승리 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제야 휘준은 자신이 이곳까지 온 것을 깨달았다. 다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지친 몸으로 눈을 들어 불빛 환한 제과점을 바라보았다. 아니, 불빛이 환할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캄캄했다. 가로등도 없는 빈민촌 입구. 평소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휘준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어둠에 묻힌 제과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고 몸을 돌려서 골목으로 향해 걸어갔다. 제과점의 캄캄한 유리창보다 더 짙은 암흑 속으로.
음습하고 냉기 도는 방으로 들어간 휘준은 순간 후회했다. 방에는 라면 하나 없었다. 어젯밤 사온 빵도 부스러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집까지 두 시간 넘게 걸어오는 도중에 무엇이라도 하나 사왔어야 했다. 그러나 휘준의 손은 비어 있었다.
휘준은 쪽부엌으로 나가 냄비에 담아놓았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배가 불러지며 허기가 가시는 듯했다.
방에 다시 들어온 휘준은 냉골 바닥 한 편에 개켜두었던 눅눅한 이부자리를 펴고 그 위에 털퍼덕 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색 바랜 누런 전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동네 입구 제과점의 환히 불 밝힌 유리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빵을 봉지에 넣고 손님에게 건네주는 얼굴 갸름한 여자의 모습. 손님이 봉지를 받고 돌아선다. 환한 가게 안에서 손님의 얼굴만 흐릿하니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그 손님은 분명 휘준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희미해서 분간할 수가 없다.
휘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님, 아니 그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옷이나 전체 모습은 분명 휘준일 텐데 얼굴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이다. 휘준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노려보다 윗몸을 일으켰다. 얼굴……. 그 얼굴이 왜 보이지 않는 거지……? 왜? 남자가 점점 다가온다. 그리고는 휘준 앞에 우뚝 멈춰섰다.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휘준은 아니다. 얼굴이 갑자기 크게 확대된다. 보름달처럼, 쟁반처럼, 소쿠리처럼, 함지박처럼 점점 커져간다. 휘준은 팔꿈치를 뒤로 바닥에 대고 윗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에서 그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점점 커져 갔다.
너 누구야?
방 안을 가득 채울 듯이 확대된 얼굴이 갑자기 김이 서리듯 뿌옇게 변한다. 그리고는 우윳빛 유리 조각나듯 갈라지더니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간다. 그 뒤로 또 다른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는데…….
아, 그것은 휘준 자신의 얼굴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절규하는 모습. 그리고는 웃는 모습……. 얼굴이 마구 변한다…….
그래, 꿈이구나……. 꿈이야…….
휘준은 몸을 뒤틀며 눈앞의 얼굴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현실로 돌아오는 휘준…….
눈을 뜨자 천장에 매달린 불빛 희미한 누런 전구가 보였다.
휘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웠다. 이불을 덮지 않은 채 그대로 누워 깜빡 잠들었던 것이다.
이불 속에 들어간 휘준은 꿈에 본 자신의 얼굴을 생각해 보았다.
울고 웃고 부르짖고 고통하는 얼굴.
- 너는 그게 문제야. 뭐가 그리 힘들어? 왜 늘 인상이 쭈글쭈글하냐고? 뭐가 부족한 거야? 애정결핍이냐고? 하나 소개해 줘?
(환열은 휘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 묻지만 말고 대답 좀 해봐라. 네가 먼저 대답을 내놔 봐.
- 대답 필요 없어. 딱 봐도 답 나오는구만. 꼬시러 가자.
- 좋지.
- 돈은 네가 내.
휘준은 생각했다. 난 왜 늘 그런 얼굴이었지? 사실 휘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경제적으로는 아무 어려움 없이 지냈다. 친구들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꿈이라고 할까.
꿈. 한번은 폭풍우 몰아치는 해안가를 헤매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안 되었다. 땅과 하늘도 구분이 안 되었고, 땅과 바다도 구분이 안 되었다. 굵은 철삿줄 같은 물줄기가 하늘에서 이리저리 내리꽂히는 그 밤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묻는다. 자기가 찾는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휘준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남자가 폭풍우 바다 한가운데서 나무토막 하나 붙잡고 저주하는 꿈을 꾸는 것이었다. 자기 여자를 찾을 수 없다고, 잘못 알려준 휘준에게 찾아내라고 울부짖으며 저주하는 남자.
휘준은 가끔 자신의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불안, 방황.
그러나 부족함 없이 자란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암으로. 그렇다고 다 큰 휘준이 모정결핍일 리는 없었다. 어머니는 늘 아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셨으니까.
아버지?
사실 거의 대화가 없었다.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 능력 있는 아버지. 경찰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여기저기 연줄도 많이 닿아 있고, 정치 쪽에도 기웃거리며. 자식한테는 잘 알리지 않았지만 어쩌다 어머니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땅이나 집이나 건물이나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챙겨놓는 것 같았다. 나중에 정계로 나갈 때, 사다리를 올라갈 때 자금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휘준은 그런 말들을 모른 척했다.
그러나 휘준의 마음에는 늘 그런 것들이 뭔지 모를 중압감과 가시로 걸려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 제과점은 불을 밝히지 않았다. 대승리 입구는 자정이 가까우면 암흑세상으로 변했다. 제과점 주변의 자잘한 상점들은 10시만 되면 거의 문을 닫고, 11시 반이 넘으면 제과점 외에는 모두 불을 껐다. 자정 가까이까지 문을 여는 곳은 그 제과점이 유일했던 것이다. 제과점이 낮에 문을 여는지, 또 몇 시에 여는지는 알 수 없다. 휘준은 늘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자정 가까이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휘준은 제과점이 지금도 계속 문을 여는지 알고 싶어서, 아니 사실은 그 여점원이 궁금해서 아침에 늦게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대전역 아래 남문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해진다. 새벽 물건들을 받아 문 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늦게 나가면 그날 하루는 한 푼도 벌 수 없게 된다. 학교에서는 매달 25일에 한 달 식대도 안 되는 금액만 나온다. 저축은 생각지도 못할 형편에서 하루라도 시장 일 건너뛰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휘준은 새벽에는 버스를 두 번 타고 남문시장에 간다. 또한 일주일에 한번은 몸이 약해 휴학하고 대전의 다른 지역에 내려와 있는 대학 친구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서울의 사정을 듣고 있다. 그 친구는 집안이 넉넉한 편이어서 그런지 세상 복잡한 일에는 휘말리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휘준의 부탁은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혹 그 친구가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지도 몰라 휘준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동료들 소식을 달리는 들을 방법이 없어서 부탁했던 것이다. 그 친구가 서울에 있는 휘준의 또 다른 친구 성진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금요일마다 시외전화를 걸어 여러 소식을 듣고 그것을 휘준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그 친구와 성진은 서로 알지도 못한다. 휘준 때문에 전화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이것이 휘준이 서울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집에서 나와 제과점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휘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제과점에 다가가면서 문득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제과점 여자, 그저 확인만 하려고 한 것 아니었나? 아는 이 전혀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아주 잠깐뿐이지만 시선을 끌었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이 궁금해서. 그런데 마음이 설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무슨 속셈을 갖고 있는 거지, 내가?
휘준은 갑자기 낯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혹 그 여자를 보게 된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자 휘준의 가슴은 갑자기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과점 근처에 이르자 가슴이 더욱 쿵쾅거렸다.
- 새가슴. 너는 큰일 하기는 글렀다. 너 같은 놈은 연애도 못해. 말 걸어볼까 말까 망설이다 세월만 다 간다고. 내 말 맞지?
- 새 가슴살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 닭 가슴살이야.
- 닭은 새 아님?
- 네 기준은 새겠지만, 새 기준으로는 너겠지?
- 무슨 말?
- 띨띨하긴. 너나 닭이나 똑같다는 말씀이시다.
- 그럼 용감한 네가 꼬셔봐.
- 통닭이나 먹으러 가자. 네 돈맛 좀 봐야겠다.
(환열은 일어나면서 휘준의 머리를 탁 치는 시늉을 했다.)
그 자식, 통닭구이에 맥주는 무지 좋아했지. 술 못 하는 휘준 앞에 앉아 싱글싱글 웃어가며 맛나게 닭 뜯던 그놈. 다음에 네놈 산소 갈 때는 통닭하고 맥주 잊지 않으리. 하지만 언제 가지? 도망자 신세에.
휘준은 제과점을 지나면서 일부러 유리창 너머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사실 그 여자가 그곳에 있든 없든 휘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은 그곳에서 빵을 샀을 뿐이고, 그 여자는…….
갑자기 제과점 문이 활짝 열리며 중년의 두 여자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나왔다.
“언니는 늘 그 빵만 사네.”
“애들이 이것만 먹어. 무슨 애들이 밥은 먹지 않고…….”
“아이고, 우리 애들도 그래요. 여기 빵이 대전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아.”
“잘 만들어. 그러니까 자정까지 문 열지.”
“아니, 한밤중까지 장사해? 돈 잘 벌겠네.”
휘준은 마치 무엇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쩌자는 생각도 없이 제과점을 지나쳐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혹 그 여자가 안에 있어서 밖으로 지나가는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휘준은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정류장까지 갔다. 길을 건너야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탄다. 포장도 안 된 한길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이쪽 편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사람 외에는 행인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건너편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휘준은 자신의 등 뒤가 궁금했다. 혹 제과점에서 나온 두 여자가 뒤쪽에서 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자신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제과점 쪽으로 간다면 그 여자들 눈에 띄게 되지 않을까…….
휘준은 그대로 정류장으로 가서 섰다. 제과점 쪽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돌려서 버스가 시내에서 오는 방향으로 눈을 향했다. 휘준이 선 곳은 종점으로 가는 정류장이다. 제과점에서 나온 두 여자가 낮게 말을 주고받으며 휘준 쪽으로 걸어오더니 등 뒤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휘준의 눈은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온몸의 신경은 온통 등 뒤쪽으로 향해 있었다. 두 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서 옷가게 쪽으로 간다. 휘준의 눈 방향 쪽이다.
무엇이 다행인지 모르지만 휘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 자신에게 냉소를 보냈다.
휘준은 갑자기 이 짓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시내로 향하는 버스가 저 멀리서 오는 소리가 들렸다. 휘준은 길을 건너가 버스를 탈까 생각하다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아 머뭇거렸다. 빠른 걸음으로 제과점으로 가서 유리창 너머로 안을 확인하고 길을 건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건너편 정류장으로 버스가 거의 다 왔다. 휘준은 다음 버스를 타자 생각하고 제과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망설이면서 버스가 서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뛰어서 건너가면 탈 수 있다.
그렇게 할까?
우물쭈물하다가 휘준이 마음을 정하고 길을 건너려 할 때 버스는 출발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정류장에 내린 것 같았다. 휘준은 건너가서 다음 버스를 타기로 하고 천천히 발을 건너편 쪽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 버스가 떠난 자리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 여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소곳하면서도 갸름한 얼굴. 손에는 두툼한 가방이 들려 있었다. 휘준의 가슴이 갑자기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옆에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는데, 한 손을 들어 막 여자의 어깨를 반쯤 두르듯 올려놓는 중이었다. 휘준의 가슴이 다시 한번 쿵 떨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여자는 생글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휘준의 느낌에. 사실 여자는 저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다정한 모습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휘준의 눈에 들어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어딘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점 방향으로 잠시 걸어가다가 몸을 돌이켜서 길을 건너려 한다. 남자의 발걸음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휘준은 몸을 움찔거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서 시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준은 곁눈으로 두 사람이 제과점 쪽으로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울렁임이었다. 무엇인가 들킨 느낌도 들어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도 했다.
대전 친구를 통해 서울에서 온 소식은 여전히 별 다를 게 없었다. 휘준의 친구들이 약간씩 불편함을 당한다는 내용 외에는. 경찰 고위직인 휘준의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러함에도 불이익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좌천되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경찰에서 옷을 벗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평생 몸 바쳐온 그 조직에서 버림을 받을지언정 스스로 박차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휘준은 아버지에게 미안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버지 일은 아버지가 책임지고, 휘준의 일은 휘준이 정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마음은 아팠다. 그래서 오히려 휘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휘준은 정치는 모른다.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죄 없는 청춘이 죽은 것만은 누군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시하게 말단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최종 책임자, 남의 생명을 취한 자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 그것뿐이다.
휘준은 갑자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날 밤 휘준은 여느 때처럼 어두운 밤길을 두 시간여 터벅터벅 걸어 대승리 입구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아, 제과점 불이 다시 켜져 있었다. 휘준은 저 멀리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어두운 바다에서 등대를 본 듯 휘준은 갑자기 마음이 벅찼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갑자기 시들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 왜 휘준은 남 몰래 마음이 설레고 왜 또 저 혼자서 시들해지는 것인가? 웃기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냉소했다.
휘준은 하지만 마음이 허전했다.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이 꽤 묵직했다. 우울했다.
어느덧 휘준은 제과점 앞에까지 갔다. 불이 환하게 켜진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광경. 문 닫기 직전 상점 안을 정리하는 여점원 모습. 마치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 장면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묘한 호기심이 허전함으로 바뀌었다는 것뿐. 사람도 장소도 시간도 등장인물도 동일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달랐다.
휘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전의 그 모습이 말없이 휘준을 맞는다.
휘준은 눈으로 빵을 골랐다. 돈을 내밀었다. 여자가 빵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봉투 입구를 접고 선을 만들며 접었다. 여자가 봉투를 내밀었다. 휘준은 봉투를 잡다가 일부러 떨어뜨렸다. 갑자기 시들해진 마음이 웃겨서.
여자가 당황해하며 얼른 허리를 숙이고 집어든다. 먼지를 털어내듯 봉투 여기저기를 손으로 만지고 털고 하고는 휘준에게 건네준다. 휘준은 봉투를 받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로 돌아들어 집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지쳤지만 그러나 뭔지 모를 허전한 마음이 오히려 다리에 힘을 주어 빠른 속도로 걷게 했다.
방에 들어간 휘준은 무릎이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음날 휘준은 편지를 받았다. 용민중학교로 편지가 온 것이다. 선생님들이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나 가장 놀란 사람은 휘준 자신이었다. 발신인은 휘준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주소는 서울 구로동. 휘준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휘준이 이 학교에 있다는 사실은 단 한 사람밖에 모른다. 대전의 친구. 그러나 그 친구가 편지를 보낼 리는 없다. 더군다나 서울의 구로동에서.
혹시 자신의 위치가 발각된 걸까? 휘준은 가슴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휘준은 교무실 밖 좁다란 운동장으로 나가 담 쪽으로 걸어갔다. 넓적한 잎이 거의 떨어져 나간 플라타너스 아래로 가서 멈춰섰다.
봉투를 겉에서 만져보았다. 일상적인 편지라기에는 너무 두툼해서 여러 모로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속이 들여다보일 리 없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봉투를 햇빛에 비춰 보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휘준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봉투 뚜껑을 아주 조심스럽게 떼어내기로 했다. 뚜껑 전체가 풀로 단단히 붙여져 있었다. 쉽게 뜯기지 않을 것 같았다. 침을 손가락에 묻혀 살짝 발라 보았다. 뚜껑 종이가 약간 주글주글해졌다. 조심스럽게 손톱으로 한쪽 귀퉁이를 살짝 들어 보았다. 약간 벌어졌다. 그러나 더 이상은 종이의 손상 없이 떼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휘준은 운동장 한 편에 있는 펌프로 가서 물을 손가락에 조금 묻혀 종이에 발랐다. 종이가 많이 주글주글해졌다. 휘준은 교무실로 들어가 면도날을 가져왔다. 그리고 봉투 뚜껑의 틈새로 아주 조금씩 밀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봉투가 드디어 떼어졌다. 조금도 뜯기지 않고.
휘준은 내용물을 꺼내기 전에 봉투를 조금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셋으로 접은 종이 여러 장. 휘준은 봉투 입구에서 새끼손가락으로 종이 사이를 조금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푸른 볼펜으로 쓴 듯한 글씨들이 보였다. 만년필이나 펜촉으로 쓴 것은 아닌 듯했다.
휘준은 봉투를 닫았다. 지금은 보지 말자. 집에 가서 읽자. 궁금하긴 했지만 어쩐지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다. 어떤 내용인지, 누가 보낸 것이지 모르지만 도망자에게 낯선 주소와 이름으로 보낸 편지라면 편한 글은 아닐 것이다. 휘준은 그것을 지금 꺼내어 읽으면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질 것만 같아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자신의 짐작이 맞건 틀리건 어떻든 편지 읽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휘준은 편지 내용이 별것 아닐 것이라 위안하면서도 마음은 영 찜찜했다. 그런 상태로 수업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은 무척 무거웠다. 불안하기도 하고, 현재 자신의 상태보다 더 나빠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자위, 차라리 지옥 끝까지 떨어져 보자는 자포자기하는 마음 등등으로 머릿속이 뒤엉켜 있었다.
두 시간 이상 걸어서 대승리 입구까지 왔다. 제과점의 불 밝힌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 이게 뭐하는 짓이야?
휘준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제과점을 그냥 지나치자고 생각했다. 그쪽으로는 아예 눈도 돌리지 않고 유리창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휘준은 뒷목이 근질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제과점을 지나갔다. 이제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저…….”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나? 나를 부르는 건가……?
앳되고 가는 목소리에 얼핏 짐작이 가면서도 제과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았다.
“저……, 어제 놔두고 가셔서……. 이거…….”
아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했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얼떨결에 손을 내민 휘준.
“…….”
“오늘 나온 새 것으로 넣었어요.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하단 말이지……?
여자는 봉투를 건네주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타박타박 걸어간다.
아……, 그게 아닌데……. 저, 이 이건…….
휘준의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몸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뻣뻣하게 선 것처럼 휘준의 혀와 입술도 굳어버린 듯 생각이 말로 바뀌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저……, 저기…….
여자는 제과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끝났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상황이. 아니, 그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기나 한 것인가……?
휘준은 얼떨떨한 한 채 멍하니 여자가 지나갔을 궤적만 더듬을 뿐이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가버린 이 상황.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 같았다.
휘준이 제과점 앞을 지나며 마음속으로 상상을 한 것이겠지. 헛꿈처럼 사라진 아쉬움으로 인해.
그러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봉지를 보면서 휘준은 혼란에 휩싸였다. 실제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휘준은 멍한 눈길로 봉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웠다. 게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휘준은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혹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까지 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냉골 방으로 돌아온 휘준은 무척 부끄러웠다. 어젯밤 제과점에서 바닥에 떨어진 빵 봉투 집어주는 것을 뿌리치고 돌아왔던 자신의 모습이. 여자는 상당히 무안했었겠지만 그것을 꾹 참고 오늘 새 빵을 담아 돌려준 것이다.
휘준은 이불 위에 주저앉아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 한 구석에는 빵 봉지가 놓여 있었다. 저녁밥은 대개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지어서 먹는다. 저 빵은 내일 아침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 굶거나 혹 라면을 먹기도 했지만 그렇게 살다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열흘 전부터 빵을 사오기로 했었던 것이다.
휘준은 제과점 여자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자신이 빵 봉지를 뿌리칠 때 순간적으로 보았던 그 무안해하던 얼굴, 또한 그 직전에 아무 표정 없이 빵 봉지를 내밀던 다소곳한 모습, 그리고 그 장면 조금 전에 무어라 딱히 잘라 표현하기 힘든 여자의 모습. 아 그래,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는 듯한 모습이었지.
그런데 왜 그렇게 미안해한 것일까? 잘못한 것은 이쪽인데. 혹 손님 하나 잃을까 걱정한 것인가?
가만 있자……. 그 여자가 제과점 주인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남자.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던 그 장면. 길 건너에서 잠깐 본 것이지만 무척 사랑스럽고 아끼는 듯한 눈매였던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휘준은 왠지 모를 낭패감이 느껴지면서 시선을 얼른 돌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 장면은 휘준이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깊은 숲속 맑은 연못가에 사는 얼굴 갸름하고 흰 옷 입은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생각하던 여자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어딘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순수를 망치는 오염. 환상을 깨뜨리는 현실.
휘준은 마음이 씁쓰름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휘준은 벌떡 일어나서 벽에 걸린 윗도리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편지.
휘준은 봉투에서 내용물을 쑥 잡아뺐다. 그리고는 읽어나갔다.
눈에 익은 글씨체. 아버지가 보낸 것이다. 아까 낮에 학교에서 편지지를 슬쩍 들춰보았을 때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글. 생전 처음이다. 어머니나 형제자매 없는 집에서 부자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간단한 메모를 식탁에 남겨놓곤 하던 것 외에 글을 주고받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휘준 보아라’로 시작되는 글.
읽기도 전에 숨이 탁 막혔다. 짐작 반, 기대 반, 그것에 걱정까지 더해서 휘준은 아버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부모가 자식에게 글을 쓸 때는 대개 걱정과 격려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버지의 편지 시작은 달랐다.
‘휘준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거라. 네 청춘에 아비가 개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
그러나 그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편지는 다른 내용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천의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가서 학교 다니며 학도병 피하기 위해 도피했던 일, 육이오 이후 경찰에 들어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길게 썼다. 결혼, 출산, 1남1녀. 그러나 누나는 열 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때의 슬픔과 탄식. 하나 남은 아들에 대한 기대. 이에 대한 내용이 편지지 여섯 장에 걸쳐 장황하게 이어져 있었다. 5년 전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의 심정과 절망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서울 신당동에 있는 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러한 글 대부분은 휘준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것도 조금 있었다. 아버지의 삶 여러 순간순간에 힘든 고비를 넘겼던 일과 고뇌들. 이에 대한 것들이 나열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부분. 아버지는 어차피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지금 비록 한직으로 밀려나 있지만 그에 대한 원망은 없다. 현재 상태에서 퇴직한다 해도 후회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신분이기에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다. 아들의 신념에 대해서는 간섭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도울 수도 없다. 따라서 나중에 후회할 일 없이 아들 스스로 청춘의 생각을 맘껏 펼쳐라. 어디에 있든지 건강하고 아프지만 말아라.
마지막에는 이렇게 덧붙였다.
부자의 연을 끊을 수는 없으나, 현 상황에서는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다.
그런 뒤에 갑자기 편지를 쓴 날짜가 나오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휘준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 글은 아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자의 연을 끊겠다는 우회의 말인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단 둘이 남은 아버지와 아들. 지금껏 살아오면서 살가운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다. 사실 거의 얼굴을 마주 볼 일도 없었지만, 가끔 마주친다 해도 서먹한 표정 외에는 특별히 대화를 길게 나눈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자기 길을 갔던 것이다.
아, 그리고 용민중학교를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휘준이 대전에 있다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로 연락하는 대전 친구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서울의 성진도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아버지는 대전 친구를 모른다. 또한 그 친구와 연결되는 서울의 성진에 대해서도 모른다. 성진에 대해 휘준은 아버지에게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성진은 대학 들어가서 만난 친구다.
경찰 정보력의 승리? 아니면 경찰에 잡힌 다른 동료들을 통해서?
그거야 어떻든 아버지는 휘준의 행방에 대해 알아냈다. 그렇다면 경찰이나 정보부에서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왜 아버지는 휘준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단지 아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전하기 위해서?
…….
휘준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짐이라고는 가방 둘, 몇몇 옷가지, 책 몇 권. 그것이 전부다.
휘준은 벌떡 일어났다. 방과 바깥 부엌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리고 짐을 꾸렸다.
새벽,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는 즉시 떠나야 한다.
경찰이 용민중학교까지는 알아냈을지 모르지만, 대승리 이 골방은 아직 모를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대전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휘준은 사태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르고 여자에 빠져 있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쥐가 닭장의 닭 뒷구멍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때 닭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오히려 뒷구멍 시원한 것에 취해서 결국 생명을 통째로 내어주는 것이다.
한심한 인간.
- 네 가장 큰 단점이 뭔 줄 아니?
(환열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 알아맞혀 봐. 상 줄 테니까.
- 벼엉신. 너는 시야가 아주 좁아. 네 코앞도 볼 줄 모른단 말야. 됐지? 이제 상 주라.
- 에라이……. 그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인 거야. 책상에서 탁상행정하는 일이나 꿈꾸니까 그런 것도 모르지.
- 에그, 탁상행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구나. 우리는 앉아서도 구만리라고. 네가 외교관이 되어 나다닌다고 해도 네 꼬라지엔 삼만리도 못 가. 빨리 상이나 줘.
- 이거나 받아라.
(휘준이 날린 헛주먹에 환열은 오히려 낄낄거린다.)
- 네 솜씨가 고것밖에 안 되는 것 보니까 삼만리도 못 가겠다.
(이번엔 휘준의 주먹이 정통으로 날아갔다. 허공 한복판으로.)
자식. 남 앞일은 그렇게 잘 아는 놈이 남들보다 그렇게 빨리 가버리냐? 나쁜 놈.
휘준은 환열하게 벼엉신 하고 중얼거렸다.
캄캄한 늦가을 밤 새벽, 제법 한기가 돌았다. 휘준은 가방 하나는 손에 들고 다른 하나는 어깨에 걸쳤다. 등에는 작은 륙색. 새벽 첫 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딱 한번 새벽 첫 차를 타본 적이 있어서 그 시간대를 알고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간 뒤 기차나 시외버스로 어디론가 갈 생각이다. 행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역에 내려서 결정할 생각이다.
대승리 골목길을 바쁜 마음으로 걸어갈 때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시커멓게 내려앉아 있었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지만 흐르는 공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도망자의 길다웠다.
휘준이 대승리 입구 제과점 가까이까지 갔을 때 저만치에서 새벽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휘준은 자신이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한 모양이라 여기며 급히 뛰어갔다.
골목을 막 나서는 순간 한길 건너편에 버스가 섰다. 그러나 무어가 그리 급한지 버스는 서자마자 곧바로 출발한다. 휘준이 손을 들며 스톱하고 외쳤지만 버스는 시커먼 하늘에 시커먼 연기와 코를 찌르는 강한 경유 냄새를 내뿜고 그대로 달아나고 말았다.
휘준은 한길 중간쯤까지 가서 멈춰섰다.
그리고 버스가 떠난 자리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두꺼운 외투에 머플러를 쓰고서.
휘준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제과점 여자.
그 여자도 한길로 한 발자국 들어서다 가로등도 없는 동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휘준을 알아보았는지 몸을 움찍거리며 그대로 멈춰선다. 어둠이 장막처럼 뒤덮여 있지만 휘준은 그 모습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영화장면처럼 한길 한복판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러나 여자는 곧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휘준 옆을 지나 길을 건너간다.
휘준은 그 자리에 선 채 몸만 빙그르 돌리며 여자가 지나가는 궤적을 눈으로 좇았다.
여자는 제과점으로 가서 열쇠로 문을 연다. 곧바로 가게 안에서 불빛이 창밖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나오며 한길까지 밝혀주었다.
싸늘한 공기 속 고요한 신새벽, 지저분한 한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내. 그러나 환한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제과점 안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 속의 주인공 사라지고 텅 비어 있는 무대처럼.
휘준은 망연히 제과점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다.
늘 들리던 동네 개 짓는 소리도 없었다.
제과점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휘준에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 시각 천지간 휘준 외에는 삼라만상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제과점 환한 불빛 아래로 여자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는.
여자는 창밖으로 휘준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휘준에게는 여자의 표정 하나하나가 명확하게 보였다. 마치 현미경 들여다보듯 얼굴의 솜털까지 셀 수 있을 듯했다. 게다가 그 너머 펄떡펄떡 뛰는 여자의 심장과 그 속의 마음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여자는 놀란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탐색하는 눈길을 보냈다. 하긴 이 상황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휘준 역시 멍한 눈으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가 앞쪽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유리문을 연다. 그리고 문을 붙잡은 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섰다. 의문부호가 여자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휘준의 마음은 갑자기 요동쳤다. 거센 방망이질. 그러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웬 거미줄? 그래, 맞다. 휘준은 마치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듯한 것이다. 자신은 이제 포로였다.
무슨 포로? 그것도 휘준은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좌표가 어디인지, 어느 곳으로 향해야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등등 모두.
그러나 휘준의 발은 여자 쪽으로 가고 있었다. 물론 휘준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마침 여자도 휘준을 향해 발을 떼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명확치 않은 한길. 휘준이 처음 멈춰섰던 지점과 여자가 제과점 문을 열고 섰던 곳 사이의 중간지점 양쪽으로 각각 정확히 두 걸음, 합해서 네 걸음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은 마주보고 섰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