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묘는 아버지와 대전으로 올라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서산에서 5대째 살았다는 집안에서 어머니가 큰 계를 여러 개 하다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도주하다 시피 나온 것이다. 상묘네는 일가친척 모두에게까지 큰 피해를 입혀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가 없었다. 돈이 될 만한 집안세간은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다 가져가고 나머지는 죄다 부숴버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간 곳을 알지 모르지만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빚쟁이들은 어머니의 친정인 평택까지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 말로는 어머니가 계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몰래 한 바람에 자신은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런 큰 계를 왜 여러 개 했는지 그것은 의문이다. 그 많은 돈이 왜 필요했을까?
상묘의 집은 큰 욕심 없이 농사 조금 지으면서 조그만 옷가게도 하며 살아왔다. 시골이라 장사가 아주 잘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 살 만했다. 어머니는 평소 사치를 부리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다를 떨지도 않았고, 요즘 시골마다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춤바람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혹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어떤 언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평소 성격을 보아 남 몰래 어머니와 함께 큰 욕심을 부리려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단 하나 미심쩍은 것은 오빠에 대한 것이었다. 오빠는 몇 년 전에 외항선 탄다고 나갔다가 그 뒤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오빠가 나간 지 근 2년이 다 되어 집으로 편지 한 장 보낸 것이 전부다.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상묘는 모른다. 부모님만 보았으니까.
상묘는 오빠에 대해서는 늘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 잘생기고 듬직한 체격의 오빠가 언젠가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동생 상묘를 끔찍이도 아꼈다. 나이 차가 아홉 살이나 나서 오빠는 마치 작은아빠 같은 느낌이었다.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에 해군에 갔다가 제대한 뒤 외항선을 타겠다며 집을 나갔다. 상묘와 오빠 사이에는 오빠와 연년생인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한 살인가 두 살 때 병으로 죽었다. 그 뒤로는 아기가 들어서지 않거나 유산되고 하다가 9년 만에 늦둥이로 상묘가 태어난 것이다.
상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전으로 왔다. 집과 가게, 논밭 죄다 빚쟁이들에게 넘어간 채. 마을사람이나 친척들에게 떠난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트렁크와 보따리 몇 개 들고서 아버지와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대승리라는 곳에서도 버스 종점 근처 빈민가로 간 것이다. 그곳을 사람들은 종점리라 불렀다.
종점리에서 오막살이 하나 구해서 자리 잡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는 쓰러졌다. 중풍이었다. 평소 혈압이 있었던 데다가 이번 일로 충격까지 더해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왼쪽 팔다리를 못 쓰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병원에는 거의 가지 못하고 근처의 한의사가 몇 번 온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탓에 상묘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당장에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산에 있는 고모에게 편지로 아버지에 대해 알렸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평택 외가에게도 편지했지만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오빠는 계속 연락두절이었고. 이렇게 해서 상묘는 무인도에 떨어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상묘는 처음에는 동네 근처의 막걸리 집 겸 식당에서 청소하고 설거지해 주며 하루하루 살아갔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수시로 집으로 달려가 기저귀 갈아드리고 밥도 먹여드려야 했다. 게다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온몸을 물수건으로 씻겨드려야 해서 그런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상묘는 체격이 그리 크지 않고 몸매도 여린 편이었다. 그래도 정성껏 돌봐드린 덕에 아버지는 그 뒤 5년이나 살아 있었다. 물론 처음보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긴 했지만 사람들 말로는 아직 5년은 더 끄떡없이 사실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남들은 상묘에게 효녀 심청이라 하며 얼마나 힘드냐고 하지만, 사실 상묘는 아버지가 오히려 힘이고 희망이었다. 아버지를 돌봐드리고 말벗해 드리면서, 그렇게 해서 기적이라도 일어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하며 빌며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날 기적처럼 어머니와 오빠가 나타나 준다면…….
진석을 만난 것은 상묘에게 꿈만 같은 일이었다. 상묘와 같은 동네에서 누나와 매형 밑에서 조카 둘과 함께 사는 진석은 상묘 집에 와서 많이 도와주었다. 특히 낮에 아버지에게 음식 먹여드리는 일뿐만 아니라 기저귀 갈고 목욕시켜 드리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알아 살짝 다리를 절었던 덕에 군대에는 가지 않았고, 뒤늦게 대전 시내 전문대학에 들어갔으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휴학하고 있었다. 그 대신 빈민촌이라서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가고 남아 있는 아이들을 공부 가르치며 자잘한 일 심부름해 주는 등으로 해서 용돈은 어느 정도 생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묘 아버지를 목욕시킨다고 좁은 부엌에서 움직거리다 잘못해서 부엌 벽에 달아맨 선반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그 위에 올려놓은 것들이 쏟아졌다. 그때 무거운 물건이 진석의 절름거리는 허벅지에 떨어져 뼈와 신경이 크게 손상되는 바람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결국 다리를 더욱 절게 되었다. 게다가 이로 인해 상묘 아버지도 충격을 받아 한 달 뒤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뒤 상묘와 진석은 종점리에서 좀 내려온 동네에서 동거하게 되었다.
상묘가 대승리 제과점에 일하게 된 것은 이즈음이었다. 주로 저녁 9시 이후 주인이 집에 들어간 뒤 자정 무렵까지 가게를 맡았지만, 때로는 주인의 요청으로 아침 일찍 또는 새벽에 제과점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고 주인이 나오는 아침 9~10시경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집에 가면 수출용 봉제인형 등을 받아와서 일을 하고 저녁 9시까지 다시 제과점으로 가는 것이었다. 집에 남아 있는 진석은 여전히 부모가 일을 나가고 남아 있는 아이들 돌보고 공부 가르치고 하면서 돈을 벌었다.
상묘가 제과점을 정리하고 자정 전에 나와서 집으로 걸어서 돌아가는 중에 야간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린다. 집은 종점리 방향으로 제과점에서 10여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진석은 그 시간에 맞춰 절뚝거리며 집 앞 골목으로 마중 나온다.
어느 날 자정이 가까워 상묘가 제과점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왔다. 군용모자 비슷한 것을 쓰고 복색이 허름한 남자. 무척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지폐 한 장을 내밀면서 남아 있는 빵을 가리킨다. 말은 없었다. 상묘는 이것저것 넉넉히 봉지에 담아주었다. 손님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나갔다.
다음날 역시 문 닫을 즈음에 그 손님이 왔다. 그 다음날도.
상묘는 제과점에서 일하면서부터 사람을 잘 기억하게 되었다. 성향까지도.
그 손님은 아주 특이했다. 얼굴은 준수한 듯했지만 어딘지 무척 어두웠다. 사흘 동안 매일 제과점에 왔으면서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하기가 귀찮은 것인지 피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곳 근처에서 보는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그뿐. 상묘는 그 사람을 잊어버렸다.
감기에 걸린 진석이 일주일 이상 앓더니 열이 펄펄 나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상묘가 약을 지어왔으나 그것으로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근처 의원에 데리고 갔더니 폐렴 기운이 약간 있다고 한다. 의원에서 지어준 약을 일주일간 먹고 나니 다행히 열이 떨어졌다. 그 일주일 동안 상묘는 제과점에 나가지 못하고 진석 옆에 붙어 있었다.
진석이 몸이 좀 나아지자 아침에 종점리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상묘는 진석 혼자 보낼 수 없어서 함께 종점리까지 30여 분을 걸어갔다. 11월이지만 해도 좋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더구나 진석이 병도 낫고 두 사람이 오랜만에 화창한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니 마음에서 행복감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진석이 종점리에서 잠깐 일을 본 뒤 상묘는 버스를 타고 함께 제과점에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진석이 좋아하는 빵을 얻어오고 싶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가게 문을 닫으면서 남아 있는 빵 중에서 적당히 가져가도 좋다고 주인이 허락했었다. 진석이 마중 나와서 그 빵을 먹으며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상묘에게는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진석 때문에 상묘가 일주일간 가게에 나가지 못했었다.
상묘가 대승리 입구에서 진석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 할 때 그 남자를 보았다. 얼굴이 마주쳤을 때 남자는 급히 얼굴을 돌리는 것 같았다. 상묘의 마음에 조금 궁금한 것이 남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날 밤 가게 문을 닫기 전, 다른 때보다는 좀 일찍 그 남자가 들어왔다. 사실은 들어오기 전부터 터벅터벅 걸어서 오는 것을 보았다. 가게 밖으로 퍼진 빛을 통해서. 그러나 상묘는 별 관심 두지 않았다. 늘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는 사람. 그 정도밖에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서 역시 말없이 표정으로 빵을 가리켰다. 상묘가 빵을 봉지에 넣고 건네주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상묘가 실수한 것인지 남자가 잘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상묘는 얼른 봉지를 주어 건네주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남자가 몸을 홱 돌리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상묘는 그 순간 당황스러워 그만 몸이 굳어버렸다. 남자는 순식간에 옆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상묘는 쫓아나가 골목 입구로 갔다. 그러나 남자는 벌써 저만치 멀리 떨어져 점점 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다음날 상묘는 자정이 가까워 오자 창밖으로 시선을 자주 보냈다. 11시 반이 넘으면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다. 그때부터 가게를 정리하며 15분가량 더 있다가 문을 닫고 나간다. 그러나 전날 그 남자의 일이 신경 쓰여 혹 가게에 오거나 그 앞으로 지나갈지 몰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남자가 보였다. 그러나 가게로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상묘는 준비해 둔 봉지를 들고 얼른 가게를 나갔다. 남자가 골목으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상묘가 어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봉지를 건네주며 몇 마디 한 뒤 곧바로 돌아서서 가게로 들어왔다.
남자가 당황해 하던 얼굴이 상묘를 따라 가게까지 들어왔다. 상묘는 큰 잘못이나 저지른 사람처럼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얼굴도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서 혹시나 하고 상묘는 가게 문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상묘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날 새벽이 되기도 전에 상묘는 집에서 나섰다. 전날 밤 가게를 나오면서 몇몇 가지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이 생각난 것이다. 빨리 가서 해결해 놓고 돌아오기 위해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길을 나섰다. 상묘가 한길로 나가자 마침 대전 시내로 가는 버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급한 마음에 상묘는 뛰어가서 그 버스를 탔다.
그리고 대성리에서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는 순간 남자가 한길 한복판으로 뛰어오다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상묘는 순간 당황했다. 남자가 버스를 타려다 놓친 것이겠지만 왠지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겁도 났다. 가게의 손님이긴 하지만 이 새벽 캄캄한 길에서 마주친다는 것이 평범한 일만은 아니다. 괜히 불안해졌다.
상묘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얼른 길을 건너 가게로 들어가 불을 켰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상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창고에 들어가 얼른 둘러본 뒤 매장으로 다시 나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창밖을 보니 가게 불빛에 비친 남자가 길 한복판에 그대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짐을 잔뜩 들고 메고 한 남자. 어디 멀리로 가려는 것일까? 불량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 동안 보아 온 것에 의하면. 그런데 왜 길을 다 건너지 않고 멈춰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일까? 혹 내가 실수한 것이라도 있는 건가……? 상묘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묘한 호기심이 오르고 있었다.
일단 남자가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상묘는 생각했다. 혹 어젯밤 빵 봉지를 건네준 것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 모든 생각은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상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서서 남자를 바라보게 된 것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는 길 한복판에서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며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상묘는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상묘는 한 발자국 남자를 향해 떼었다. 남자도 발을 떼는 것 같았다. 상묘는 새벽 공기 차가운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한길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도 다가오고 있었다.
상묘가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남자도 멈춰섰다. 떨어진 거리는 네 걸음 정도.
남자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가게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주변이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모습이 상묘의 눈에 클로즈업되듯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절망에 빠진 외로운 도망자의 얼굴이.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