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준은 대전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 그 전에 대전 친구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그 친구네 집은 식당을 크게 해서 부모님은 주로 식당 안에 있는 방에서 지내고 집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전화하기로 약속해 두었다. 친구는 그 전날 서울의 성진에게 전화해서 여러 사정을 듣고는 휘준에게 전해 주는 것이었다. 오늘이 금요일이 아니어서 받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쩐지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가 혹 경찰에 노출되었다면 당연히 전화 받기 거북하겠지.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틀 뒤 금요일에 다시 전화해 보기로 하고 휘준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문득 그 집 전화가 도청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가는 제일 첫 열차에 휘준은 급히 오른 것이다. 가능하면 대전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자고 생각하고서.
기차에서는 가까스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혹 헌병이나 사복형사가 불심검문을 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휘준에게 편지했다는 것은 아직 위급하지는 않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당분간은 마음 편히 가지기로 했다. 아마도 며칠 뒤가 되면 용민중학교가 발칵 뒤집힐지도 모르지.
기차에 타고 나서 한동안은 긴장이 되어 신경이 뾰족했으나 점차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밤잠도 설친데다가 긴장이 풀리고 기차바퀴의 규칙적인 소리 때문인지 어느새 슬며시 잠이 들어버렸다.
기차 덜컹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휘준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새벽에 짙게 흐렸던 날씨는 어느새 화창하게 변했고 햇볕이 동쪽 하늘에서 차창으로 따사롭게 비쳐들어 창가에 앉은 휘준은 온몸이 나른한 채 어렴풋이 의식이 돌아오고 선잠 속에서 꿈과 현실이 뒤얽혀 있었다.
캄캄한 새벽의 한길. 마치 기찻길처럼 철로가 깔려 있었다. 저 멀리 아련한 곳에서 환한 불빛이 보인다. 산속 오막살이에서 비쳐 나오는 호롱불같이. 그런데도 휘준은 그곳이 제과점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곳에서 누군가가 밖을 내다본다. 저 멀리에서. 여자……. 손을 흔드는 것인가……? 빵 봉지……. 여자가 그곳에서 나온다. 어느 샌가 휘준 앞에 다가와 있다. 그 여자. 빵 봉지를 내민다. 받아야지. 휘준은 손을 내밀어 받으려 한다. 그러나 기차가 떠나고 있었다. 휘준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민다. 여자가 뛰어오고 있다. 그러나 기차는 속도를 내서 달려갔다. 덜컹덜컹…….
휘준은 차창 옆에 기댄 채 꿈 반, 현실 반, 공상 반으로 아련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끼며 마음이 아파왔다.
그 여자 이름은 아직 모른다.
어젯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 아니…….
저번에 빵 봉지 안 받고 가셔서…….
…….
아침식사 안 하셨으면, 남아 있는 빵이 있는데 좀 드릴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일찍 나가시네요.
멀리 갈 일이 있어서…….
오래 가시나요?
네, 좀…….
다시 오시면 꼭 들러주세요.
여자는 이 말을 하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휘준은 여자가 제과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모습이 여자를 불편하게 할 것 같아 휘준 자신도 돌아서서 길을 건너 정류장 표지판 앞에 가서 섰다.
기차 안에서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귓전으로 들어왔다. 이제 선잠도 거의 달아났다. 차창 밖 멀리로 보이는 산과 들. 느릿느릿 지나가지만 그래도 쉬임없이 뒤로 흐른다.
휘준은 나름대로 혼자 상상을 했다. 여자가 한 말의 의미. 무엇일까? 그냥 단순히 손님으로서 또 들러달라고 한 것일까? 혹 그 말에 어떤 의미를 두면 안 되는 것일까? 예를 들면 ‘보고 싶으니 꼭 다시 와서 만나자’는 의미를 넌지시 담았다든지…….
휘준은 스스로도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남자가 생각났다.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두르던 그 남자.
누굴까?
꽤 다정하게 보였다. 여자에게 그렇게 할 정도면 보통 사이는 아닐 것이다. 하는 행동을 보아서는 가족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자가 앳돼 보여서 설마 결혼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애인……?
그런 생각을 하니 괜스레 낭패감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앳되고 어딘지 여리게도 보이는 그 여자에게서는 그런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휘준은 또다시 마음이 설레졌다. 제과점으로 여자를 찾아갔을 때처럼.
하지만 사실은 언제 그 여자를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여자에게 또다시 다가가지 않으면 그대로 끝나게 된다. 아쉬웠다. 괜히 우울해졌다. 그 여자, 이렇게 끝나는구나…….
휘준은 갑자기 온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휘준은 현실로 눈을 돌렸다. 부산에 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열차에 오른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그 여자 일보다 더 중요했다. 당장 오늘밤 어디에서 자야 할지도 알 수 없으니.
부산역에 내린 휘준은 우선 자신이 안전하게 이곳에 온 것에 안도했다. 평범한 행인. 가방을 들고 메기는 했지만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선 갈 곳을 정해야 한다. 부산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해운대 해수욕장에 한번 와본 것밖에 없다. 그때 부산 시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웃거렸던 광경들. 그러나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휘준은 그 당시 민박을 하던 곳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동백섬 근처에서 내려 이 골목 저 골목 들락날락하며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부산대 쪽으로 올라갔다. 버스가 좁은 길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한참 간 뒤 부산대 가까이 가서 내렸다. 그러나 부산대로는 가지 않고 그 위쪽으로 보이는 금정산으로 향했다.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일부러 걸어서 갔다. 범어사 방향 대신 서쪽의 고당봉 아랫자락으로 들어서자 판잣집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사방은 캄캄했다.
휘준은 허름한 여인숙으로 찾아갔다. 일단 하룻밤 이곳에서 보내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휘준은 부산시립도서관이 있는 부전동으로 갔다. 이 도서관은 한국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유명하다. 1901년 일본 상인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공공도서관으로 변하고 광복 이후 부산시립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으며, 1963년 동광동에서 현재의 부전동으로 이사했다.
휘준이 도서관을 찾은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니체의 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시와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 《니체의 고독한 방》. 그 책을 휘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다. 당시 그 강렬한 인상을 잊지 못해 대학 1학년 때 다시 읽었으나 마음이 산란했던 탓인지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서 책을 덮고 말았다. 그러나 휘준의 머릿속에는 늘 그 책의 구절들이 맴돌고 있었다.
특별히 철학적이지도 문학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염세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았던 그 당시 휘준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집 한 권, 철학책 한 권은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물론 거의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단지 그 책들이 자신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스스로가 방황하는 지성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휘준은 니체의 책을 서가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전에도 그러했지만 책표지 뒷면을 먼저 보았다.
오오 고독이여
그대 나의 고향인 고독이여
눈물 없이 그대에게 돌아가기엔
나는 너무도 거친 이국땅에서
너무도 거칠게 살았노라
오오 고독이여
그대 나의 고향인 고독이여
얼마나 축복되고
얼마나 우아하게
그대의 목소리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리이까
우리는 서로 묻지 않노라
우리는 서로 호소하지도 않노라
우리는 활짝 열어젖힌 문을
함께 걸어가노라
– ‘고독을 운명처럼’ 중에서
이 시는 휘준의 사춘기 시절을 온통 휘집어 놓았다. 고독의 의미도 철학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그 나이였지만 그 시의 강렬함에 빠져 얼마나 방황했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도 휘준은 그때의 영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배부른 놈이 배곯는 고독을 어찌 안다고 떠벌이누.
- 척안소붕(斥鷃笑鵬).
- 아이고, 알파벳만 좀 읽나 했더니 장자를 다 아네.
(환열의 코웃음.)
- 연작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오.
- 노는구나. 철학도 모르는 놈이 니체 좀 읽었다고 나불대더니 이제는 장자까지 읊어대는구나. 그깟 글 하나 읽고서 고독이니 고자니 지랄하더니 앞으로 장자까지 들먹이면 눈깔 시어서 어떻게 쳐다보겠냐?
- 그게 바로 내 문제다. 너무 배불러서 뵈는 게 없어. 그래서 고독한 거다, 인마.
그래, 맞다. 너무 풍족하게 자라 오히려 방랑과 방황의 길을 동경하는 나.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액세서리로 즐기려는 웃기는 인간.
그렇게 잘 아는 네놈은 왜 그렇게 일찍 죽었냐, 이 병신아!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잖아, 못난 놈아.
휘준은 책의 중간쯤을 펼쳤다. 아마 그쯤이 지난번 읽다가 만 부분이리라.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책장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어렴풋이 생각난다. 대학 1학년 때 두 번째로 읽으며 힘겹게 느껴져 더는 나아가지 못했던 부분이. 게다가 니체가 강조한 19세기적 가치를 20세기에 읽는 혼돈스러움으로 인해 포기했던 부분들이.
휘준은 이번에도 또 책을 덮었다. 읽을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니체보다 실존의 문제가 더 급했다. 이런 상태로 니체를 읽었다가는 그를 부정할 것만 같아 겁이 났다. 어쩐지 제과점 여자처럼 신새벽 환상으로 놔두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았다. 아련한 그리움으로만 남도록.
니체와 여자. 생각해 보니 꽤 어울리는 조합 같았다.
휘준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 알록달록한 단풍. 몇몇 나무는 벌써 가지만 앙상하게 내밀고 있었으나, 아직도 푸른 나무들이 더 많이 있었다. 서울이나 대전보다 남쪽이어서 그러한 것 같았다.
그리웠다. 모든 것이 그리웠다. 저 위쪽에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이. 휘준이 두고 온 서울과 대전이 모두 그리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서울의 거리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것, 집이었나? 아니야, 학교? 그것도 아니다. 그들보다 더 멀고 더 오래된 기억들. 어릴 때의 기억들? 돌아가신 어머니? 그래, 어머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운 어머니. 그런데 그것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 있는 듯했다.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인지도 모르는 것……. 가슴이 아려왔다. 떠올려야 하는데 자꾸만 멀어지고 희미해져 가는 기억……. 붙잡아야 한다. 그 기억. 놓치면 안 돼, 그 여자…….
여자? 휘준은 깜짝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래, 짙은 어둠 속, 아니 유리창으로 나오는 빛 속에서 마주섰던 그 여자.
그 새벽 시간에 그 여자 너무 당돌했던 것 아냐?
휘준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 시간에 거기까지 나와서 정체 모를 남자 앞에 그렇게 당당히 섰을까? 무섭지도 않았나? 내가 누군 줄 알고. 겉보기엔 가녀리던데 속에는 그런 담대함이 있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캄캄한 새벽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휘준은 그 새벽의 마주침이 감미롭게 느껴졌다.
그 시간에 자기 앞까지 와준 여자가 고마웠다. 휘준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았다. 대승리를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여자. 영원히.
여자와 마주섰던 그 순간.
그러나 잊으면 안 된다.
절대로…….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