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가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쉴 때는 뭐 하세요?”
“책 읽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열에 여덟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의외라는 듯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제 얼굴이 책이랑 안 어울려서일까요?
아니면 책 읽는 남자가 흔치 않아서일까요?
“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도 선뜻 “네”라고 대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책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늘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손이 잘 안 갈 때도 있고, 사놓고 장식으로 비치해 둔 책도 많으니까요.
저는 책을 주로 현실에서 도망치는 용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때, 누군가 나를 지치게 만들 때, 일이 버거울 때...
책은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마법의 문’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문을 열고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몇 시간을 떠돌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고,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이 생기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책을 읽으시나요?
나와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호기심이 2017년, 책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전에도 다른 책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었지만,
그곳은 주로 발제자가 발표하듯 내용을 설명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듣기만 하는 형식이었죠.
발제 내용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은근히 ‘뿔 달린 사람’처럼 바라보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물론 모든 모임이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좁은 경험의 세상 속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홍보도 없이, 아주 조용히 책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한두 달쯤 지나서야 첫 번째 멤버가 가입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이 여자분 같아 보였고, 당시 총각이던 친구들에게 은근히 "여자가 모임에 들어왔다"라고 소문을 냈던 기억이 납니다. 총각인 친구 두 명이 가입을 하고 네 명이 되니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오프라인 모임은 생각도 안 하고, 온라인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에 드넓은 온라인 세계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 복잡해질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임 이름 앞에 지역명을 붙여, 같은 지역 사람들만 유입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걱정이었죠.)
그렇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점점 진짜 ‘모임다운’ 모임이 되어갔습니다.
모임을 만들 때 정한 원칙은 단순했습니다.
1. 재미있는 책을 읽자.
그 시기엔 인문학 열풍이 불던 때라, 대부분의 독서 모임이 인문서 중심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 숨이 막혔습니다.
(아마 제가 아는 게 부족해서 더 그랬겠죠.)
그래서 ‘내가 대장인데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골라보자, 하고 살짝 못된 마음도 품었죠.
2. 나이와 직업은 묻지 말자.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먼저 묻지는 않습니다.
나이를 알면 나도 모르게 거리감을 두게 되고,
직업을 알면 편견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3. 책이 중심이 되는 모임을 만들자.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원칙입니다.
어떤 모임이든 결국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무너지니까요.
그래도 ‘사람보다 책이 먼저’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문제는 ‘그럼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 건데?’라는 질문이 남았다는 거였죠.
제가 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책을 읽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다 다를 텐데,
그걸 서로 이야기만 나눠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책을 분석하고 해석할 능력도 없었으니,
‘일단 해보고, 이상하면 바꾸지 뭐!’
이런 막가파 정신으로 모임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책 모임을 통해 만나온 사람들,
함께 읽은 책과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안에서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들까지—
이제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꽃이 피는 봄.
같이 책 읽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