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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Dec 04.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_ 허허로운

# 10 - 시골 버스 안에서 들은 이야기

초겨울. 읍내로 나가는 시골 버스. 장날이라 승객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서서 가는 사람은 없고, 버스 안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쳐 들어와 오히려 한가한 느낌을 줍니다. 

 

앞자리에 앉은 두 할머니가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가 졸음기 살짝 밀려오는 귓가에 들려옵니다. 들으려고 듣는 게 아니라 그냥 들려옵니다.     

 “얘기 들었어? 생거리에서 사고 난 거.”

 “누구 초상 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아는 사람이야?”

 “여기야 뭐,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지.”

 “하긴.”

 “참 이상도 하지. 그 집 남자, 죽은 사람. 나이가 쉰 조금 넘었으니 한창이지. 평소에 잔병도 없었고.”

 “그런데?”

 “그날따라 저녁 먹고 바로 잠에 들더래. 그러다가 자정 무렵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잠바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더라지.”

 “갑자기 무슨 긴한 일이 생각났나.”

 “마침 그때까지도 집안일을 하느라 부엌에 있던 마누라가 이 캄캄한 밤중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대지.”

 “그랬더니.”

 “뭐라고 궁시렁, 대답하는데, 무슨 말인지 자세히 못 들었고, 암튼 나가더니 바로 차가 사고가 났다지 뭐야.”

 “차 사고?”

 “그 집 나서면 바로 찻길이야. 가로등도 없이 캄캄한데, 거기 나가더니 달려오던 트럭에 치어 즉사했다지 뭐야.”

 “허 참...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야. 이상한 낌새에 뒤따라 나간 마누라가 바로 봤지.”

 “무슨 귀신에 씌었나. 자다가 왜 나가. 그 밤중에. 그나저나 마누라가 놀라 자빠졌겠네.”

 “아니. 마누라는 그냥 길바닥에 널브러진 남편을 멍하니 쳐다보더래. 소란스러운 소리에 쫓아 나온 이웃은 마누라가 히쭉 웃었다고도 하고.”

 “설마...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나.”

 “사람 사는 게, 좋아 봐야 얼마나 좋고, 나빠 봐야 얼마나 나쁘겠어. 다 거기서 거기지.”

 “하긴...”

 “그게 다가 아니야.”

 “그럼?”

 “어제가 장례식이었어. 동네 앞산에 묻었는데, 포크레인으로 미리 땅을 파놨는데 흙이 그렇게 좋더래. 뽀얀 게 마치 쌀가루 같았다나. 동네 사람들도 다 놀랐대. 제사를 간단하게 지내고 광중에 관을 내리려고 하는데 거기까지 따라온 마누라가, 그동안 끽소리도 안 하고, 울지던 않던 마누라가 갑자기 자기가 거기로 들어가겠다고, 상복을 입은 채로 난리를 쳐서 그걸 뜯어말리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지.”

 “허어, 뭔 조화야, 그게. 마누라도 귀신에 씌었나?”

 “귀신이 뭐라고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겠어. 그나저나 거기가 생거리 아냐.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지만 진천보다 더 좋아서 생거리라 부르는 마을인데...”     


 덜컹덜컹 달리는 버스가 읍내 장터에 다 왔습니다. 뒷얘기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뭔 소리라도 더 있을까 귀를 기울였으나 두 할머니는 서둘러 내려 이내 장터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니체 씨. 아무리 생거리(生居里)에 산다고 해도 사람 산다는 게 다 허허로운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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