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 프롤로그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by Li Pul

00 / 프롤로그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새 학기가 되어 여학교에서만 스무 해 넘게 근무하신 선생님이 전근해 오셨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장난을 치면 손바닥이나 출석부로 등짝을 갈겼다. 여학교에서 그렇게 하셨겠지. 여학생이면 몰라도 우리에게는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었다. 오히려 굳은 등짝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짓궂은 친구들은 일부러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장난을 쳐서 등짝을 맞았다. 아픔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척하며 ‘어유, 시원해’ 하는 표정.


겨울이면 교실 한복판에 난로를 피웠다. 주번은 학교 창고에서 장작을 가져다 놓았다. 도끼로 거칠게 쪼갠 굵직한 장작. 별명이 ‘광증(狂症)’인 선생님은 화가 나면 그걸 집어 들고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퍽! 퍽! 머리고 등짝이고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뭐라고 하는 학생이나 학부형이 없었다.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거나 어깨뼈가 부러졌다는 아이도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난 10년간 전화상담과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버 상담을 통해 3천 명 정도를 만났다. 적지 상담을 하면서 요령도 늘었다. 경청, 공감은 기본이다. 귀 기울여 사연을 들어주고, 아픔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적절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하지 않는다. 상담이라고 해도 누가 뭘 가르치듯 하면 싫어한다. 꼰대 같은 소리는 이미 지겹도록 들은 그들이다.

가급적 내담자의 기분/감정을 존중해준다. 기분/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 사람이 기분 나쁘다면 나쁜 것이고, 좋다고 하면 좋은 것이다. 그 사실만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인 상담이 될 수 있다.

30분 남짓한 전화상담이나(최장 두 시간 반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한두 번의 사이버 상담으로(내가 봉사하는 곳에서는 통상 세 번까지만 답신을 해준다) 내담자의 10년 묵은 우울증이 한순간에 사라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처음에는 이런 의욕이 넘쳐서 실수를 종종 했지만). 신이라도 ADHD나 조현병, 조울증, 경계선 장애 같은 것들을 그 짧은 시간에 해결하지 못한다.


경청, 공감, 위로, 격려 다 좋지만 때로는 정말이지 한심하고 화나게 만드는 인간들이 있다. 그걸 참고 들어주노라면 스트레스가 팍팍 쌓인다. 내가 뭣 하러 이런 잡소리를 들어야 하나. 자괴감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저 등짝이나 한 대 딱! 힘껏 때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그럴 수도 없다. 점잖은 충고는 물론 혀를 차거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도 안 된다. 우울증 환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집요함이다. 자칫 트집을 잡히면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곤욕을 치러야 한다.

공식 사이트에 올리는 답신은 더 조심해야 한다. 책잡히는 단어는 금물이다. 그저 등짝 한 대 때리는 식의 한마디를 하면 좋겠는데...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여기서는 등짝을 좀 때리려고 한다. 나도 사람인데 점잖은 말만 하려니 근질거려서 그렇다. 상담사의 자질 운운 하지 마시라. ‘좋은 상담사가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제 그만두어야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뻔뻔한 건지,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등짝을 치고 싶은 상담 10년의 사연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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