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떠나기와 머물기의 엇박자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by Li Pul

04 / 떠나기와 머물기의 엇박자


서른 해 전에 가끔 충북선을 이용했다. 충북선이 어디냐고? 조치원에서 제천까지 동서로 내륙을 가로지르는 철도다(어릴 적 심심하면 지도책을 펴놓고 전국 철도 노선의 시발역과 종착역을 찾는 놀이를 했다).

살던 곳에서 청주까지의 역 이름을 아직도 외우고 있다. 삼탄, 동량, 목행, 달천, 주덕, 소이, 음성, 보천, 도안, 증평, 오근장. 잠결에 집안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 들었던 지명. 그것들이 기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하나하나 확인되는 순간 머릿속은 어떤 명징함으로 가득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만종, 삼산, 양동, 매곡, 일신, 석불, 지평, 용문, 원덕, 오빈, 아신, 국수, 신원, 양수, 운길산, 팔당, 덕소, 도농, 구리, 망우, 상봉.

KTX를 타고 스쳐지나가는 곳들. 요즘 읽는 역 이름에서는 어떤 감흥도 일지 않는다. 그저 막연한 지명의 나열일 뿐. 완행과 초고속 열차의 속도감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향을 떠난 자는 영원한 이방인임을 말해주는 어떤 낯섦 때문일까.


삶에 있어서 익숙한 곳은 무엇이고, 낯선 곳은 또 무엇인가. 떠난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한 곳에 머문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마음의 아픔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상대할 때마다 떠남과 머묾, 익숙함과 낯설음을 생각하는 적이 많다,

아픈 과거와 적절한 이별을 하고 떠나야 하는데 자꾸 옛 우물가에 가서 과거를 퍼마시는 사람. 머물러 쉬어야 하는데 자꾸 떠나려고 조바심을 치는 사람. 떠나기는 떠나되 까치발을 하고 종종 걸음을 치다가 결국은 다리에 쥐가 나서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사람. 잘 살고 못하는 건 결국 떠남과 머묾을 잘 선택하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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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지 않아요. 살면서 진짜 좋은 일이 1도 없네요.

결혼 2년 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이내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친구라 정신적인 아픔을 가졌습니다. 사랑으로 보듬어주면 예민하고 불같은 성격이 변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아내를 변화시키려다가 어느새 아내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늘 똑같은 주제의 싸움.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다투는 싸움이었지요. 그동안의 정과, 함께한 시간동안의 좋았던 기억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어떻게든 극복해가며 살아가길 원했는데 상대는 포기만 하려 들었습니다.

요즘 이혼은 흠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지인과 친인척들에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괴롭네요. 다른 이들이 다정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듭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장 또한 문제입니다. 다니는 곳마다 망하거나 임금을 못 받는 등 항상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매일 술을 먹고 잘 때 눈뜨면 고통 없이 죽어있길 기도하며 잡니다. 기댈만한 사람도 없어서 더더욱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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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려는 사람과 머물고 있는 사람과의 엇박자.

이 분에게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등짝을 한 대 가볍게 때려주고 싶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그러나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고, 삶은 자기 식대로 사는 거라고 한마디 해주면서. 그나저나 그의 아내 등짝도 때려주고 싶다. 과거를 잊지 말되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라고(그게 쉽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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