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05 / 허무의 깊이와 넓이
삶에 깊이와 넓이가 있듯이 허무에도 깊이와 넓이가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소작 농군. 빌린 땅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열심히 하지 않았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논이고 밭이고 벼나 작물보다는 잡초가 더 무성했다. 그러다가 ‘짓’이 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거지꼴로 나타났다. 그러니 손에 쥐는 것이 없었고 아이는 늘 배 고프고 외로웠다.
초등학교를 마친 누나는 남의 집에 들어가 몇 년 일하다가 도시로 떠나갔고, 아버지는 늘 그런 식으로 지내다가 농약을 마셨다. 엄마는 낡아빠진 아버지 옷을 태우며 농약을 술인 줄 알고 마셨는가보다 했다. 엄마가 힘주어 작대기로 쑤석였지만 게 옷은 쉽게 타지 않았고, 무슨 아쉬움이라도 있는지 오래도록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 올렸다.
아이는 청년이 되어 집안일을 떠맡았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부지런한 덕분에 배는 곯지 않았고 작으나마 자기 땅을 일굴 수 있게 되었다. 소출이 쏠쏠했다. 엄마 입가에 미소가 어릴 무렵 청년은 호미질을 하다가, 낫질을 하다가 그냥 던져두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병이 생겼다. 엄마가 물어보면 어디 다녀왔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냥…”
이게 그가 하는 대답의 전부였다.
어떤 때는 거지꼴이 되어 들어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번듯한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행여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까봐 그 앞에서는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청년은 이미 아버지를 닮고 있었다. 일을 잘 하다가도, 몇 달 술을 안 마시다가도 한 번 입에 댔다하면 끝을 몰랐다. 왜 그렇게 마시냐고 엄마가 물으면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냥…”
결혼을 시키면 자기 꼴 날까봐 두려웠던 엄마는 감히 결혼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결혼시키면 맘 잡고 일하지 모른다고 부추겼으나 엄마는 고개를 저었고 청년도 마을 처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여러 해가 흘렀다. 훌쩍 떠나는 버릇은 사라졌지만 대신 매일 술이었다. 외할머니가 치매기를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의 머리에 흰머리가 늘면서 건강이 예전만 못했다. 병치레가 잦았다. 마흔이 가까이 된 아들은 어느새 아버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아들은 ‘짓’이 났다. 그날따라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낫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일을 저지르고 본인 목도 쳤으나 실패했다.
“누가 가슴에만 쌓아두지 말고 자꾸 말을 하면 우울증도 사라지고 기분이 나아진다고 하는데 5~6년 동안 열심히 내 얘기를 해봤지만 결국 그것도 그냥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요.”
첫 상담 때 한 이 말이 그가 한 가장 긴 말이었다. 앞의 이야기는 다섯 번의 상담을 통해 토막으로 들은 내용을 이은 것이다.
그는 억지로 등 떠밀려 상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며 간간히 웃기도 했다. 지금까지 복역한 세월보다 더 많이 갇혀 지내야 하는 그. 상담을 끝낼 무렵 그는 상담 종료를 통고했다. 이유를 묻자 “그냥…” 했다. 그래도 친밀감이 조금은 들었던지 흐흥 웃으며 그가 덧붙였다.
“그냥, 다 허무해요. 뭘 하려고 해도 어느 날 보았던, 아버지 옷 태울 때 피어나던 그 연기가 떠올라, 그냥, 그냥, 다 그래서…”
등짝 한 대 때려서 그 허무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진작 만났더라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 등짝 한 대 딱 갈기며 힘내라고, 세상은 허무한 곳에서 덜 허무한 곳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일러주었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