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살아가는 힘은 팔뚝에서 나오지 않는다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by Li Pul

02 / 살아가는 힘은 팔뚝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물여섯의 여성(혹은 남성이라도 무방하다). 지금 뭔가 시작해야 할 텐데 아직 직장도 잡지 못했다. 준비하고 있는 공부나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 좋은 나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어, 하다보면 곧 서른. 남들은 제가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혼자 뒤떨어진 느낌.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우울 모드에 빠지기 직전이다.


이름이 ‘솔’이라는 친구도 그랬다.

어릴 때는 철없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없었고, 이건 시간이 지나면서도 마찬가지다. 타인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속마음 하나 털어놓을 친구도 지인도 없는 처지가 됐다. 누구를 탓하랴. 부모님은 외동딸이라 해달라는 것 다해주는데. 다행인 건 뭘 해보라고 보채지도 않는다는 사실.

힘들 때면 인터넷으로 자살에 관해 검색한다. 다들 건강 때문에, 가정문제, 취직, 남친(혹은 여친)과의 갈등 등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솔 자신은 그런 게 없다. 그렇기에 자살을 검색하는 자신이 오만하고 사치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한다.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남들은 웃긴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작 솔은 단 하루도 행복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가 박아주기를 바랐고(기왕이면 부자가 모든 차. 그래야 부모님에게 거액의 보상금이라도 남겨드릴 수 있으니까), 공사 중인 곳 아래를 지나게 되면 무거운 쇳덩이가 머리에 떨어져 주기를 기대했다(기왕이면 대기업이 공사하는). 그러나 위를 올려다보면 휑한 잿빛 하늘 뿐.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허드레 것을 버리는 곳에서 굵은 동아줄을 주워 책상 서랍에 숨겨두기도 했다. 실행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러면서 확신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도 다 그럴 것이라고. 몰래 그럴 거라고.


대학은 굳이 가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았고, 집에서 그림만 그린다. 어느새 나이도 있고, 그럴듯한 커리어나 스펙도 없는 처지가 됐다. 엄마가 그림 그리는 걸 뭐라고 하지 않지만 방문을 닫으면서 내쉬는 한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죽을까 생각에 빠진다.

억지로 알바를 나간다. 한밤중에 책상에 앉아 그림을 끼적인다. 살아간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뭔가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알바가 없는 날엔 게임하고 만화 보고. 거기다가 배달 음식. 팔다리는 살로 덮여간다.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면서 솔은 그런 자신을 싫어한다.

스스로 이해가 안 되고, 스스로가 싫고,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누가 사랑을 해줄까, 걱정하는 솔. 자신도, 그 누구도 믿을 게 없다. 하다못해 화장실의 옷걸이도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쑥 빠질 것 같아 줄을 걸지 못한다.


그녀(혹은 그)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해서 힘이 생길 것 같으면 말하기도 전에 벌써 힘을 내서 으쌰으쌰 살아갔을 거니까. 살아가는 힘은 허벅지나 팔뚝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끔 등짝을 아프지 않게 토닥여주고 싶다. “삶은 그렇게 시시하지 않아. 삶은 저 만큼 물러서서 너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어. 네가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어.” 이 말을 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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