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어떤 사망 선고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by Li Pul

01 / 어떤 사망 선고


아빠가 바람을 피우다 들킨 날 엄마는 부부싸움 끝에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오늘부터 너희 아빠는 사망한 줄 알아라.”

“사망이 뭔가요?”

“죽었다는 거야.”

“죽었다는 게 뭔가요?”

“이제 집에 안 온다는 거야.”

사실 그녀는 사망이 뭔지 알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니까. 아무튼 아빠는 그때부터 죽은 사람이 되었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사람. 그 죽은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빠가 드리운 그림자는 늘 집안을 어둡게 했다.


엄마는 세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도망치려면 잘못한 사람이 도망쳐야 하지만 엄마는 거꾸로 행동했다. 이혼은 안 했다(다행인가 아닌가). 급히 이사한 집은 반지하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밝고 높은 집에서 살았는데 하루 만에 어둡고 좁고 낮은 곳으로 왔다. 옷도 가구도 부족했다. 갑자기 바뀐 환경 탓인지 소극적인 성격이 됐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청소년기는 우울 그 자체였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공부나 입시도 결과가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죽을힘을 다 해봐도 정말 단 한 번도.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음악이었다. 알바로 번 돈으로 학원에 다녔지만 결과는 늘 불만족이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분야. 그녀는 늘 어중간한 성적이었다. 더 할 수도, 그만 둘 수도 없는 어정쩡한 위치. 그게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돈 벌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엄마는 점점 성격이 거칠어졌다. 화내면서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예사이고 머리를 벽에 박다가 엉엉 운다. 힘들게 키워준 엄마를 탓할 수 없다. 다만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이런 상황이 싫어 콱 죽어버리고 싶다.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면서 핸드폰으로 자살에 관해 검색한다. 막상 죽으려니 용기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시체는 누가 치우고, 물건 정리는 어떻게 하고, 이런 실없는 상상만 실컷 하다가 춥고 몸이 지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끊임없는, 자신이 병신 같다는 생각.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 답을 알고 있다. 실행할 의지가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리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주변 친구나 엄마에게 별 것 아닌 일로 징징거리고 싶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힘들다는 말 비슷한 것도 안 하고 일부러 더 밝은 척, 멍청한 척 한다. 아빠? 아빠는 그 집에서 그 여자와 잘 산다고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니까 알 건 안다.


사망은 죽은 것이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그 말을 하는 날 아빠가 죽은 게 아니고 실은 그녀가 죽은 것.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진짜 죽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야. 네 삶은 네 꺼야. 주변 상황이 힘들어도 네 식대로 살아가면 돼. 남의 죽음에 네가 끼어들지 마!”

정신 차리라고 힘껏 등짝을 쳐야 하는지, 아니면 토닥여주며 격려해야 하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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