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 스스로 역병을 불러들이는 사람들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by Li Pul

08 / 스스로 역병을 불러들이는 사람들


마루 끝에 앉아 마늘을 까던 할머니가 담담하게 말한다. 나이 여든셋. 잠시 먼 산에 눈길을 준다. 무엇을 보는 건지 아닌지 짐작할 수 없는 모호한 시선.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저쪽을 더듬는 눈치. 툇마루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스하다.

70년 저쪽, 햇살 따뜻한 봄날. 삽시간에 역병이 닥쳤다.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거품을 물고 픽픽 쓰러졌다. 못 먹어서 쓰러지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집집마다 이러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며칠 전 장날 읍내에 갔다 온 어른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역병이 돌고 있대. 조심해야겠네. 조심해서 될 일이면 역병도 아니지.


한 친구가 쓰러지고 이튿날 두 친구가 쓰러졌다. 그러다가 나흘째 되던 날 그녀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쓰러진 친구가 가마니에 덮인 채 자기 아버지 지게를 타고 산 깊은 곳으로 간 날이었다.

“역병이 무서운 건 그게 뭔지 모른다는 거여. 알기만 안다면, 시골에 아무리 약이 없다 해도 산에 가서 이거저것 캐서 삶아 먹으면 되니까.”

열 살이라도 알 건 다 안다. 삶과 죽음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온몸에 열이 끓기 시작하는 그녀는 가족 누군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집 뒤 헛간으로 향했다. 엄마가 내준 낡은 포대기를 들고. 거름으로 쓸 재와 망가진 살림이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 그 헛간에 포대기를 쓰고 누웠다. 엄마가 하루 두 차례 밥과 물을 헛간 앞에 놓아두고 갔다. 무너진 흙벽 사이로 봄 햇살이 따스하게 비쳤다. 뻐꾸기도 울지 않고, 집 쪽에서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이웃집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올 뿐.

“이게 역병이여. 나는 언제 죽나,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며 포대기 쓰고 누워있는 거.”

혼자 지내며 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먹고 토하고 설사하다가 열흘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새벽에 깨어보니 몸이 어제와 다른 것 같아 살았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대기를 잿더미 위에 던지고는 안채로 가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나는 어쩌다 살았지만, 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을 기다리는 게 역병이여.”


할머니의 말마따나 한 개인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 역병의 무서움일 수 있겠는데 요즘엔 이런 역병을 앓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코로나 이야기가 아니다.

태어난 시대와 나라, 언어, 태어난 가정의 형편과 부모의 인성. 때로는 DNA와 성격을 가지고 징징댄다. 영어 사용하는 부자 나라가 아니라고, 집이 가난하다고, 부모가 개떡 같은 성품이라고, 부모 닮아 성질이 못됐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푸념하는 인생.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굳이 운명이라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삶의 상수(常數) 같은 것이 있다. 누군들 금수저 물고 태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수저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흙수저라고 해서 다 루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가난만 해도 누구에게 걸림돌이 되지만 또 누구에게는 디딤돌이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게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만 잘 구별해도 훨씬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징징대는 사람에게는 환경이 역병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불러들인 역병. 그런 사람들에겐 약이 없다. 등짝을 한 대 갈겨주는 수밖엔.


그나저나 코로나로 온 나라가 고생이다.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있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조금만 더 힘내자고 격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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