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은 아니잖아요?

‘촌 기자’ 소리 안 들으려면

by 류재민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불편할 때가 왕왕 있는데요. 기자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갈수록 이 말의 불편함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만나는 취재원은 알고 보면 다 학교 선배이고, 동기이고, 후배이고, 지인이고, 지인의 지인이고 그렇습니다. 불의를 저지른 사건이나 사람을 취재할라치면 순탄하지 않습니다. 깜빡이도 안 켜고 여기서 훅, 저기서 훅, 치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다 끌어다 붙입니다. “한번 봐 달라”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럴 건가” “서로 좋은 게 좋잖아”


사정을 들어보면 그 사람(들)도 나름 사연이 있는데요. 핑계 없는 무덤 없습니다. 불의를 정의로 포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누가 구제해 준답니까. 불의를 보고 눈 감는 건, 기자로서 수명을 단축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취재와 기사는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이 아닙니다. 봐줄 거 다 봐주다가는 아무것도 못 씁니다. 기자 말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쓰라고 언론과 기자가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들이 기자를 존중하는 건 음지에 있는 걸 양지로 끌어내 건강한 사회의 빛을 쬐게 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쓸 건 써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 눈 감아버리면 기자 스스로도 찔립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나 금세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 믿는 타조처럼. 기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역 언론이 건강해야 지역민이 건강해집니다. 지역민이 건강해야 지역사회가 발전합니다. 지역사회가 발전해야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지역의 정치권과 행정은 지방자치니, 분권이니 열심히 떠드는데요. 그것의 본질이 무언지 알거나, 또는 알려고 하는 기자는 몇이나 될까요.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기사를 엿(광고)이랑 바꿔먹는 기자도 수두룩합니다. 그런 기자들은 ‘촌 기자’라고 불립니다. 지역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바른 길로 안내하는 지역 언론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한때 유력 대권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은 지역사회에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역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도정보다 대권 행보에 치중했던 그를 매섭게 몰아붙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꽃길보다 예방주사를 놔줬어야 합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해야 치국(治國)도 평천하(平天下)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충청도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지역 언론은 말입니다.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도지사든, 시장이든, 군수든 부조리와 비리, 불의를 저지른 권력자에 비판을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용기를 갖고 펜을 굴려야 합니다. 기자 뒤에는 지역민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정자에 관대한 언론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언론입니다. 언론이 건강하지 못한 지역은 주민들이 고달픕니다. ‘촌 기자’가 되지 맙시다. 쓸 건 쓰는, 강단 있는 ‘기자’가 됩시다.


오늘은 조영남이 부릅니다. <내 고향 충청도>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nZL_E1qJ2U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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