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Feb 20. 2024

의사 선생님 다 어디 가셨어요?

환자의 병은 협상권이 될 수 없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응 성격인데,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입고 있다. 특히 수술 대기자나 응급환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어린이병원 복도에 아이들이 누워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아이구야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사직서 제출 현황을 발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소속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직서는 모두 수리되지 않았다. 2024년, 2월 20일, 경향신문 <어젯밤까지 전공의 6415명 사직서···1630명은 근무지 이탈>         

이른바 ‘빅5’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출근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에게는 진료 유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전공의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면허 박탈? 까짓거 보자 이거야, 하는 태도다.


정부나 전공의나 입장과 사연을 들어 보면 구구절절하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늘려 10년 동안 1만 명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공의들은 ‘그게 무 똥차 굴러가는 소리냐, 이 똥멍청이들아’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중대 의료현안을 이해당사자인 자신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정부대로 할 말이 있고, 전공의들 주장 역시 일리가 있다. 양쪽 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죄 없는 환자들만 피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한 직업병 탓일까. 현재 상황이 정치적 대결 구도로 보인다.  주관적 시점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을 1년에 100명을 늘리던, 1,000명을 늘리던 의료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예상했으리라. 역대 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 그래서 여론을 의료계가 불리하도록 끌고 가려는 전략을 세운 건 아닐까, 하는 거다.       

  

“국민 여러부운~ 저놈의 의사들이 지들 철밥통 지키려고 저러는 거, 다들 아시죠~.”     
출처: 한겨레

이러면 분노에 가득 찬 국민들이 의사들을 욕할 것이고, 언론도 그에 동조해 의료계를 압박할 거라고. 의료계라고 바보가 아닌 이상 정부가 파 놓은 ‘함정’을 뻔히 알면서 순순히 빠지려고 했을까. 정부나 의료계나 의대 정원 확대 불가피성에는 동의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결말이 대충 예상된다.      


정부는 기간을 줄이던지(10년을 5년으로), 정원 수를 줄이던지(1년 2000명에서 1000명으로) 할 것이다. 의료계는 마지못해 수용하는 척 타협하려고 들 것이다. (안 그럼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날아올테니). 대신 의료수가 조정이나 챙길 건 챙기려고 하지 않을까.


이러면 정부나 의료계나 손해볼 건 없다. 정부는 역대 정부가 이루지 못한 ‘의료개혁’을 해 냈다고 대대적으로 떠들 테고,-그것도 총선 앞두고-의료계는 의사로서 소명 의식에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자화자찬할 수도. <뭐, 아니면 말고.>


다만 걱정인 건 환자다. 정부와 의료계가 힘 겨루기하는 동안 노약자, 응급환자가 제대로 손 한 번 못써보고 목숨을 잃지 않을까.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지만, 국가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의사들 역시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새길 시간이다. 환자의 병은 협상권이 될 수 없다.      


*상단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