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순자의 산후조리는 영 형편이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보급선은 닿지 않았다. 환초 사람들의 허기는 더했다. 산모인 순자도 제대로 먹을 게 없었다. 그래도 담양 댁은 틈나는 대로 바다에 나가 미역 줄기를 걷어 다 국을 끓였다. 홍합 몇 개 넣어 끓인 멀건 미역국을 매끼 몇날 며칠 먹었다. 미역국에 질린 순자는 끼니를 거르려는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담양 댁은 순자의 입을 벌리고라도 억지로 먹였다.
“이것아, 아 젖이라도 물리려믄 묵어야지 않겄냐. 니 살자고 묵는게 아니라, 새끼 안 죽일라꼬 하능겨. 긍게 암말 말고 묵더라고.”
담양 댁은 마치 친정어머니처럼 순자를 대했다.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엄하게.
순자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를 업고 온종일 바닷가와 활주로, 격납고 작업장을 쏘다녔다. 그러다가도 사카이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거나 숨을 곳을 찾아들었다. 혹여 아이가 울기라도 할라치면 입을 틀어막거나 재빨리 젖을 물렸다. 그렇게 순자는 철저히 사카이를 외면했고, 사카이 역시 순자를 모른 체 했다.
하루는 사카이가 조용히 이토를 방으로 불렀다.
“자네도 순자가 업고 다니는 아이를 봤는가?”
“그렇습니다만‥”
“자네는 혹시 아는가?”
“네? 무얼 말씀인지요?”
“그 아이 아버지 말이네.”
“아버지 말입니까?….”
이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사카이의 눈치를 살폈다. 사카이가 정말 그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싶었다. 사실, 이토 역시 섬 주변에서 순자가 낳은 아이 아버지가 사카이라는 파다한 소문을 익히 들었던 터.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상관의 질문에 ‘맞습니다. 그아이 아버지는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이실직고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섬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나도 들었네.”
“아. 그러...시군요. 그저 소문 아니겠습니까.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대좌님.”
“아니. 난, 신경 쓰이고 거슬려.”
사카이의 단호한 말에 이토 얼굴이 굳어졌다. 얼음처럼 제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토가 무슨 말을 하지 못하자 사카이가 말을 이어갔다.
“순자의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대좌님.”
“따라서, 이날 이 시간부터 그 소문이 또다시 내 귀에 들린다면 더는 참지 못하겠다.”
이토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에 난 칼자국은 깊게 파였다. 이토는 사카이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주인의 분부를 기다리는 머슴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뿐. 그때 사카이가 낮고 짧게 말했다.
“그 아이가 살아있는 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될 거다.”
이토는 비로소 사카이가 자신에게 한 말의 의도를 직감했다. 그러자 짧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손은 부르르 떨렸다.
“그날 밤처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 주게.”
사카이의 최종 명령이 떨어지자 이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날카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카이의 눈길에 거수경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카이의 방을 나온 이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순자와 아이를 모두 없애라는 건지, 아이만 없애라는 건지부터, 누구든 죽었을 때 조선인들의 동요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줄담배를 피웠다. 그 무렵 긴급상황을 알리는 비상벨이 울렸다. 미 군함이나 정체불명의 선박이 발견됐을 때나 울리는 비상벨이었는데, 한동안 울리지 않아 그 기능과 존재감이 희미해진 때였다. 이토는 황급히 총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군인들 모두가 대오를 맞춰 부둣가 쪽으로 뛰어갔다. 멀리서 바라본 해안에는 미 군함이나 배는 보이지 않았다. 이토는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여럿의 군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
“고래다! 고래가 떠내려왔다.”
떠내려온 고래는 죽어있었다. 청회색 몸통은 코끼리처럼 육중했고, 몸길이는 50자는 족히 돼 보였다. 빗살을 그은 듯한 잔무늬가 몸 전체에 흩어져 있고, 검은색 수염이 길게 났다. 널찍한 주둥이 사이사이 뱃속에서 올라온 죽은 새우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상처가 없는 걸로 봐선 그물에 걸리거나 포경꾼들에게 당한 건 아닌 듯했다. 일본군은 고래를 해체할 인부를 찾았다. 순천에서 어부를 했다는 이가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조선인 세 명과 함께 칼과 낫을 들고 죽은 고래고기를 해체했다. 일본군이든, 끌려온 조선인이든, 굶주림에 지쳐있던 환초의 사람들은 고기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 해체 작업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살코기는 먹기 좋게 잘라 한쪽에 쌓아놓고, 부산물과 내장도 따로 모았다. 아낙들은 고래고기 해체가 끝나는 동시에 불을 피웠다. 사카이는 이토에게 조선인들에게도 적당한 양의 고래고기를 배급하라고 지시했다. 이토는 이틀 치를 뺀 나머지를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동굴 한쪽에 보관하도록 다른 부하 군인에게 명령했다. 조선인 두 명이 부하 군인을 따라 고기를 들고 동굴로 이동했다. 아낙들은 큰 솥단지에 토막 난 고기를 뭉텅이 째 넣고 푹 삶았다. 환초의 사람들은 모처럼 배를 채웠다. 사카이는 자신의 방에서 이토와 얇게 썬 육회를 먹었다. 사케를 곁들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육회를 먹던 이토가 사카이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다.
“그런데 대좌님, 고래가 어떻게 여기까지 떠내려왔을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이 근처에 고래 서식지가 있다면, 식량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먹을 것도 없어서 조센징도 그렇고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설령 고래 서식지가 있다고 해도 그 엄청난 녀석들을 무슨 수로 잡을까?”
사카이는 말끝을 흐리는 이토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물을 치면 어떻겠습니까?”
“그물? 무슨 수로? 그물을 만들어도 저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친단 말인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카이는 몇 점 남은 육회를 이토에게 양보한 뒤 보급용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토는 남은 육회를 먹어 치운 뒤 빈 접시를 들고 방을 나왔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그물을 칠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입맛만 다셨다.
그 시간, 동영도 조선인들이 묵고 있는 동굴에서 삶은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아따, 시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구먼. 목심이 안직은 붙어있으라는 건가베.”
동영의 옆에서 게걸스럽게 고기를 집어 먹던 순팔이 말했다.
“순팔아. 츤츤히 먹어라. 그래 먹다가 설사하겄어.”
담양 댁이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순팔은 쉴 새 없이 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설사 좀 하면 어떻소. 은제 또 이런 걸 먹어볼랑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지.”
동영은 순팔의 전투적인 식성 앞에 실소를 지었다. 그 역시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다 기름기가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그날, 조선인 노역자들은 오랜만에 주린 배를 채웠고, 비쩍 마른 순자의 가슴에도 젖이 돌았다. 환초의 사람들은 약 일주일 정도 고래고기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또다시 배를 곯아야 했다. 언제 떠내려올지 모를 고래를 기다리며.
이토는 사카이 방을 나오면서 얼마 전 사카이가 내린 지시를 떠올렸다. 순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짰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방금 먹었던 고래고기가 소화도 되지 않은 채 거꾸로 넘어오는 듯했다. 이토는 막막했다. 사카이가 당분간은 시간을 주겠지만, 그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부하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게 사카이만의 방식이었고, 군령이었다.
그날 밤, 이토는 결단을 내렸다. 입을 굳게 닫은 그의 표정은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결기로 가득했다. 서슬 퍼런 눈빛이 서늘한 밤을 밀어냈다. 새벽녘, 이토는 군복을 갖춰 입고 방을 나갔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군화 소리가 동굴 안에 일정하게 들렸다. 동굴을 나간 이토는 동틀 무렵 돌아왔다. 방을 나갈 때 당당했던 걸음걸이와 달리 몹시 지친 기색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겨우 의자에 걸터앉았다. 담배 한 개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지만, 불은 잘 붙지 않았다. 화가 치민 그는 담배를 꺾어버리고 침상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양 눈을 꼭 감았다. 피곤이 밀려왔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아침을 준비하려는 아낙들이 하나둘 일어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역정을 낼 기력이 없었다. 결국 그는 누운 채로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꺼내 한쪽 벽에 대고 한 발 쐈다. 총소리에 놀란 아낙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렇게 아침은 밝았고, 수평선에 걸쳐 있던 해는 소리 없이 하늘 위로 솟았다. 그날 아침, 순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본 사람이 없었다. 동굴 안팎을 죄다 뒤져봤지만, 그녀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순자가 사라졌다. 동굴이 발칵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