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곡
조선인 노역자들 사이에서는 순자의 실종을 두고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추려졌다. 하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을 거란 추측이었고, 다른 하나는 간밤 산에 올라갔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을 거란 얘기다. 모두 정신 이상인 순자가 자의였든, 사고였든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는 관측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순자의 실종에 가장 상심한 이는 누구보다 담양 댁이었다. 담양 댁은 넋 나간 표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봤다.
“이년아, 어디로 간겨? 을매나 시상이 꼴 같지 않었음 바다로 뛰어든겨?”
바다를 바라보던 담양 댁은 끝내 통곡했다. 옆을 지키던 동영이 조용히 담양 댁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아짐씨, 고정하더라고요. 차라리 저렇게 떠난 게 순자한티는 더 나은 건지도 모르니.”
동영은 순팔에게 눈짓해 담양 댁을 동굴로 데리고 들어가도록 했다. 순팔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담양 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동굴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발짝을 떼었을까, 담양 댁이 등을 돌려 동영에게 말을 건넸다.
“시신은 못 찾더래도, 장례라도 치러줘야 하지 않겄어? 지 뱃속으로 낳은 새끼꺼정 저래 두고, 심든 시상 살다 갔는디, 꽃상여는 못 태워줘도, 혼이나 달래줘야 하지 않겄냐고.”
담양 댁의 애절한 음성에 동영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영은 그날 밤 순팔과 몇몇 남성들을 불러 모아 순자 장례식 일정을 논의했다. 무엇보다 일본군들이 인정을 해줄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순자가 낳은 아이가 누구 씨인 줄 짐작하고 있는 동영은 괜찮을 거라며 주위를 안심시켰다. 날이 밝자마자 사내들은 나무상자와 들 것을 이용해 대강 상여를 짰다. 아침을 먹자마자 동굴 앞에서 상여가 나갔다. 동영의 예상대로 일본군들은 운구 행렬을 막지 않았다. 이토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빈 상여를 바라볼 뿐, 나머지 군인들은 애써 외면했다. 순팔은 어릴 적 동네에서 상여가 나갈 때, 요령잡이가 읊던 상여 소리를 떠올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어허~딸랑 소리를 반복하며 앞장섰다. 상여꾼들은 순팔의 선창에 후렴으로 답하며 뒤를 따랐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랏차 ~ 어호우. 북망산천 가는 길에 미련일랑 다 놓고 가소, 어허야~ 데헤야.”
조선인 노역자들도 고개를 떨군 채 상여 뒤를 쫓았다. 진혼곡이 바람을 타고 상여 주변을 맴돌았다.
"순자야, 인저 니 새끼는 워쩌냐. 니가 죽고 나한테 맡기고 워딜 갔냐."
담양 댁은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여는 해변을 크게 한 바퀴 돈 뒤 산으로 올라갔다. 동영의 조부인 김선재의 묘 옆에 시신 없는 묘가 덩그러니 만들어졌다. 그 시각 사카이는 자신의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회한의 한숨과 섞여 공중에서 흩어졌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한쪽에서 안도의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그는 순자가 어떻게 사라진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 이토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1급 비밀’이었다.
담양 댁은 순자가 사라진 이후 혼자 남겨진 그녀의 아들을 챙겨야 했다. 젖을 먹일 수 없게 되면서 미음을 쑤어 먹이며 자식처럼 돌봤다. 아이는 용케 살아남았다.
“명줄은 타고 난다는디, 이것은 지 에미 목심까지 받고 나왔납다.”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동영을 향해 담양 댁이 넋두리처럼 말했다.
“긍게요. 눈도 똘망똘망하고 다리 짝도 투실투실한 게 낭중에 장군이 될 것 같소.”
동영은 자신을 보며 방긋 웃고 있는 아이를 헤벌쭉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담양 댁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 씨가 워디 가겄어. 지 애비가 장군인디.”
담양 댁의 말에 동영은 아차, 싶었다.
“아야. 혹여라도 딴 사람 귀에 들어가면 안 돼야. 그날로 저 아는 이 시상 사람이 아닝게. 지 에미 따라가 갈랑게.”
“나가 말을 잘못 해 부렀소, 아짐씨. 조심할랑게요, 얼릉 아 델꼬 들어가소. 오늘따라 바람이 차네.”
담양 댁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포대기에 둘둘 싸맸다. 그러고는 동굴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갔다. 아이를 업고 가는 담양 댁의 뒷모습을 보던 동영은 쓴 입맛을 다셨다. 동영은 한동안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봤고, 담양 댁과 아이는 어느새 동굴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회색빛 안개가 바다에서 환초를 향해 어둠과 함께 밀려들고 있었다. 환초는 항상 더웠고, 그래서 사람들은 굶주림뿐만 아니라, 더위와도 싸워야 했다. 남성들은 머리를 박박 밀었고, 노상 웃통을 벗고 지냈다. 아녀자들도 겨우 가슴과 아랫도리만 가렸다. 남녀노소 땀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마셸제도에 위치한 밀리환초는 덥고, 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