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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Nov 25. 2021

원래 그런 거니까

“오르막이 다 끝나면 시작되는 게 내리막 길이야”


멀리 프랑스 파리에 주재원으로 가족들과 거주하고 있는 친구는 자전거에 흠뻑 빠진 듯하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하는 데 느닷없이 이 얘기를 꺼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치진 어깨를 얹고 살아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이 말로 시작된 내 생각의 나래는 한동안 펼쳐졌다. 사실 그렇다. 요즘처럼 살아가기 바쁘고 한숨 돌릴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강의 기적이 한창이던 시대에야 먹고살기 바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이 그런 시대는 아니니까.


아마도 조금 지친 것 같다. 함께 일하는 후배는 “선배님, 매일이 지옥 같아요.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또 생기니까 정말 미치겠어요” “야, 원래 그런 거야” 그러곤 바로, 어디에서 배웠는지 꽤 쓸모 있는 이 영어단어를 그때 한 번 써먹었다. “Hang in there” “알겠지? 인생은 그냥 존버(존내 버티기)야” 나도 가끔은 버터 향기 풍기는 걸 내심 좋아한다. “Hang ing there” 내가 배우기로는 이 단어는 등산하던 누군가가 절병에 떨어질만한 상황에서 간신히 나뭇가지를 잡고 버티고 있을 때 해준 말이라고 한다. “조금만 버텨”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매일이 버티는 걸지도 모른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또 감정에 상처 받는 일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결코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물약 병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의 결과만 생기니까 말이다.


“원래 그런 거니까”

신통한 문장이다. 마법의 지팡이 같은

이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단번에 정리한다.

상대가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쏟아내도

웬만해선 토를 달 수 없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中-   

 

Photo by@paris_shin


나도 원래 삶이 힘들다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원래 삶이 그런 거니까. 그게 그런 거니까. 이기주 작가는 누군가에게 듣는 이 말에 신통하다고까지 말했지만, 조금 다른 거 하나는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거.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숨죽이고 버티기 위해서.  누가 물어도 까스활명수를 한 입에 톡 털어 넣은 것과 같이 속 시원한 대답으로 말해줄 수 없는 게 지친 사람의 늘어진 어깨를 올리는 방법이다. 이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도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서. 도와줄 힘도, 그리고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삶이 그렇게 나를 또 아프게 한다.


친구는 자전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활력소를 찾은 것처럼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라이딩 풍경을 올리며 사람들과 공유한다. 나도 살짝 하트 하나를 남기고 부러움을 애써 감춘다. 가끔 친구의 계정을 보면서 느끼는 하나는, 그 친구가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것. 라이딩만 즐기는 게 아니라, 온전 한 곳에서 느끼는 여유로움이라고 할까. 유명한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풍경을 자전거 타는 모습보다 더 많이 올려준다. 뭐 역시 자신이 라이딩을 하고 있으니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여우가 사라져 가는 요즘, 과연 언제쯤 내리막을 볼 수 있을까. 얼마 전 친구에게 “그때 전화로 나에게 했던 말, 무슨 의미야?” “으응, 있잖아 너는 잘하려고 너무 애쓰는 거 같아, 애쓴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어, 천천히 올라야 언덕의 아름다움도 그리고 내려갈 때의 여유로움도 추억으로 남으니까 말이야” 작게만 느껴졌던 친구가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래 너무 애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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