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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Aug 28. 2021

자존감이 잘려나간 그날

칭찬 하나가 성장하는 청소년에게 주는 장점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다. 누구나 해당되는 얘기지만 특히 아이에게 더욱 중요하다. 누군가의 따뜻한 한 마디에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어느 순간 풍부한 공감 능력을 안고 살아가게 되기도 하고, 아니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기만 하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우주이고 세상의 전부라는 말이 이렇게 설명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별 볼일 없는 유년기를 보내며 자존감이 무엇인지, 가을이면 시장에 내다 파는 '감'의 일종인지 구분하지 못하며 성장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데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특히 학교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눈으로 투영해 보게 되면 참 우울하기 짝이 없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학교는 그가 담을 수 있는 세계의 전부 아닌가. 아이는 밝고 명랑했지만, 녀석에게 사회생활의 전부인 학교에서 생활 양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니 친구관계도 그저 그랬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님도 역시.


"선생님, 학생들이 볼 수 있는데 담배 피우면 안 되죠!"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이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는데, 그날따라 내가 선생님과 가깝다고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담임선생님이라 내가 말하는 엉뚱한 말에도 따뜻하게 받아줄 거라는 착각을 했나 보다. 선생님은 수업 도중에 자습을 시켜놓고, 잠시 복도 쪽 가까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었던가. 당시 시골 학교는 선생님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가끔은 교실 창문을 열어놓고 살짝 피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었지만 그때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Photo by@paris_shin. 한상권


"공부 잘하는 녀석이 말하면 모르겠는데, 너같은 놈이 그딴 말을 하는 거냐?"

나의 어눌하고 끈적끈적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나에게 와서 꿀밤을 꾹꾹 눌러 때리며 말했다.


"싹수없는 자식"이라며 고양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개미 보듯이 취급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그 순간 내가 별 볼일 없는 인간임을 당시 유일한 교육 방법이었던 주입식으로 나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는 호기심에 선생님에게 한 마디 던진 것인데, 그게 그렇게 매끄럽고,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못 했던 것도 사실이다. 담임선생님과 이 정도 선에서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관심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 철부지의 관심 표현이었다. 다만, 결과가 나를 작게 만들었을 뿐.


당시 내 학교생활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리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공감해 주는지,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과 어떤 자세와 말의 온도를 맞춰 이야기하는 게 좋은지 대통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철없는 철부지 꼬맹이였고, 흙 집어먹으며 운동장을 뛰어놀기만을 좋아하는 검정고무신 같았다.


성인이 되어 지금 돌아보면, 나는 선생님이 싫어서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이 맞아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나 나름의 대화 양식으로 선생님께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는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내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불쌍한지 모르겠다. 누런 이를 들어내며 신나게 뛰어노는 게 세상의 전부인 줄만 알던 꼬마 녀석이 선생님으로부터 얻어맞은 그날, 바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날은 내 생에 자존감이라는 야들야들한 새순이 날카로운 칼날에 잘려나가는 날이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 하나는, 어린이에게 또 자라는 청소년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인성을 구성하는 마음속 인격체가 함께 성장할 수도 아니면 작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에게 어른은 그들 세계의 전부이듯이 나 역시 아이가 내 존재를 세계로 인식하는 데 부끄럼 없어야 할 것이다. 저 멀리 웅크리고 선생님에게 혼난 꼬마 아이가 보인다. 꼬옥 안아주고 얘기해주고 싶다.


"괜찮아, 선생님도 너한테 미안해할 거야"

"그리고, 담배 피우면 건강에 나쁘다고 다른 말로 알려준 너에게 감사해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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