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습관으로부터 천천히 하라
직장을 다니기 싫다!
한 번쯤은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직장은 평생 배우자처럼 평생 동반할 수 없고 나의 반려자가 될 수 없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와 변화 속에서 진보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약 60년 동안 노력하여 경제 강국에 도달하였고 한국의 삼성은 세계시장에서 무서운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약 42만 명의 거대조직으로.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계 각국 상공에서 일하고 있으며 시시각각 세계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은 한국의 삼성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회사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의 각 특파원의 실시간 보고로 세계 경제가 움직이고 화상통화와 화상회의를 통해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조직 속에서 사회초년생부터 생존게임이 시작되고. 언택 시대에 이런 조직에 구직하려는 젊은 층은 많다. 그러나 2019년 말에 발생한 코로나 19는 2020년 젊은 청소년과 청년에게 실망을 안겨준 해이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이러한 거대한 조직은 구인하지 않고 있으나, 컨택 시대는 언젠가는 다시 구인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정부의 많은 통제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얼굴을 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은 컨택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전화와 통신의 발달로 언택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 2020년 코로나 19는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토로나 바이러스 19초기에 언택 시대에 바이러스를 대처할 방법을 알지 못했고, 인류 전체가 처음이며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경 범유행(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나도 독자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이다.
나의 자녀인 둘째 딸은 2002년 1월생이다. 초등학교를 7살에 다녔고 왜소하였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잘 보냈다. 2020년 3월 대학생이 되었고 2021년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여자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하였고 물론 대학 입학식도 못 했다. 그녀는 자신을 가장 불쌍한 세대라고 했다. 나는 자녀인 딸에게 불쌍한 세대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고 2020년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였다. 강조한 이유는 2020년 고등학생이었다면 아마도 대학의 입학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딸은 졸업식과 입학식의 추억은 없지만 언택 시대에 대학생이 되었고 장학금을 받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이제는 언택 시대에 잘 적응하고 학업을 하고 있으며 친구들과 화상통화, 강의 등을 충분히 소화되고 있다. 오히려 그녀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으며 그녀는 자격증을 공부하여 GTQ 1급이라는 포토샵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제는 컴퓨터 활용 1급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언택 시대에 자신만의 세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때론 아르바이트로 수입을 새로 마련하고 무언가를 찾고 있다.
우리가 언택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현재 직장에 다니는 것이다. 직장에서 감정노동자로 살고 있지만 꾸준한 수입이 내 지갑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이직을 하였다. 다른 이직자들은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도록 하여 출근 일정을 정하고 있지만, 난 아직 제대로 하루도 못 쉬고 바로 출근하였다. 나의 배우자나 부모님은 방송 매체에서 실업률이 높아 타인은 구직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바로 구직활동도 안 하고 바로 취업이 되고 직장에 출근하느냐고 한다. 나의 배우자도 이런 코로나 19 시국에 취업한다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 봉급을 매달 받고 있으며, 투잡, 쓰리잡을 위한 돈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은 서적을 탐독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책으로 공부한다. 나는 전문학사로 시작하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학점으로 공학사를 취득하고 건설법무대학원에서 법학을 선택하였고 또 다른 대학원에서 도시 부동산학을 학업 중에 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을 내어 나의 책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이 3권째이며 앞으로 더 많은 책으로 독자에게 많은 보탬이 되려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경매 책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고 실천한 것이 토지경매로 시작되었다.
내 나이 32살 때쯤 2003년도 산에서 선배와 등반하다 추락하였다. 산에서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아팠으나 가난한 직장인이 헬기의 119 구조비용이 없어 걷다가 업히다가 내려왔다, 그 시간은 밤 10시경에 병원에 도착하여 왼쪽 다리 전체를 깁스를 6주 동안 하였다. 그 당시 직장인도 아닌 자영업자였고. 내 나이 35살이었다. 수입이나 벌이가 없었지만 6주 동안 거실 안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경매 책을 수 권 구매하여 정독하였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었고 페이스북도 없는 보통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 휴대전화는 일명 무전기처럼 큰 휴대전화이었다. 그러니 경매 관련 책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장인 교보문고, 영풍문고, 종로서적에서 아내가 방문하여 수권을 구매하고 난 그 책을 탐독하고 바로 목포지원의 경매계에서 실전에 투입하여 입찰하였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처음에 2,700만 원의 임야의 맹지 토지였다. 낙찰되었고 낙찰된 토지는 그 당시에 바로 1억을 제시하는 구매자를 만나게 되었다. 책이 나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할 것이다. 경매를 잘 알지도 못하고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실전에 투입하면 자살하는 사람이라고 경매꾼이 말한다. 이후 주위의 토지 약 9,000평을 2005년도까지 10여 차례 경매장에서 수익을 새로 마련하였다. 대부분 공시지가 이하로 낙찰을 받았다. 길 없는 땅이었던 토지를 길 없는 땅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로접도 면은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았다. 공시지가의 1.5배로 써내 낙찰을 받았다. 참으로 겁도 없이 덤벼서 승리한 것이다.
지금은 낙찰가의 10배이며 현재는 토지를 임대하고 있다. 토지의 공급은 없는데 수요자는 많다. 대한민국의 토지는 부증성으로 인하여 수요자는 항상 존재하고 있으니 아버님의 시대와 나의 시대에는 무리 없이 토지임대 소득을 새로 마련한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고 토지임대로 투잡을 한다. 내가 투잡을 시작한 2003년은 벌써 약 20년이 된다. 쓰리잡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강의할 생각으로 도시부동산 박사과정의 대학원을 다닌다.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내 친구이자 기술사 선배인 내 친구는 일주일에 2일만 강의를 한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일반을 대상으로도 강의한다. 경력만 있으면 시험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공학을 담당하여 강의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학원에서 강의한다. 그 사람은 현재 앵벌이라고 자찬한다. 운전면허증도 없는 사람이고 월 500~600만 원의 강의료를 받고 있다. 직장에서 약 8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술 한 잔에 그는 나와 친구 하기로 하였다. 그 친구가 강의하는 것은 대학의 전공과 상관이 없는 수학과를 7년 만에 졸업한 사람이었다.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첫 직장에서의 직업 때문에 졸업 후 경력을 쌓은 후 기술사를 취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한 학기를 재학하고 또, 한 학기를 쉬면서 아르바이트로 유명한 장수생이었고, 1987학번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졸업한 친구이다. 누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진짜이다. 그 친구는 술을 많이 좋아하는 친구이며 아직도 면허증이 없어 술자리가 있는 날은 항상 아내인 배우자가 항상 그를 모시러 온다. 그는 기술사를 취득 후 석사학위를 기술사와 동일한 학과로 석사학위로 졸업 후 현장에서 안전 분야의 책임 감리를 하고 사람이다. 건설현장에서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기술사이면서 친구이고, 그 친구는 지금도 주말에 열심히 강의하고 자신만의 일을 추구한다. 그는 주말에 일하는 앵벌이라고 자신을 자찬한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투잡을 하며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벌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주위에 투잡, 쓰리잡, N 잡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너무 많다.
우리는 공부를 하기 위한 시간, 돈, 체력 등 투입하여 노력하고 최상의 상태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고 또, 중요한 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하여 아낌없이 투자한 시간과 돈을 인생의 대가로 완전한 나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모습을 그린 후에 기간과 돈, 그리고 단기간에 확보할 수 방법을 검토하여 실행하여야 한다. 지속해서 투자한 한 시간은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10년, 20년 후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빛나도록 해야 한다.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목표에 따라 불가능하더라도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일본의 야구선수인 오타니는 만다라트표를 작성하고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야구 스타 투수가 되었다. 만다라트는 일본의 디자이너 이마이즈미 히로아키가 지난 1987년에 창안했다. 『내 두뇌에 날개를 달아주는 생각의 도구』(가토 마사하루 지음)에 따르면 만다라트(Manda+la+Art)는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이란 뜻이다. ‘Manda’는 진수, 본질을 ‘la’는 소유한다는 의미의 범어. 만다라(曼茶羅)는 깨달음의 경지를 반복되는 원과 네모, 연꽃무늬 등으로 표현한 불화로, 현대 심리학에서도 명상과 치유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중앙일보, 2016. 2. 2.〉
독자인 당신도 구글에서 만다라트표로 지금 당장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81칸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무리라 본다. 당장 하라는 것은 아니다. 며칠이 걸려도 한번 빈칸을 채워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씩 적어 실천하는 게 투잡, 쓰리잡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문가로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작은 습관으로부터 나오니 천천히 하라.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빨리’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도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였고 명장 역시 수많은 시간을 땀과 노력으로 결실을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