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대학원생이 정말 많다는 사실이었다. 학부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물론,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거나 퇴직 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간 사람들까지 다양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금융권에서도 코로나 시기에 외부 활동이 제한되자 대학원이나 자격증 공부 등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시간적인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있었다.
협력 업체와 업무 관련 소통을 하다 보면 '이 직원은 나와 나이도 비슷한데 참 스마트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들의 명함을 보면 대학원 출신자들이 많았다. 나 역시 대학원 과정을 거치고 꾸준히 연마하면 이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내가 재직 중인 은행에서는 매년 석사과정 지원자를 공모해 선발한다. 주말 석사과정도 있지만, 주중 전일제 과정은 회사 출근 대신 대학원을 다닐 수 있기에 경쟁이 몹시 치열하다. 서울 발령 첫날부터 나는 서울 근무 경험과 대학원 진학의 뚜렷한 동기를 씨실과 날실처럼 잘 엮어내어 언젠가는 전일제 MBA 과정에 지원해보리라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이 꿈은 내가 생각해도 무모하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방대 출신에 본부 근무 경험도 없고 승진 속도도 빠르지 않으며 연줄도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원 공모에 선발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명문대 출신, 본부 주요 부서 근무, 초고속 승진 등 공통점이 명확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 꾸준히 자격증 공부와 연수에 참여했고, 공모 선발 필수 조건인 토익 점수를 만들기 위해 틈틈이 독서실에 다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시간도 놓치지 않으려 스마트폰 토익 유료 앱을 활용해 공부했다. 엘리베이터나 신호등을 기다릴 때조차 한두 문제라도 풀며 점수를 올렸다.
선발 가능성이 희박한 도전이었기에 남몰래 준비했고, 때로는 이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네이버 지도 앱으로 목표한 MBA 캠퍼스 인근을 둘러보며, 언젠가 이곳을 거닐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꿈에도 수차례 등장할 만큼 간절했기 때문일까. 결국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내가 선발되었다.
나보다 일도 잘하고 스펙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졸업 후 복직하여 은행 동료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장문의 진심 어린 지원서가 유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학원을 다니는 지금,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유수한 다른 직원들 대신 나를 선발한 것이기에,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직장생활을 대략 30년 정도로 본다면, 이제 약 3분의 1을 조금 넘긴 셈이다. 지금은 직무에 대한 지식의 깊이와 폭이 기대되는 시기이며 앞으로는 의사결정자로서의 역량도 점차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간절한 염원을 품고 시작한 대학원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이다. 회사의 지원과 개인의 노력이 합쳐진 소중한 시간인 만큼,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훗날 다시 업무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이 기간에 배운 것들이 응축되어, 더욱 가열차고 의미 있는 일의 추진력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