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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ki Aug 09. 2024

우울증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

책임감으로라도 움직이세요.

이전 편에서 말했다시피, 우울증에 걸리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도 바빠서 상대적으로 실수가 잦아진다. 거기에 중증의 우울증이 되면 글이 읽히지도 않고, 감정이 진정되지도 않고, 시간 감각까지 무뎌져서 업무에서 자질구레한 실수들이 발생하곤 한다.


만약, 지금 당장 약을 먹어서 나 자신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렇다고 나아질 시간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우울증을 안고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문제를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팁을 주려한다.






1. 일단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진짜 우울증인 사람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다. 나도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우울증이 심해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제발, 제발, 할 수 있는 것만 하길 바란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다. 정말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소리다. 예를 들어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라고 해보자. 당신은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일도 잘하고 싶다. 근데 당신은 그에 대한 여파로 우울증에 걸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라.


우울증은 성취를 얻지 못하면 급속도로 악화된다.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망가진다. 육아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집안일이라도 포기해야 한다. 집안일을 사람을 고용해서 처리하든, 남편에게 맡기든, 어떻게든 당신이 벅차하는 일 하나를 정리해야 한다.


즉, 업무와 내 삶이 미니멀해져야 한다. 

감당 가능할 만큼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다.


꼭 육아가 아니라,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괜히 욕심내서 시키지도 않은 일 먼저하겠다고 하지 말자. 눈앞의 일만 처리하고, 눈앞의 일만 처리하면서 상급자에게 분기별 보고만 철저하게 해라. (우울증에 걸린 당신은 판단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걸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 이외의 것을 넘보다간 과부하가 걸려 우울증이 심해지고, 삶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당신이 괜찮아진 뒤에, 다시 얻으면 된다. 하지만 우울증일 땐 최대한 일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만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답하고 싶다.


2개.


당신이 하는 일이 2개를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 2개를 넘어가면 당신은 망가질 거다. 우울증에 걸렸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한도 치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3개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우울증이 심했을 당시엔 솔직히 1개 하는 것도 벅찼다.


인간관계도 하나의 종류로 친다. 그러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직장과 인간관계, 두 가지를 선택하는 게 좋을 거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미니멀하게 내려놓아라. 


당신이 가진 것보다, 그것을 쥐고 있는 당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2. 사회에서 짧은 시간 내에 당신을 위한 타인을 찾으려 들지 말라.


우울증은,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그러니까 말이다. 인정이든, 감정이든, 뭐든 바라게 된다. 그 말은 즉, 우울증인 사람은 타인에게서 정신적인 무언가를 의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근데 이거 아는가? 잘 맞다고 생각하는 관계라도, 그 기간이 길지 않은데 상대방에게 정신적인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무례한 짓이다.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가? 그럼 생각해 보라. 당신이 선을 넘어 필요 이상의 감정적 관계를 상대방에게서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울증은 이걸 인지해야, 주변 인간관계가 풀린다.


이걸 인지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사람을 만날 때, 하나만 머릿속에 박아 넣고 있으면 된다.


"이 사람과는 언젠간 멀어질 거다."


그렇다고 해서, 무례하게 대하는 소리가 아니다.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라는 말이다. 왜냐고? 사회에서 고등학교처럼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는 일이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그렇게 녹록한 세상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비즈니스 관계다. 


그러니까 혼자서 잘해주고 (게다가 상대방은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망하지 말고, 그렇다고 돌보듯이 굴어서 밉보이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내다 보면 언젠간 친해져 있다.


관계는 시간이 만드는 거다.


운명적인 친구? 운명적인 만남, 이런 거 진짜 하늘의 별따기다.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맞춰간다면 진짜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즉, 모든 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거다. 물론 상대적으로 수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성격 자체가 이런 거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노력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외모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외모는 정말 자기 관리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관계 형성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선을 넘지 않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나만의 방법은 별거 없다.


그냥 생각날 때쯤 안부 인사 걸어주고, 걸어오는 얘기가 이어지게끔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그러다가, 내가 힘들다 싶을 때 이야기를 적당히 끊으면 된다.(약속이 있다던지, 지금 가봐야 된다던지 그런 식으로 말을 끊으면 된다.)


그리고 SNS으로 자주 연락하는 것보다 실제로 몇 번 만나는 게 그 사람 뇌리에 더 깊게 박힌다. (상대방이 SNS에 집착한다면 예외다.)


하지만 이때 만나서 '내가 힘든 이야기'만 하면 안 된다.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기브엔 테이크다. 준만큼 해주고, 좋아한다면 조금 더 해주면 된다. 너무 잘해주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부담스럽지 않은 소량의 선물이나,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해주면 된다.






3. 감사 인사를 잊지 말 것


이거, 생각보다 꿀팁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당신을 무시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고맙다는 인사는 입에 달고 다니는 게 좋다. 우울증인 사람들은 솔직히 얼굴부터 굳어져 있다. 내가 우울증일 때 찍힌 사진들 보면 하나같이 우울한 얼굴로 찍혀 있다. 그렇게 되면 첫인상이 좋지 않은 경우가 다수다. 


그럴 때 손쉽게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게 고맙다는 인사다.

그렇다고 해서 빈말로 하는 건 소용이 없다. 진심으로 고마운 점을 생각해 말해라.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쥐어짜 내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만한 것을 고마워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상급자에게서 피드백이 왔는데 '지적해 줘서 고맙습니다. 팀장님.' 하면 당신은 미친놈으로 찍힌다.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지 말고, 상대방으로 인해 얻은 이익에 대해 고마워하면 된다.


생각해 보면 상급자에게서 얻은 이익은 피드백이 아니라, 피드백으로 '고쳐진 업무'다. 즉. '팀장님이 아니었으면, 이 실수를 놓칠 뻔했어요. 감사합니다.' 이게 좀 더 정확한 감사 인사가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칭찬을 좋아한다.


다만 우울증이라면, 2번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칭찬을 하다가 과해져서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감사인사를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찾는 방법은 아주 심플하다. 그냥 당신을 비꼬는 대상에게 하지 않으면 된다. 우울증인 당신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본다면 가장 먼저 대화에서 티가 난다. 은근슬쩍 당신을 깎아내리거나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감사 인사뿐만 아니라, 다른 대화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냥 애초부터 필요한 대화만 하면서 지내는 걸 추천한다. 틈을 줬다간 당신의 우울증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냥 그 사람과 대화할 때 난 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대화해라. 그러다 보면 반응이 없는 당신에게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다. 근데 의외로 역으로 이런 사람들 앞에선 우울증을 최대로 발현하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도망가더라 ㅎㅎ.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깨달았던 점들을 가볍게 정리해 보았다. 


이걸 하나둘씩 깨달아가면서 일을 하니,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었다. 가식적으로 군다고 나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가식적이든 뭐든 일단은, 노력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했다. 그 결과가 우울증임에도 사회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걸로 나타났다. 우울증이라도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만 포기한다면,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조금만 노력한다면 달라질 수 있으니,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다면 내가 적은 글을 본인의 상황에 맞게 바꿔 한 번 시도해 보는 걸 추천한다.


다음 편엔, 현재 내 우울증의 경과와 우울증에 도움이 되었던 살림템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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