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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소년 Sep 29. 2020

라면이 먼저냐, 스프가 먼저냐

탕수육의 부먹 찍먹에 버금가는 국민 고민. 라면과 스프 중 누가 먼저냐?

우리나라 음식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김치를 떠올릴 것 같은데요, 틀린 답은 아니지만 라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라면은 우리나라의 발전과정과 같이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60-70년대엔 배고픈 서민들의 주식이었고, 학생들과 군인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친구였지요. 


지금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1986년 아시안게임의 육상 3관왕을 차지한 육상선수 임춘애 선수도 모 언론사의 ‘라면만 먹으면서 운동했다’는 오보가 있을 만큼 가난한 이들에게 라면은 간식이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주식이 되곤 했었습니다. 군대 있을 때의 뽀글이 라면과, 학생 시절의 컵라면 사발면은 배고픔을 달라주는 간식을 넘어 추억과 향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사실 라면의 기원은 일본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은 우리나라의 라면이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1963년에 등장한 삼양라면입니다. 그때 당시의 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고 하네요. 요즘엔 10원짜리 동전은 돈으로 취급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짜장면 한 그릇이 15원이었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일주일에 1개 이상의 라면을 먹습니다. 대한민국의 라면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면을 사랑하는 주요 나라의 년간 라면 소비량을 보면 대한민국은 1인당 75.6개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 사람이 75.6개의 라면을 먹는다는 것이니까, 5일마다 한 개씩 먹는 셈입니다. 2위는 네팔로 58.4개, 그 뒤를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이 잇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은 ‘농심 신라면’이고, ‘오뚜기 진라면’과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짜파구리 덕분에 ‘농심 짜파게티’가 2위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라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만큼 라면의 조리법 또한 매우 다양하지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유명해진 이후 유튜브에는 영화에 나왔던 짜파구리의 조리법에 대해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동영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라면의 종류는 400여 가지를 넘는다고 합니다. 라면의 종류만큼 다양한 것이 라면의 조리법이라고 할 수 있죠. 엄청난 종류의 라면과 조리법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라면 조리에 대한 오랜 국민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라면을 끓일 때 라면을 먼저 넣어야 하느냐, 아니면 스프를 먼저 넣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죠.

저도 라면 끓일 때마다 늘 가지던 고민이라 해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봤더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매체는 스프를 먼저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더군요. 그 이유로는 끓는점이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과학적인 표현을 빌리면 ‘같은 대기압 하에서는 일반적으로 불순물이 용해되어 있을 경우 물의 끓는점이 상승한다’는 겁니다. 표현은 어렵게 되어 있지만 어쨌든 물에 무언가 다른 물질이 많이 녹아 있을수록 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얘기인 거죠. 그러니까, 물에 '무언가 다른 물질'인 스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점이 올라가고 이때 면을 넣으면 높은 온도에서 빠른 시간 내에 조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맛있는 라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한 이론입니다. 


한 유명한 언론매체에서는 스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점이 5℃나 올라간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해당 언론매체의 지명도로 보면 검증없이 기사를 썼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제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상식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염도가 높아지면 끓는점이 높아지는 건 맞지만, 100℃에서 끓는 물이 라면 스프 한 봉지로 105℃에서 끓게 된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면 국물보다 훨씬 짠 바닷물(염도 3.5%)의 끓는점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바닷물의 끓는점은 일반 맹물의 끓는점인 100℃보다 아주 조금 높은 100.6℃입니다. 라면 국물의 일반적인 염도가 바닷물의 1/5 수준인 0.6~0.7% 범위니까, 라면 스프만으로 끓는점을 5℃나 올릴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하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어떤 블로거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실험용 온도계를 장착하고 라면을 끓이기도 했더군요. 이 블로거의 실험 결과를 보면 라면 스프를 먼저 넣으면 물의 끓는점이 0.2~0.3℃ 정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라면 국물보다 5배 정도 짠 바닷물의 끓는점이 100.6℃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수긍할 수 있는 결과인 것 같습니다. 


라면이 먼저냐 스프가 먼저냐의 오랜 고민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어느 것을 먼저 넣어도 상관없다는 싱거운 판정승으로 끝나버렸습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제게 씁쓸함을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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