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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연 Oct 28. 2022

길 잃기 안내서

길을 잃다 보면 길을 찾고 있는 나를 마주하겠지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를 들고 있다. 

지금 내 마음 상태에서 나를 이끄는 책 제목이었다. 길을 찾아야 하는데, 길을 찾으려 멈칫대고 있는데, 길 잃기 안내라니! 역설적인 이끌림일지 모르겠지만 늘 그랬듯이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까. 길을 잃는 법을 좇다 보면 길을 찾는 법이 보이겠지. 길을 잃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길을 찾고 있는 나와 만날 수 있겠지. 

앞날이 희뿌연 안갯속 같다. 책장을 넘기며 지금 내게 필요한 글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사이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글과 나, 작가가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내 현재 생각이 얽히고설켜 내가 책을 읽고 있는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거기다 기분마저 오르락내리락 갈피를 못 잡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책이 있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다. 평온한 채로 책에 쏙 빠져서 읽지는 못하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찾은 순간 다시 만날 책이라는 걸 알아챈 것만으로도. 그런 책이 나 여기 있어, 하고 인사를 건네준 걸로 족하다. 당장 읽지 않아도 아니 읽어낼 수 없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만날 수 없어도 어느 날 따뜻한 눈빛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책은 때론 친구이기도 길 위에서 저만치 앞서 손을 흔드는 안내자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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