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연 Oct 27. 2022

어디에도, 아무것도

새로운 건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나에게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는 일은 내 오랜 화두였다. 

이곳이 아닌 저 멀리 어딘가는 아름다울 거라고 믿었다. 꿈을 꾼다는 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누리는 일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지금이 아닌, 이곳이 아닌 저 멀리를 향하는 일은 어느 순간 습관처럼 나에게 스며들었다. 의심하지 않고 오랜 시간 그렇게 믿으며 지내다 보니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마치 당연한 일처럼 굳어졌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스미듯 저 먼 곳을 꿈꿔온 것처럼 여기 아닌 저기도 지금 아닌 막연한 언젠가도 별것 없다는 걸 어느 날 자연스레 알아차렸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대사처럼.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더 멋진 삶을 꿈꾸며 새로운 곳을 찾아왔지만 그곳에서도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윌리와 에바. 

나에게도 내가 꿈꾸는 새로운 곳은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꿈꾸는 게 있다면, 먼 곳을 바라보면서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막연히 기다릴 게 아니라 꿈이 아닌 현실을 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먼 곳이 아닌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일어서서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허상을 좇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