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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연 Oct 28. 2022

더 멀리, 더 깊이

내다보고 생각할 수 있기를

오래전부터 그랬다. 양 극단을 오가는 기분. 

마음껏 좋은 상태나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햇빛 쨍한 날 햇살 가득한 마당에 찬물을 끼얹듯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순간 당황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일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구나, 챙겨야 할 일들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면 처음 당황했던 기분은 저 멀리 사라지고 그렇게 되고 만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스스로를 납득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좋은 순간에도 마냥 좋아하기가 힘들다. 금방이라도 나쁜 일이 생길 것처럼 긴장되고 불안하다.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나쁜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걱정하는 중에도 조만간 더 나은 상황이 다가올 것을 조금이나마 바라게 된다. 

좋고, 좋고, 또 좋기만을 바라던 시절도 있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나쁜 일들이 나를 피해 가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니 바라기만 한 게 아니라, 불행이 나를 비껴갈 거란 막연한 믿음마저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믿음이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때로는 나쁜 일이 당분간 이어지리라는 예상을 하게 되는 날도 있다. 나의 한 시절이 우울과 힘든 시간들로 채워질 거란 걸, 이 상황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날들. 피할 수 없다고 내내 불안 속에서 지낼 수는 없으니 환기할 거리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일에 몰입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 편한 시간을 갖는 게 좋다. 길을 걷거나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거나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나쁜 일일수록 그 안에 갇혀 지내다 보면 생각이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른다. 나쁜 기운의 깊이 또한 끝도 없이 깊어질 뿐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길 중 하나다. 글을 쓰다 보면 고통의 깊이가 더해지기도 하지만 배설하듯 쏟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만 급급하지 말고 더 멀리 내다보고 더 깊이 생각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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