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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Nov 08. 2020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고 했지

곳곳에 숨어 있는 일상의 소중함

어제, 아이 낮잠을 재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 지끈대기 시작했다.
 “아...... 또 시작이네.”
출산을 하고 나서 자주 겪는 두통이다. 조금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그분이 또 찾아온 것이다.

똑똑똑

제발 이쯤에서 멈췄으면 했다. 아직 오후 두 시. 남편이 오려면 적어도 네 시간이 넘게 남았단 말이다. 내가 아프면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는 것을 안다. 몸을 일으켜 세워 아이의 컵에 우유를 따라주는 일도, 간식을 내어주는 일도, 무릎에 앉혀 함께 책을 읽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진다. 내 컨디션 난조에 따르는 파급력은 상당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상의 모든 일들을 마비시켜버린다.

아기가 잠들고 나서 나도 조금 눈을 감고 있으면 곧 괜찮아지겠지. 무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 북소리]라는 여행 에세이에서 이야기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인 소모에서 비롯된 자신의 두통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벌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이름은 조르지오와 카를로. 나도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이 존재에게 이름이라도 붙여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바로 어제 체력 증진에 좋다는 비타민b까지 사서 먹기 시작했던 터였다. 내 노력이 무색했던 것일까, 아니면 조금 더 일찍 챙겨 먹었어야 했던 것일까. 두통의 세기는 보란 듯이 세력을 굳혀갔고 아이가 잠에서 깰 때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가 잠에서 깨고 함께 거실로 나가는 순간에는 신기하게도 두통이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 늘 그랬듯 나는 잠에서 깬 아이의 간식을 준비했다. 함께 사과를 나눠 먹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또 그분의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때는 아이가 낮잠을 자고 나온 직후.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집중해서 놀아주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심한 숙취가 있는 느낌인 것도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뱃멀미를 하면서 숙취를 함께 느끼는 고통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와 호흡이라도 맞추려는 건지 방금 먹은 사과도 탈이 난 모양이었다. 오늘 먹은 모든 음식을 게워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 막 두 돌이 된 아기는 변기를 붙잡고 있는 엄마를 이해할리 만무하니 말이다. 최대한 아이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틈을 타 재빨리 볼 일을 봐야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45분. 남편이 귀가하기 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남은 시각이었다. 남편에게 간략히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그 어느 때보다 1분 1초가 길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것조차 어려워 누워있어야만 했다.


재이야, 엄마가 갑자기 몸이 너무 아야하는데, 우리 방에 가서 책 읽을까?


다행히 아이는 마다하지 않았다. 한번 씩- 웃어주고는 읽고 싶은 책 하나를 골라 함께 침대에 올랐다. 평소보다 낮아진 내 목소리 데시벨. 책 하나를 다 읽어주는 것이 큰 미션처럼 느껴졌다. 더는 읽어줄 수도 없겠다고 판단하고는 유튜브에서 노래 영상을 틀어주었다. 아이는 영상에 몰입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신나게 춤추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나는 그 곁에 누워 힘 없이 핸드폰이 넘어지지 않게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남편이 귀가할 시각만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을 체크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 감정에 크게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 말고는 다른 차선책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융통성을 조금 발휘하는 것뿐이라고 자위했다.






남편이 문을 여는 현관문 소리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따뜻한 손이 내 손 위에 포개지면서 어지럽게 엉켜버린 머릿속도 조금씩 풀려갔다. 잠깐의 온기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

일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것. 우리가 오늘 함께할 밥상에 집중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의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는 것. 반복되는 일상이 때로는 권태롭게 느껴져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퇴색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서프라이즈'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나였다.

남편이 아기를 재우러 들어가고, 나는 우리의 작은 서재로 들어왔다. 내 노트북에 연결해놓은 그의 키보드가 보인다. 
타자를 칠 때마다 타닥타닥 기분 좋은 소리가 나서 내가 눈독 들이던 키보드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방을 정리한다던 그의 귀여운 서프라이즈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불까지 들어오는 멋진 키보드. 타닥타닥 소리가 재밌다.



이게 서프라이즈지 뭐야.

아픈 엄마에서 아프지 않은 엄마로 돌아온 바로 지금. 

일상이 사무치게 고마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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