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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Apr 08. 2021

시판 이유식에 대한 편견

밥을 사먹인다고 해서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아이가 먹을 이유식을 처음 만들던 날, 그 날의 설렘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모유가 아닌 다른 것이 아이 입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혹시나 모유의 영양분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던 시점이었고 이유식 시작을 계기로 아이의 균형 잡힌 발육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했다는 것은 감동과 설렘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수고와 노력이 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경우 이유식 만들 조리 도구를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식재료의 신선도, 배합, 식단표를 짜는 일까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요즘에는 이유식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취사선택은 어디까지나 엄마 개인의 몫이고, 아이마다 선호하는 메뉴가 있기 때문에 내 아이의 기호나 상황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수고가 필수적이다.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무렵, 나는 또 비장해지고 말았다. 너무 비장해진 나머지 이유식 시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내가 먹을 음식 만들기도 어려운데 아이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직접 조리해야 한다니. 이 전까지는 내가 요리를 하기 싫다거나, 체력적으로 힘들다거나, 먹고 싶은 메뉴가 있을 경우에는 외식을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유식의 세계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혹시라도 내가 아이 음식을 만들다가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아이가 탈이 나기라도 한다면? 알레르기가 심하게 나면 어떡하지? 가만 보자, 우리 집에서 응급실은 어떻게 가야 하는 거더라? [......] 

초보 엄마의 걱정 스위치는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제멋대로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유난히 이유식 만드는 것을 버거워했던 이유에는 내 성격적인 까닭도 있다. 나는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단 가능한 모든 내용을 읽고 머릿속으로 정리가 된 후, 마음으로 받아들여져야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사람. 그렇기에 나는 무엇을 처음 시작하던지 그 진입장벽이 꽤 높은 사람이다. 잘해보려는 마음이 시작을 늦추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데 엄마가 된 이상, 이런 '처음의 일'들에 무수히 부딪히고 깎여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에도 벌어지는 무수한 '예측 불가능'한 것들에 유연해지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의연해질 줄 알아야 했다. 과정 속에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구나 하고 넘겨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했다.






초기 이유식이 끝나고 중기 이유식에 접어들면서 손이 많이 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초기 이유식은 식재료 하나를 다듬고 냄비에 조리하면 끝이 났는데, 중기로 넘어오면서 식재료의 가짓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한 번에 3-4가지의 재료를 다듬어서 소분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 3-4일 치의 음식을 조리했다.


몇 차례 해보고 나니 재료 손질 과정에 시간이 너무 소요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주된 재료 손질을 주말에 몰아서 했는데, 어느 날은 7시간 만에 겨우 부엌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손이 느리기도 했고, 재료 손질이나 음식 조리 단계마다 레시피를 보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 날은 뻐근하다 못해 제대로 펴지지 않는 어깨와 목, 허리를 뒤로 하고 '앞으로 이걸 어떻게 해 먹이나' 하는 또 다른 걱정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시판 이유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쥐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중, 한 문장에 내 눈이 번쩍거렸다

"이제 더 이상 재료 손질 어렵게 하지 마세요."



이유식 재료를 직접 세척, 손질한 후 냉동 큐브로 판매하는 제품이 눈에 띈 것이다. 재료 손질에 대한 시간만 절감하더라도 이유식 만드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당 사이트에서 자세히 보니 이유식에 주로 쓰이는 여러 채소들의 원산지와 제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아이의 선호도에 맞게 입자 크기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었다. 와 바로 이거다!!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는 완전조리된 시판 이유식과 손질된 이유식 재료를 구입하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던 사람이었다.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터지는 아기 물건이나 음식 관련 사고들로 인해서 굳어진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그런 뉴스 기사 말고, 내가 진짜 편견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분위기나 다른 이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도 아니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서 아이가 먹을 음식을 외부에서 시켜 먹인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에게 '시판 이유식이나 재료를 쓰는 것은 안 돼, 사 먹이는 것은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나에게 은근하게 압박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는 집에 있는 엄마잖아. 아이 음식은 당연히 네 손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음식을 만들면 되잖아.' 






왜 자꾸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일까? 시간적 여유가 안 되어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이든,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이 자신이 없거나 감당이 안 되어 도움이 필요해서 사 먹이든, 그게 그거 아닌가? 내 상황이나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또 주변의 애매한 눈치만 보며 나를 옥죈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얼마 후 나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냉동 큐브를 주문했고, 아이의 이유식 조리 과정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됐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는다'는 것의 개념 정의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유식을 먹는다는 것은, 아이가 향후 고형 음식을 먹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새로운 맛을 보게 하고, 새로운 식감을 경험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과정. 그 과정에서 먹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 이유식 과정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와 나, 우리 두 명이 모두 즐거워야 가능한 것이었다. 때로는 주문한 냉동 큐브의 도움을 받고,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때는 시판 이유식을 시켜보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도움받을 부분은 받고. 내 마음이 편해지니 그동안의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듯했다.






이제 내 옆에 있는 아이는 매운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식을 나와 함께 먹고 있다. 이제는 아이가 밥을 먹다 남겨도 크게 개의치 않고, 아이 반찬에 목매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고사리나물은 시장에 가서 자주 사 먹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간단한 반찬과 국을 끓이는 정도. 어떤 음식을 해줄까 자주 찾아보지만 스트레스는 없다. 이제는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절약된 시간에 아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고, 엄마 그네를 한 번이라도 더 태워주면 그만이라는 것을 아니까.



어디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끙끙대던, 2년 전의 나에게.


밥을 사먹인다고 해서 네가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

필요에 따라 믿을만한 곳에 손을 뻗고,

그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써서 아이와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것임을.


너무 모든 것에 애쓰지 말아.

조금만 내려놓아봐, 그러고 나면 보이는 게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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