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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Mar 18. 2021

엄마가 더 중요한 날

때로는 아이보다 엄마를 더 챙겨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의 중심은 아이가 된다. 적어도 내 세상에서는 그렇다.


아이는 조금 전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꾹 감고 잠든 신생아를 보고 있자면 괜히 비장해졌다. 3kg의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가벼웠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아이를 건강하게 잘 지켜내는 것. 그뿐이었다.


이 아이가 누구를 더 닮았는지, 얼마나 예쁜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이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할 작은 사람'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중간한 사랑으로는 감히 가지지 못했을 비장함이었다.


아이는 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든 것에 관여해야 했다. 문제는 남편에게도 아이를 맡기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는 모유수유의 영향이 컸다. 잠시 외출을 할 때는 유축해둔 모유를 젖병에 넣어서 먹이면 되는데, 아이는 젖병으로 먹는 것을 어려워했다. 내가 직접 살을 맞대고 먹이는 양에 비해 젖병으로 먹는 양은 현저히 적게 느껴졌다. 모유로만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를 두고 몇 시간을 외출한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내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다크서클은 이미 내 얼굴 위의 공공연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고 맥아리 없는 동공과 늘 산발인 머리카락, 굽은 어깨와 등, 잦은 두통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육체는 정신까지 좀먹기 시작했다. 나는 자주 예민해졌고 그 불편한 공기가 집 안 공기를 무겁게 메울 때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하니, 아이에게 내 힘듦을 푸념하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소름이 끼쳤다.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제발. 말만은 제발.


나는 '엄마로서의 나'모습에 지나치게 집중했다.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가의 엄마였던 사람처럼. 몇 번을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겨우겨우 다시 일어날 힘이 생겼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


'아, 몸을 그동안 너무 모른척했구나. 내가 많이 지쳤구나......'






아이와의 분리에서만큼은 우유부단함의 끝판왕이던 나에게,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카페에 나가서 조용히 읽다가 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 리. 가.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좋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계속 등을 떠밀었지만 나는 말에도 토를 달았다. 고작 몇 시간 나갔다 오는데 뭐가 달라지겠냐고,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이다. 결국 남편의 승. 나는 그렇게 떠밀리듯 외출하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 카페가 오픈할 시각, 사람이 붐비지 않을 시각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듣고 싶었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경직된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긍정적인 생각이 솟고 한껏 구겨져 있던 내 마음결이 고르게 펴졌다. 그리고 그 반반해진 마음결은 새로운 활력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엄마로서의 최선과 도리를 다 한다'는 개념을 잘못 인지하고 있었다. 엄마로서 아이를 섬세하게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의무지만, 그것이 엄마의 24시간을 아이를 돌보는 일에헌신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아이가 두 돌을 훌쩍 넘은 시점에서 고백하건대, 엄마의 개인 시간 없이 하루를 아이로만 채우는 것이, 그렇게만 사는 것이, 좋은 엄마의 본이라고 없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아이보다 엄마를 챙겨야 때가 있다. 먼저 엄마의 육체와 정신이 바로 서야 아이도 제 길을 마음껏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몸과 정신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려고 한다. 나만 챙기고자 하는 이기심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잘 돌보는 것이 대의임을. 가슴속에 꾹꾹 새기려고 한다.


이제는

엄마 잠깐 친구 만나고 올게,

엄마 카페에서 책 읽다 올게,

엄마 커피 한 잔 마시고 올게,

엄마 잠깐 산책 좀 하다 올게,


라고 말하면

바이 바이- 쿨하게 손 흔들어주는 아이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더욱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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