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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Mar 27. 2021

불완전한 것 같은 마음에 대하여-1

진짜 내 아이에게만 집중해 봐_물건 편

아이를 키우면서 주기적으로 구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기저귀, 로션과 오일, 바디워시, 실내복 등. 고정지출처럼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했던 물품들이었다. 점점 아이의 하루 사이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려졌고, 그러다 보니 필요한 것들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서 생활했다.


같은 기저귀라고 해도 브랜드마다 특이점이 모두 달랐다. 어떤 브랜드는 흡수가 뛰어났고, 어떤 브랜드는 기저귀 면이 타사보다 부드러워서 아이의 살갗에 닿는 느낌이 좋기도 했다. 이런 세부사항들을 하나씩 조사하는 것도 큰 일처럼 느껴졌다. 육아용품의 전반은 내가 처음 접해보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증된 후기가 필요했다. 먼저 물건을 사용해본 사람들의 평이야 말로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내 아이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는 인터넷과 SNS(인스타그램)의 해쉬태그(#) 검색을 사용해서 참고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SNS 이용에 손이 더 많이 갔다. 가독성이 좋았고, 무엇보다 해쉬태그의 정보 검색 기능이 너무 편리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해당하는 개월 수를 검색하면("생후 3개월", "생후 4개월")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또래 아이들은 어디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어떤 분유를 먹는지, 어떤 기저귀를 입는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지 등 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작 나는 다 떨어져 가는 아이의 기저귀를 다른 브랜드의 것으로 바꿔보려던 참이었는데,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의 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눈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있는 우리 집 살림에 비해 사진 속의 아이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보다, 내 아이에게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잘 꾸며진 아이 방에 걸린 액자, 아이의 발달을 돕는다던 유명 교구, '국민 템'이라 불리는 여러 아이템들...  초보 엄마의 눈은 매일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내가 집착하던 물건들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각종 치발기, 보행기, 주방놀이, 그리고 유명 책 시리즈 등이었다. 결국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구매한 치발기는 아이에게 대번에 퇴짜를 맞았고 다시는 재구매하지 않았다. 보행기는 대여했고 주방놀이는 수십 번의 고민 끝에 사지 않았으며 유명 책은 시리즈 대신 단권 몇 권을 들였다. 다행인 것은 평소 내 구매 습관이 충동적이지 않다는 것. 물건을 당장 사들이는 대신에 꽤 많은 시간을 특정 물건의 후기를 찾아보는데 할애했다. 아이가 잠들면 더 집중해서 정보를 찾는데 열중했다.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도 충분히 피곤한 몸으로, 나는 더욱더 '내가 사야 할 것 같은' 물건 찾기에 열중하느라 눈이 벌게지고 뻑뻑해졌다.



내 아이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고 집착했던 물건은 진짜 내 아이도 원하는 물건이었을까?


내가 고른 물건을 아이도 좋아해 주기 바랐던 것은, 내가 그 물건을 고르기까지 들인 시간과 고민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니었을까. 내가 이걸 찾고 고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적어도 한 달은 가지고 놀아야지, 하는 마음.


아이의 저조한 관심 앞에서 실망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몇 번의 사이클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1) 내가 고른 물건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것.


2) 내가 시간을 들여 고른 물건을 아이는 안 좋아할 수도 있다. 실망은 금물.


'완벽한 엄마'라는 우물 안 프레임 안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을 뻔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 내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것들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 물론 이 마음은 꽉 차다 못해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에서 온 것이겠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그 누구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공허할 것이 뻔했다.


그저 나는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다 내려놓고, 지금 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욕심인지 아닌지. 내 취향인지 아이의 취향인지. 초짜 엄마는 단순한 길을 이렇게 뱅뱅 돌아온다. 그러다 생뚱맞은 지점에서 혼자 깨달음을 얻고 지난날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뭐 어때. 다 이렇게 깨지고 부딪치고 실수하고 후회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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