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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Oct 07. 2020

모유수유,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만

이보다 지독한 로맨스가 또 있을까

아이가 태어났다는 행복감에 젖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당장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러 오라는 조리원 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던 떨리는 마음도 잠시, 수유실을 나오면서 내 모습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찬 기색이 역력했다. 누가 봐도 그랬다.


"수유쿠션 버클 채워보세요."

예? 이걸 어떻게 채우는지...


"팔을 이렇게 대보세요."

이.. 이렇게요?


"아이가 제대로 물었나요? 좀 더 깊숙이 물게 해 보세요."

네..? 그건 어떻게......


등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인 것인 것인지 땀을 흘리다 온 것인지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었다. 조리원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쩔쩔매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초짜 중의 초짜 엄마였다. 아이를 출산만 했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맨 땅의 헤딩"이란 말은 그 날의 내 모습을 두고 만들어진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사다난했던 20개월의 모유수유 기간을 회상해본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모유는 알아서 나올 거야


아이만 세상에 내보내면, 모유는 알아서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동시에 모유수유는 '자연스럽게' 되것인 줄 알았고, 아이도 잘 받아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가 음식물을 자연스럽게 입 속으로 가져가 먹고 소화하듯 신생아도 이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능숙하고 말고에 대해서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는 내가 '6개월 동안 모유를 먹었다'라는 사실 외에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는 듯했다. 모유수유의 어려움이나 고충 딱히 없어 보였다. 그저 나도 내가 엄마 모유를 6개월 동안 받아먹었듯, 나 역시 그 순리대로 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다. 어떻게 모유수유에 대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서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는지 말이다. 엄마는 자신의 임신 과정과 내 임신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주 달랐다. 큰 입덧 없이 나를 배에 품고 막달까지 사회생활을 이어갔던 엄마와는 달리, 나는 임신 6주가 시작되자마자 지독한 입덧을 경험하면서도,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엄마의 말을 의심했어야 했다.



모유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 자신의 입으로 먹는 첫 음식이자, 뱃속에만 평화롭게 있던 아이에게 세상 밖에 나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엄마와의 단단한 심리적 연결고리이고, 엄마에게도 '태어난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체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모성애를 확인할 수도 있는 신성한 매개체다.



임신 중의 내 상태를 잠시만 대변하자면, 당시의 나는 입덧 약을 꼬박꼬박 복용하고도 20주 동안은 참을 수 없는 매스꺼움에 누워 있어야만 했고, 얼굴과 몸에는 악성 여드름과 트러블로 인한 대인기피증이 생겼으며, 임신 후반기와 출산 후에도 호르몬 불균형이 심해 전신에 두드러기를 달고 살았기에 모유수유에 대해 공부할 여력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기본적인 세안을 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던 나에게 모유수유는 당장의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선물 받은 책을 펼쳐보면 늘 모유수유 수면습관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임신 초기였을 때만 해도 그런 책들을 내 옆에 쌓아 놓고 정독하며 앞으로 내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출산 후에는 책에 있는 이론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실제에 적용해보겠노라고 확신했다. 그런 생각은 얼마나 갔을까? 육체적인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책 한 권은커녕 아이에게 그 흔한 태교동화도 읽어주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모유수유의 방법이나 중요성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아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육아서적의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하지만 수유자세 한 컷 한 컷을 담아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 책이라고 해도, (첫) 아이를 품고 있는 나로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그 모유수유라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릴 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런 구체적인 정보보다, 개인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누군가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유축기의 종류나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기보다, 실제로 유축기라는 것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공유받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 놓고 유축기를 사용하던 날, 그 날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줄이 주렁주렁 달린 유축기로 내 가슴에 차오르던 모유를 짜내기에 급급했던 날들은, 방금 태어난 생명의 고귀함이나 신비로움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던 나를 가로막았다.


 

안타깝게도 당시 내 주변에는 내게 그렇게 말해줄 사람이 없었고, 나는 모유수유가 얼마나 큰 노력을 요하는 일인지 알지 못했다. 물론 누군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어야만 그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아주 수동적인 일일 테지만, 적어도 나는 이 신비로운 세계를 먼저 맛본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했다. 공유받고 싶었고, 공유하고 싶었고, 내 경우와는 다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왜 나한테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

왜 나는 이토록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실망감, 원망 섞인 물음이 자주 내 마음을 뒤덮었다.





이 가슴은 내가 알던 가슴이 아닌데
 



출산한 지 5일째 되던 날, 내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젖몸살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질 것처럼 팽팽해지면서 열이 났다. 가슴도 뜨겁고 온 몸이 더웠다. 자려고 바로 누우면 무거워진 가슴이 내 온몸을 찍어 누르는 듯했고, 조금이라도 몸을 옆으로 돌릴라치면 가슴이 이불에 쓸리면서 고통이 너무 심했다. 힘겨워하던 나를 위해 남편은 조리원 선생님께 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양배추 잎을 가져왔다.


아니 그게 뭐야...? 


육아 대백과사전에서나 한번 본 적 있는 양배추 잎이었다. 젖몸살이 와서 열감이 있을 때 시원한 양배추 잎을 가슴에 올려놓으면 도움이 된다고 친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분명 오래된 관습 같은 것으로, 개정판이 나온다면 그 부분은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이 가져온 양배추 잎으로 새벽을 겨우 버텼고, 아침이 되자마자 가슴 마사지를 받으며 회복했다. 출산 전날까지도 나는 '가슴 마사지'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이렇게 젖몸살이 심할 때 가슴 마사지를 받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선생님께 계속 물었다,


정말 괜찮아질까요...? 너무 아파서 한숨도 못 잤거든요. 마사지로 정말 괜찮아지는 거겠죠...?


하루 이틀 지날수록 가슴은 거짓말처럼 점점 편안해졌고 열감도 다 내려갔다. 다행히도 그 날 이후로 양배추 잎을 가슴에 다시 대본 적은 없었다.  

  




내가 생각한 모유수유의 장점과 단점


6개월 정도 지나니 '모유수유를 하는 게 정말 편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이슈(유축의 간격, 사출 등)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외출할 때 상대적으로 짐이 적었다. 어린아이와 외출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기저귀, 가제손수건, 평소에 아이가 잘 먹는 간식이나 먹을거리를 조금 챙겨서 나가면 그만이었다.


분유 수유를 했더라면 필수적으로 챙겼어야 할 분유, 분유병, 따뜻한 물 등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가 배고파할 때 내 가슴만 있다면 아이는 안정감 있게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다. 때나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의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은, 어린아이와 외출할 때 큰 빛을 발했다. 물론 내가 늘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끔은 고단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모유수유의 장점이 훨씬 더 커 보였다.


배고플 때 내 가슴을 찾는 아이를 보면서, '이제 그만 좀 찾았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가슴에 파묻혀 열심히 오물거리는 입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수유 중에 나와 눈 맞춤하거나 장난을 치는 경우 잦았는데, 나는 그 순간이 몸서리치게 행복했다. 그때의 행복감을 표현할 방도가 없다. 아무 말로도 감히 그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눈 맞춤의 시간이 20개월을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잠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했다. 쪽잠이 일상이었다. 모유를 먹고도 밤에 깊은 잠을 자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귀신같이 두 시간마다 깨서 내 가슴을 찾았고 나는 늘 비몽사몽 했다. 나는 평소에 잠을 많이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육아의 쪽잠 앞에서는 처절하게 무너지더라. 내게 모유수유 기간은 사람에게 질 좋은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유수유를 하면 먹는 것을 철저하게 가려서 먹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많이 매운 음식은 원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찾지 않았고, 가끔 생각나던 알코올은 무알콜 맥주로 대신했다. 디카페인 원두를 사서 먹기도 했고, 6개월 정도 지나서는 일반 원두를 사서 하루 1잔씩은 먹기도 했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죄책감에서 완전히 해방되기는 어려웠다. 가끔 아이의 변이 평소보다 많이 묽거나 되면 내가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되짚어보기 바빴다.  


먹는 것에는 관대했지만 미용적인 부분(펌, 염색)에 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화학적 작용으로 인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 커트를 하면서 기분 전환이 되었고, 15개월 즈음되었을 때는 천연 약을 쓴다는 펌을 하기도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내가 아플 때였다. 거의 모든 약을 복용할 수 없다 보니 몸이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었다. 항생제나 진한 주사 한방이면 될 몸살 기운에도 온몸으로 맞서 버텨내야 했다. 자주 아프진 않았지만 가끔씩 몸이 좋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긴장되고 초조한 순간이었다.  





모유수유의 끝은 내가 정한다


모유수유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단유의 적당한 시기에 대해서 검색했다. 정해진 답이 없었다. 어떤 이는 아이가 돌이 지나면 모유의 영양분은 없어지기 때문에 모유수유를 지속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두 돌, 가능하면 세 돌까지도 모유수유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는 대상포진을 이유로 단유를 결심했다. 아이가 생후 20개월이었다.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큰 결심을 하고 집 앞 내과에 내원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20개월인데 아직도 모유수유를 하신다고요?

왜죠? 그게 잘못된 거예요. 모유수유를 신성시하는 그 잘못된 관념. 당장 오늘부터 그만두세요.


귀갓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엄마인 내 몸을 가장 우선시해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일 테지만 아무래도 속이 상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은 것 자체가 단유를 결심하고 간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렇게 뾰족하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단유의 시기는 엄마인 내가 정하는 것이다. 모유수유의 적당한 기간은 무엇일까. 초유만 먹이는 것? 100일? 6개월? 1년? 2년? 답은 없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관념이 있는 것이다. 초유만 먹였다고 해서 손가락질할 수 없고, 2년을 먹였다고 해서 야유할 수 없다.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의사가 충분하고, 감사하게도 젖이 잘 돌아서 모유를 아이에게 공급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모유를 잘 먹다가 엄마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다른 환경적인 변화가 생겨 모유를 중단하고 분유를 먹여야 한다면, 그 또한 그렇게 하면 된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모유수유를 또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모든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아는데도 말이다. 아이가 먹기에 충분한 모유가 계속 돌기만 한다면 내 대답은 yes다. 20개월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모유수유의 어려움에 대해서 몇십, 몇백 가지의 이유에 대해서 늘어놓아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미쳤지. 이 힘든걸 또 한다고 했다니. 푸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지금으로선 그 고통이 잘 생각이 안 난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환한 웃음과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만 또렷하게 기억날 뿐이다. 단기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려버린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모유수유의 고충이나 어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복잡한 마음에 뜬눈으로 여러 밤을 지새웠을 수도 있다. 모유수유의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엄마도 분명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그저 당신이 했던 그 모든 수고는 잊은 채 아기였던 나와 20대 중후반의 그때의 젊은 엄마가 진하게 나눴던 교감만이 남은 것이다.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유수유는 정말 지독한 로맨스임이 틀림없다.

이보다 더 한 로맨스가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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