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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Apr 11. 2021

아이에게 건넨 첫 말

괜찮아

'와 정말 시원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내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내 가슴 위에 턱- 하고 얹어졌다. 차디 찬 내 몸 위로 따뜻한 아이의 몸이 포개졌다. 아이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직감적으로 양수의 온도를 생각했다. 온도 차가 너무 심해서였을까, 출산이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일까. 아이가 내 몸 위로 올라오는 순간, 우리의 살이 맞닿는 순간 내 몸은 사시나무처럼 달달달 떨리더니 양쪽 눈에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은 줄줄 흐르고 이는 왜 그렇게 떨리던지.


갓 태어난 아이는 힘차게 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울음을 실제로 듣고 나니 아이의 울음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했다. 행여 어디가 불편한 상태는 아닌지, 병실의 전등 밝기가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신 건 아닌지 걱정됐다. 힘껏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나는 아이에게 첫마디를 꺼냈다.


'괜찮아, 아가야. 괜찮아......'

아기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울음을 뚝 그쳤다. 신기하게도 눈물을 거뒀다.


이 기억은 내 머릿속에 순간의 필름처럼 콕 박혀있다. 그리고 꽤 자주 꺼내 본다. 탄생의 짜릿함과 희열,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과 감사함, 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의 기분 좋은 비장함이 한데 섞여있다.






내가 아이에게 처음 건넸던 '괜찮아'라는 말을 가만 곱씹는다. 나는 아이에게 하고 많은 말 중에 왜 그 말을 제일 먼저 하게 된 것일까. 괜찮다는 건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의미나 필요의 무게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무심코 던진 괜찮아는 사실 상대방에게 괜찮지 않을 수도, 때로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


엄마가 내 아이에게 전하는 괜찮아는 그 온도가 조금 다르다. 세상에 발을 디뎠다는 것은 이제 세상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서 아이는 성공을 경험하고 성취감을 맛보고 때로는 포기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엄마는 아이의 시행착오를 함께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기어 다니던 아이가 제 발로 걸을 수 있기까지, 말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숱한 '괜찮아'가 있다.


넘어져도 괜찮아, 씩씩하게 일어나면 돼

지금 네가 말하고 싶은데 잘 안 돼서 속상했지, 괜찮아 같이 연습해보자.

손이 더러워져도 괜찮아, 이따 손 닦으면 돼.

블록이 잘 안 맞춰져서 속상했구나, 괜찮아 우리 같이 해보자.


어른의 시각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아이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 아이는 매 순간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논리를 동원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실패를 경험한다.






아이에게 내가 처음 건넨 말, 괜찮아. 그때 문장을 완성했다면 이랬을 것이다.

'괜찮아, 아가야.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어. 여기는 괜찮은 곳이야.'


아이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서투른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 일이 있을 수도, 예상치 못한 일 앞에 지레 겁을 먹을 수도,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에 상처를 입고 속상해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또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생각보다 일은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꼬인 지점을 찾다 보면 일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무엇보다 엄마가 네 곁에서 함께 고민해 주겠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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