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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May 07. 2024

나 자신이 되는 법

빈방 찾습니다


“이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p.290>





이십 대 때 난, 어디든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직장도 내가 원하는 걸 찾으려 노력했고 거기에 몰두했다. 돈을 벌고 제 앞가림을 해내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도 느꼈다. 선택에 책임지는 일도 버겁지 않았다.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할 만했다. '나'만 털고 돌아서면 되는 일이니.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원하는 사랑과 믿음을 보여준 사람이었고 내 선택에 의해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졌다. 철저히 '내가' 중심이던 인생에서 축을 옮겼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과 책임지고 돌봐야 할 '아이들'에게로. 인생의 축을 옮긴 건 삶을 뒤흔드는 꽤나 큰 일이었다.


아내와 엄마 노릇을 아무렇지 않게 해 낼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당연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얼마나 고도의 정신수양이 필요한 일인지 그땐 몰랐다.


'엄만 좋겠다. 학교도 회사도 가니깐.'


아이가 뱉은 말에 분통이 터져도 없었다. 아이와 남편이 없는 평일 6~7시간 동안, 내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일일이 따져볼 없었다. 내가 바라는 공감을 주지도 않을뿐더러,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일곱 시간씩 주어지는 자유가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에 휩싸였다. 수전은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잊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무아의 경지에 빠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

분노가 그녀를 잠식했다. 그녀는 포로였다. 매슈에게 반드시 말해야 했다. 하지만 뭘? 수전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 그녀 스스로 경멸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정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p.295-296>




꼭 내 맘과 같은 구절을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알 수 없는  억울함도 분노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유와 해방을 상실한 데에 따른 분노는 어디서부터 날 옭아매고 있을까. 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수전처럼 오래된 호텔방을 빌려 한 없이 창밖을 바라봐야 할까. 질문이 계속될수록 쓰고 싶었다. 아니, 써야만 했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화장대와 식탁을 오가며 내 공간을 찾는다. 그것도 아주 필사적으로. 아이와 남편이 있어도 10분이든 1시간 이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읽고 쓴다. 그렇게라도 내 영역,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일 테니까.


올봄, 창고 방 한쪽에 긴 책상놓았다. 원래는 내 작업실로 쓰려고 했지만 둘째의 키보드와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는 어항이 갈 곳을 잃어 그곳에 올려두었다. 커다란 창문이 액자처럼 걸린 방. 언젠가는 이 방이 나만의 공간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내 시간을 보내야지. 즐겁게, 어둡게, 달콤하게. 그리고 아주아주 부드럽게.


어두운 강물로 떠나갈 마음 같은 건 들지 않도록.


남편과 아이의 물건들로 가득한 책상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약 네 시간이었다. 그녀는 즐겁게, 어둡게, 달콤하게 그 시간을 보내며 아주아주 부드럽게 강변을 향해 미끄러졌다.

...

그렇게 누워서 가스가 작게 쉭쉭거리며 방 안으로, 그녀의 허파 안으로,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어두운 강물로 떠갔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끝>




2024.5.7

어린이날, 어버이날 행사에 지친 날 마음 자국.

소설 한 귀퉁이에 사로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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