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방향
평온한 삶이 낯설었던 나는 남의 밥을 짓는 엄마의 손을 잡고 어떤 말은 하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나의 엄마, 기차의 역방향 좌석에 앉아 떠나요 시선을 두고 온 과거를 뒤지고 찾아 하나쯤은 챙겨 들고 보리밭으로 가요 해가 보리에 걸터앉으면 솥을 걸고 밥을 짓도록 해요 남이 아닌 엄마의 입으로 들어갈 밥을 그릇 가득 퍼서 먹어요
나는,
남이 지은 밥을 꾸역꾸역 먹고살아요 어느 서글픈 밥은 가슴에 걸려 숨을 쉴 수도 없었지요 평온하지 않는 익숙한 시간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어요 엄마가 지었던 그 많은 밥이 어디로 간 걸까요
도착이 머지않은 기차 안에서
도시락의 뚜껑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유리창으로 스쳐 지나는 엄마에게
어떤 말은 하지 못했어요
그런 날 있죠? 엄마가 해주신 밥과 반찬이 먹고 싶은 날. 지난번 감기를 크게 앓고 나니 입맛이 없었어요. 그래도 뭘 먹어야 약도 먹지 하는데 엄마의 밥이 생각나더라고요. 거창하진 않지만 항상 맛깔스러운 엄마의 음식이요.
몸이 나아지고 모처럼 고향에 가자 했죠. 고향으로 가는 KTX의 좌석이 역방향이었어요. 서울에서 진주까지는 세 시간이 넘어서 도시락을 사서 탔어요. 기차가 출발하고, 창밖의 풍경이 뒤로 가는데 시간을 거슬러 가는 기분? 처음 서울로 올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엄마는 식당을 오래 하셨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하느라 엄마의 손은 마를 틈이 없었어요. 엄마의 거친 손은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겠죠? 자신보다 지켜야 할 것이 엄마의 손을, 삶을 부드럽지 못하게 했을 거예요.
식당을 하면서 많은 밥을 짓고 그보다 더 많은 반찬을 만들었어도 아마, 엄마는 당신을 위해서는 제대로 밥을 지은 적이 없을 거예요.
역방향 기차 좌석에서 뒤로 가는 풍경처럼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엄마의 소녀 시절로 가고 싶어요. 엄마가 꾸었던 꿈을 하나 챙기고 청춘 같은 푸른 보리밭에서 엄마를 위한 밥을 지어 둘이서 먹고 싶어요. 그곳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엄마가 아닌 금조씨의 이야기를요.
고향에 도착하면 엄마와 외출을 해야겠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돈가스집에서 밥도 먹고요.
민망하고 쑥스럽다고 미처 하지 못한 얘기도 해야겠어요. 엄마와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