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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13. 2024

술은 술술 밤은 달달

최근 연예인들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중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연예인들, 그중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이들이 출연하다 보니 화제성이 높은 건 필연적인데 이런 채널을 시청하는 청소년들이 '술방'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우려의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늘 보아오던 절제된 모습의 연예인들이 아니라 거나하게 취해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연예인들을 지켜보는 건 꽤 쏠쏠한 재미인 탓에 술방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나날이 높아지는 모양새이다.


술을 매개로 주고받는 대화는 맨 정신일 때보다 조금 더 진솔하고 농밀하다.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뇌를 자극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직접 느낀 바로는 조금 나른하고 조금 기분이 좋고 조금 용감해진다. 그래서 평소에는 이런 얘기해도 되나?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술자리에서는 곧잘 화제로 떠오르는 것일 테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은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를 재운 뒤 소주를 마시면서 부부 사이에 서운한 일들을 털어낸다고 했다. 오, 좋은데? 소원해진 우리 부부 사이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첫째를 낳은 뒤 매일 이혼 생각을 할 정도로 부부 사이가 최악이었다. 남편은 바빴고, 나는 서툴렀고, 시댁은 불편하고, 친정은 멀었다. 돌이켜보면 우울증 비슷한 게 왔는데 우울증인지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울증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겪었는데 이를테면 남편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든가, 내가 죽어 없어져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란 건 꽤나 구체적이어서 수유하느라 자다 말고 일어나 머리는 산발에 가슴은 풀어헤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벽, 세상모르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커다랗고 푹신한 베개로 그의 얼굴을 힘껏 누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식이었다. 어떤 날엔 출근하는 남편 휴대폰에 ‘4444444’를 남긴 적도 있다. 죽을 사 대신 숫자 사를 이용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 어죽어’라고 문자를 보낸 거다.


와인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다. 술을 잘 못 마시니 홀짝이면서 대화를 하기에 와인이 제격이었다. 만 원에 네 캔 하는 맥주도 괜찮았다. 일단 술자리를 만들어 부부가 같은 공간에 가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단 소주는 내가 마시질 못하니 넣어두고.) 처음엔 서로 잔을 마주치며 짠도 하고 안주도 입에 넣어주면서 분위기를 잡다가 나는 당신에게 이런 점이 서운해하고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한다. 나도 남편도 그랬구나, 하면서 공감을 한다. 그런데 술자리가 길어지고 대화가 점점 무르익을수록 ‘아니, 그게 아니라!! 혹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면서 점점 자기 입장을 내세우게 되더란 말이다.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본능적으로 취할 만큼 술을 마시지 않아 거의 맨 정신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점점 취기가 오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성과 이성을 앞세운 대화도, 감정과 감정에 치우친 대화도 아닌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대화를 하고 있던 거다. 술자리를 핑계 삼은 대화의 장은 우리 부부에게는 맞지 않았다. 부부 사이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 말귀가 트이고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면서. 그 사이 5년이 흘러갔다.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맨 정신에 하는 게 맞고, 취하지 않고는 꺼낼 수 없는 이야기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낫다. <취중진담>은 노래로 들을 때나 달콤하지 실제로는 주사일 뿐이다. 술 마시고 했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다음날 애꿎은 이불만 걷어찬 적 다들 한 번씩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열아홉의 12월 31일이나 스물의 1월 1일은 불과 하루 차이이거늘 마치 엄청 어른이 된 듯 들떠있던 때가 나에게도 있다. 각자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도 주말이면 고향에서 만나 대낮부터 영업하는 호프집에 모여 소맥을 말던 철없던 청춘의 기억.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엄마가 친구에게 돈을 꿔서 등록금을 마련한 걸 아는 나로서는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부모님 수중에 등록금 낼 돈도 없는데 용돈 하라고 주실 돈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어쩌면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더 남는 장사였을 텐데 무조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길 때라 영화관에서 티켓 팔고 학원에서 채점해 주고, 심지어 방학에는 가정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한 적도 있다. 기저귀 갈아주고 급식 먹여주는.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면 나만 아르바이트하고 있고, 방학 때 놀러 간다는데 나만 일 하는 시간이랑 겹쳐서 스케줄이 안 맞고(결국엔 일하던 어린이집에 거짓말하고 놀러 갔지만), 주말에 일 하느라 고향에 못 내려갔는데 친구들은 만나서 놀고 있는 상황들이 하나 둘 생겼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이라고 넘겼을 테지만 겨우 스물 언저리의 애송이였던 나는 그게 그리 서러웠더랬다.


술이 목을 타고 한 잔, 또 한 잔 술술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울고 있었다. 가난한 우리 집이 서러워서 울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 녀석이 야속해서 울고, 세상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울고. 처음엔 나만 울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래그래 니 마음 알지. 엉엉. 나쁜 시키, 우리 친구 마음도 몰라주고. 엉엉. 세상이 그지 같아 엉엉. 분명 산뜻하게 시작한 술자리였는데 난장판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2차로 노래방에 갔다가 버스는 끊기고 남은 돈을 모았더니 5천 원뿐이라 택시 기사님께 “아저씨, 5천 원어치만 가주세요.” 한 적도 있다. 술에 취한 채로 집에 갈 수는 없어 친구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7천 원은 있어야 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결국 도중에 내려 남은 거리를 걸어서 갔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많아질수록 마시는 술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호가든이나 기네스처럼 비싼 맥주도 마시고 콜라에 잭다니엘 양주를 섞은 칵테일 잭콕도 마시고 영화에서 본 대로 손 등에 묻혀 놓은 소금을 핥은 뒤  데낄라를 마시고 레몬을 베어 물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술을 마시든 나는 쉽게 취했고 취하면 울었고 어떤 날엔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앓았다. 출근했던 친구가 내 약을 사 오느라 조퇴를 한 적도 있으니 태생부터 알쓰가(알코올쓰레기) 분명하다. 회사 동료가 데려간 와인바에서 ‘옐로우 테일’이라는 호주산 쉬라즈 품종의 레드 와인을 처음 마신 날이 생생하다. 소주처럼 쓰지도 않고 맥주처럼 톡 쏘지도 않으면서 달짝찌근하던 포도주의 맛이란.  ‘원샷! 원샷!’ 소리가 난무하지도, ‘마셔라 마셔라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라는 부추김도 없이 홀짝, 한 모금이면 충분했다. 와인잔을 꽉 채우지 않고 스템을 잡고서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모습도 좋았다. 우아, 기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있어 보이니까. 그러나 와인도 술은 술이었으니...


와인 한 병을 다 마실 때까지는 마냥 좋았다. 집에 와서 잠을 잘 때까지도 몰랐다. 아침에 피를 토하고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물론 진짜 피를 토한 건 아니었고 와인이 붉은색이다 보니 변기에 내뱉은 토사물이 온통 핏빛이었다. 위를 싹 다 비우고 위액까지 쏟아냈는데도 계속 울렁거리지, 머리는 깨질 듯 아프지. 소주만 그런 줄 알았더니 숙취에 있어서는 와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심오한 깨달음을 얻고 택시를 잡아타고 응급실에 갔다. 술 때문이라고 말 못하고 급체한 것 같다고 했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아마도 알아챘으리라.


병원 응급실 행을 끝으로 나의 음주 생활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뒤로는 사회 생활 하면서 술자리마다 “제가 술을 못 마셔요.”를 달고 산다. 꼭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는 “제가 내일 출근을 못 할 수도 있어요.”라고 윗사람에게 미리 허락을 구하고 한두 잔 받아 마시는 걸로 예의를 표하면 더 권하지 않는다. 때로는 술을 잘 마셔서 분위기도 띄우고 다음 날에도 멀쩡히 출근하는 사람이고 싶을 때도 있다. 술을 안 마시니 술자리에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 회식이 아닌 가벼운 술자리는 저도 참 좋아하그든요...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술자리를 마련할 만큼 애주가도 아니니, 술 안 마셔서 실수할 일 없고 구설에 휘말릴 일이 없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술이 나쁜 게 아니다. 술을 나쁜 방식으로 마시는 게 문제이다. 요즘은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도 많아지고 조직 문화도 개선되면서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마시고 죽자 하는 분위기는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주 운전, 주폭 등 술 때문에 이성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가 뉴스에 나오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뭐든 넘치는 건 부족한 것만 못 하다. 술은 더욱 그렇다. 기분 나쁠 때 말고 좋을 때, 주량 넘지 않고 적당히, 음식 맛을 돋워주는 조력자로 술을 대우해 줬더니 술도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버섯불고기 전골이 저녁 메뉴로 당첨되었으니 와인이 빠지면 서운할 일. 와인 한 병으로 식사가 풍성해졌다. 나는 딱 두 잔, 나머지를 남편이 마시면 와인 한 병이 말끔하게 비워지고 달달한 밤만 남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술 마시고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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