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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06. 2024

필라테스를 하다 울어버렸다

필라테스

평소 눈여겨보던 센터에서 오픈 1주년 기념 30% 할인 행사를 한다는 광고가 당근 지역정보에 올라왔다. 동네에 필라테스 센터가 많이 있는데 이곳을 눈여겨봤던 이유는 일단 기구 필라테스인 점과 걸어 다니기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는 점, 마지막으로 강사 없이 원장님이 직접 수업을 진행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제주로 내려왔던 2016년만 해도 동네에 기구 필라테스 센터가 없어서(소도구를 이용한 매트 운동을 하는 센터는 있었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서 버스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하긴 임신 중에도 필라테스를 계속하고 있어서 레슨이 있는 날에는 퇴근 후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센터로 가서 수업을 마치면 다시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정도였으니.(과거의 나, 칭찬해!) 만삭까지 운동을 한 건 출산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서였는데 정작 수술로 아이를 낳아 산전필라테스의 효과에 대해서는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수강료를 할인한다고 하더라도 1:1 수업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횟수를 많이 할수록 회당 수업료가 저렴해지다 보니 등록을 한다면 목돈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도 고민이 되었을 텐데 휴직 중이라 통장에 꽂히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요즘이라서 선뜻 등록하기가 어려웠다. 경제적 부담을 감안하고서라도 1:1 수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당연히 효과적인 운동을 위해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세를 교정할 수 있고 내 체형과 체력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자세 불량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적고 운동 효과는 크다. 또 개인 수업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가 수련원도 알아봤지만 그룹운동이라 시간이 정해져 있어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육아라는 상수에 남편의 조력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6시 수업은 남편 출근 준비 시간이라 안 되고 저녁 7시 수업은 남편이 6시 정각에 퇴근해야 겨우 맞출까 말까여서 안 되고. 헬스장은 등록만 하고 안 나간 적이 많아서 패스, 동네 걷기는 날이 추워져서 패스, 홈트는 의지 부족으로 패스, 헬스 pt는 이번 운동의 목적이 단순 체중감량이 아니기 때문에 패스. 어떻게든 1:1 필라테스 등록을 해야만 하는 쪽으로 뇌가 반응했다.


필라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들의 재활을 위해 고안된 운동이라고 한다. 기구를 이용해 코어의 힘을 길러주고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에 자극을 준다. 재활에 맞추어진 운동인만큼 자세 교정과 체형 보정에도 도움이 된다. 헬스는 중량을 치고 횟수를 많이 하는 반면 필라테스는 호흡과  정교한 자세에 집중한다. 갈비뼈 사이사이마다 공기를 채우는 느낌으로, 코로 숨을 들이쉬고 후-하면서 숨을 내뱉는다. 이때는 흉곽을 최대한 조이면서 배를 납작하게 만들되 턱은 당기고 어깨를 내려 귀와 멀어지게 해야 한다.(뭐라고?) 이 호흡을 동작마다 유지하는 것이 필라테스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봉착하게 되는 첫 번째 난관이다. 자세에 신경 쓰다 보면 호흡이 엉망이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자세가 무너져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센터를 방문했다. 운동을 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산후 6개월 안에 살을 빼지 못하면 그대로 내 살이 된다는데 이미 늦었다. 가장 저렴하게 수업을 듣기 위해 30회 등록 결정. 필라테스 유경험자이지만 되돌아보니 운동을 안 한지 5년이 다 되었다. 이건 뭐. 처음 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몸이 뻣뻣해졌고 살까지 10킬로 이상 쪄있는 상태라서 머릿속으로는 아, 이 자세? 하는데 몸은 어깨가 솟아있거나 골반정렬이 되어있지 않았다. 힘을 써야 되는 근육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하기도 했다. 힘을 준다고 줬는데도 근육들이 지방에 가려져있어 힘이 들어갔는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 뭐야, 햄스트링 어디 갔어요? 여기 힘줘요!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데 햄스트링이 어디 있냐니. 엉덩이가 다 없어질 정도로 하얗게 불태웠는데 여전히 너무나 있는 내 엉덩이여.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건 활력이 생긴 거다. 집에 있는 동안 의식적으로 사부작사부작 몸을 더 움직이려 노력한다. 가습기 통에 물을 받으면서 와이드 스쾃 열 번, 양치하면서 뒤꿈치 들었다 놨다 열 번, 누워서 힙브리지 열 번 이런 식으로. 먹는 것도 더 신경을 쓴다. 혼자 밥 먹기 귀찮으니 라면을 자주 먹게 되는데 참고 있다. 식이요법은 기본 중에 기본이니까. 그렇다고 닭가슴살이나 양배추 샐러드, 계란, 오트밀 같은 것만 먹지는 않는다. 식구들 밥을 챙기려면 반찬을 해야 하고 간도 봐야 하니까. 본격 다이어트가 아니다 보니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데 체중에는 변화가 없다. 안타깝게도 눈바디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여보, 나 배 좀 들어간 거 같지 않아?

- 아니, 전혀.

- ...(찌릿)... 아들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어...좀 들어간 거 같은데...?

됐고, 중요한 건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첫 술에 배가 부를 리 없다는 것. 그래도 한 달에 1킬로는 감량을 하고 싶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건 아쉽다. 기초대사량이 바닥인 모양이다. 오래 쉰 만큼 예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겠지.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있음에도 수업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 어느 지점인고 하면 예전에는 거뜬히 할 수 있던 동작들이 잘 되지 않고 10-15회 반복이 힘에 부칠 때이다. 필라테스가 처음이었다면 원래 이렇게 힘든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다 할 수 있던 동작들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자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이 때문일 수도, 출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내  몸을 너무 방치해 왔다는 게 스스로 한심했다. 한 동작을 간신히 다 마쳤을 때였다. 더 못하겠다고 주저앉고 싶은 걸 어떻게든 해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갑자기 눈물이 차 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동작이 잘 안 된다고 울어? 운동하면서 이렇게까지 비장할 필요가 있나. 원장님의 당황하던 눈빛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에 선하다. 이 회원 곧 환불각이구나 싶었을지도.


운동을 하고 있던 날이 2023년을 마무리하기 이틀 전이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아쉬울 것도 없는 한 해였는데, 오히려 감사할 일이 많았던 시간들이었는데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못 하겠다고 했으면 난이도를 낮춰서 지도해 주셨을 텐데 쉬운 것만 하려고 비싼 돈을 들이는 게 아니니까 본전 생각이 났나. 거울에, 유리창에 비친 40대의 내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나.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막상 또 한 살 나이가 늘어난다고 하니 마음이 뒤숭숭하다고 했을지도. 아몰랑. 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고 눈물은 나고 창피한 것도 내 몫이고. 쥐구멍이 있다고 해도 이 몸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하하하. 다행히 원장님이 내 또래이고 아이도 두 명 있다 보니 누구보다 내 심정을 이해해 주셨다.

- 회원님은 이거 못 해도 되지만 나는 아기 낳고 동작이 내 맘대로 안 됐을 때 어땠겠어요! 이게 업인데.

남은 시간 꽉 채워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와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쉽게 환불해! 한다. 어림없다. 30회 다 채우고 더 할 거라고, 이제 쉬지 않고 계속 운동할 거라고 선언했다. 날씬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몸을 위해서. 몸이 아프고 피곤하면 짜증만 나고 우울감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육십까지 즐겁게 육아하려면(육십 살이 되어도 둘째가 고등학생.. 왓???) 체력은 필수. 육아 때문이 아니라도 체력이 받쳐줘야 일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행도 갈 수 있다. 맛있는 거랑 맛 없는 거 중에는 맛있는 것부터 먹고(아끼다 똥 된다..) 하기 좋은 일과 하기 싫은 일 중엔 하기 싫은 것부터 하는 게 좋다. 멈추지 않는 운동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보련다.



*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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