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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Feb 19. 2022

토끼반지가 금반지보다 좋은 이유

평생 짝사랑이겠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 엄마! 엄마!

잠자리에 들기 전 거실에서 혼자 부스럭 부스럭 거리며 분주하던 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엄마, 눈 감아봐. 짜잔!

- 와아~~~~~!!!!!

- 엄마를 위한 깜짝 선물이야. 엄마는 예쁘니까 이 토끼 반지는 평~~ 생 엄마 거야!

하마 입처럼 쩍 벌어진 입에서 돌고래 비명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내 얼굴엔 행복이, 아이의 얼굴엔 뿌듯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남편에게도 받지 못한 반지 프러포즈를 아들에게 받을 줄이야! 드라마에선 그렇게 남자 주인공이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밀며 'MARRY ME! 하던데 현실에서 우리는 이게 이쁜가? 비싸네! 저건? 하면서 같이 반지를 보러 다녔던 기억 뿐이다. 가진 돈으로 어느 반지를 고를 수 있는지 계산하느라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연애의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 남편과 못다이룬 로맨스 장르를 아들과 찍고 있으니.(물론 품안에 있을 때까지겠지만.) 


아이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들 중에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예쁘다'는 말이다.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주며, 내 볼을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말하고, 사실은 시시때때로 아무 때나 예쁘다고 말해준다. 예쁘지 않아도 아이의 눈을 통해 예쁜 사람이 되고야 마는 내가 있듯이 반짝이지 않아도 눈이 부시게 빛나는 토끼 반지도 있는 법이다. '고사리 손이 많이도 컸다. 키도 내 허리를 훌쩍 넘길 만큼 자랐네.' 손수 반지를 끼워주는 아이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바라보다 새삼 언제 또 이렇게 자랐는지 지난 시간이 아득하다. 차가운 내 손끝에 아이의 따뜻한 온기도 전해졌다. 토끼 반지를 보고 엄마를 떠올려준 고운 마음 덕분에 2월의 눈 내린 겨울밤마저 아늑했다.

< 반지 전달식. 쏘 스윗! 어맛!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야해! >

반지를 끼고 보니 핑크색 토끼 덕분에 못생긴 손이 조금 예뻐 보이는 것 같다. 아이와 손을 겹쳐 사진도 하나 남겨보았다. 소중한 순간에 사진이 빠질 수 없음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 속에 붙잡아 두었다가 서랍 속에 숨겨둔 초콜릿을 야금야금 꺼내먹듯 몰래몰래 들여다보련다. 초콜릿처럼 소소하지만 달달한 기억들을 즈려밟으며 내일도 오늘처럼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토끼 반지는 어린이집 놀잇감 중에 하나였는데 가지고 싶은 친구들이 가질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허락해주신 모양이다. 여자 친구들은 앞다투어 하나씩 가져갔고 남자 친구들 중에서는 필요 없다고 가져가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이는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에 어린이집 가방에 챙겨온 모양이다. 남자아이 치고는 퍽 섬세하고 다감한 편이라서 평소에도 사랑한다거나, 엄마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해주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어, 엄마 반지 없네! 하면서  끼워주고 갔다. 문제는 반지가 어린이 용이다보니 작아서 끼고 난 후에는 자국이 남는다는 것이다. 손가락에 피가 안 통할 지언정, 결혼반지는 케이스에 고이 담아 둘 지언정, 아이가 선물한 토끼반지는 포기할 수 없다.

< 반지를 빼고 나면 빨갛게 자국이 남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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