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을 때에는 화났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엄마가 제발 나 좀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춘기 아들 녀석의 말이 아니다. 올해 고작 여섯 살이 된 아이가 자기의 마음이 상한 것을 엄마인 내게 알리기 위해 꺼낸 말이다. 뭐가 좀 먹고 싶다며 간식이 든 수납함을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곧 저녁을 먹을 테니 과자를 먹지 말라고 하자 아이는 서러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여섯 살인데 몸무게가 29킬로그램이라서(물론 또래에 비해 키도 키다고 하더라도)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요즘 간식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아이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자를 먹어도 밥을 잘 먹는 아이라서 예전 같았으면 조금 내어주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설 타이밍이 아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면 밥과 함께 허기도 사라질 것이었다.
말의 시작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나 화났어. 이제 나는 엄마 사랑 아니야! 이제부터 엄마도 안 사랑해 줄 거야.
아이의 3단 콤보 공격이 들어왔다. 나도 지지 않는다.
- 그래라, 그래도 나는 너 사랑할 거야.
아이는 충분히 알고 있다, 엄마가 자기를 얼마큼 사랑하는지를.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전히 엄마의 1등 사랑은 본인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호기롭게 꺼낼 수 있는 말이다. 아이의 패기에 웃음이 쿡쿡 났지만 지금은 기싸움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여기서 웃음이 새어 나오면 꼼짝없이 먹고 싶은 과자를 내어주어야 할 판이다. 표정관리가 관건이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너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이는 곧잘 마음을 풀곤 했었다.
- 사랑하지 마!
아이가 다시 한번 크게 힘을 주어 말했다.
-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네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는 네가 1등 사랑이야!
이쯤이면 아이가 피식 웃으며 와락 품에 안기는 것이 보통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엄마가 제발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거실에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몸만 큰 줄 알았더니 마음도 자랐나 보다. 아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말하면 엄마 마음이 아플 거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춘기 아이처럼 말을 했다.
아이의 말이라고 해서 공격력이 1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말에 서운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자기가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여섯살배기 아이의 말에 서운한 감정이 들다니 철이 없는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단 대꾸를 하지 않고 시간을 두었다. 엄마가 말이 없자 아이도 당황했는지 방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아무 말 없이 시간이 지나자 빼꼼 고개를 내밀어 나를 염탐하는 아이의 눈길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화났다는 감정을 다소 격하게 말했을 뿐임을 알면서도 내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마도 대략 10년 후에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상처주기 위해 날카로운 말을 벼르고 별러서 가슴으로 명중시킬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 말이다. 여섯 살 아이의 말에도 가슴이 저릿한데 그때 나는 어떤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눈물이 가득 고였을지도. 밥을 먹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어린이집 가는 길에도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어린아이를 기억하면서. 어린이집에서도 엄마 생각이 나서 그림을 그렸다며 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주고, 토끼 반지도 끼워주던 여린 아이를 회상하면서.
저녁으로 밥 대신 치킨을 시켜 먹는 것으로 극적 타협을 이루었다. 아이는 곧 다정한 말로 아까는 장난이었다며, 과자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해서 속상해서 그런 거라고 자기가 했던 말을 취소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불똥은 애먼 아빠에게로 튀었다. 아빠가 처음부터 과자를 사다 놓지 않았더라면 먹고 싶지도 않았을 테니 과자를 사다 놓은 아빠의 잘못이라는 거다. 나도 그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리는 같이 깔깔깔 웃었고 둘도 없는 모자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잊지 않고 말을 해주었다, 말의 무게에 대해서, 말의 책임에 대해서.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은 아무리 취소를 해도 없던 일이 될 수가 없다고. 아이의 말이라고 해서 더 가볍지 않고 어른의 말이라고 해서 더 무겁지 않으며 똑같이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으니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하고 해맑게 웃는 아이가 내 말을 다 이해했을 리 없다. 이해하는 날이 최대한 천천히 오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어렵게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마음을 부풀려 말할 필요는 없다. 화가 났을 땐 화가 났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우리는 종종 선을 넘는다. 하지 않아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도 기분을 내세워 툭툭 내뱉고 만다. 말을 들을 때에도 '네가 화가 많이 났구나.' 하고 이해해주면 좋은데 그 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 되받아치고 맞받아쳐서 싸움을 크게 만들곤 한다. 말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수단이면서 말하는 사람의 편의를 추구한다.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말도 좋은 말이 아니게 될 수 있고 나쁜 말은 나쁜 말을 넘어 독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품격이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사실은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사실은 어른인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