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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약속을 한 것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버지와 한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재운 새벽 12시 40분 나는 핸드폰의 메모장을 켰다. 아이를 키우는 아기 엄마가 노트북을 켜고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사치기에, 잠들지 않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를 칭찬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다.

2년 전 아버지께서 나에게 글을 쓰는 걸 권하셨을 때, 아버지도 함께 글을 쓰시겠다고 하셨다.
늘 내가 보아왔던 아버지는 '성실함' 그 자체셨다. 나에게 무언가 하라고 하시기 전에 그 무언가를 먼저 실천하고 계셨다.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면
늘 아버지는 내 앞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책을 읽으시는 아버지를 보며 나 또한 자연스럽게 독서의 습관이 길러졌다. 생일 때는 늘 사랑이 담긴 편지와 책 한 권을 선물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늘 사랑이 담긴 손편지를 써주셨던 아버지.
늘 생일이면 책 한권을 선물해주셨던 아버지.


'어깨 넘어 교육'
아이들은 부모님의 습자지라고 늘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서 문제의 부모는 있어도 문제의 자식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태어나 자식은 부모로 구성된 작은 세상에서 보고 배운 것들로 삶을 살아가 방법을 배운다.

막상 아이를 낳고 기르고 보니 부모님이 하셨던,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말하지 못했던 아기 시절에도 내 아이는 나의 행동을 보고 있었고, 나의 언어를 듣고 있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나와 의사소통이 될 무렵 아기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해.

엄마 기억나지? 엄마가 나 잘 때 사랑해 말했지."


반짝이는 반달눈으로 웃어 보이며, 예쁜 말을 하는 아이. 또 어떤 날은 습관적으로 하던 좋지 않은 말도 아이가 따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내 습관을 고치고, 아이 앞에서는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도 어렵기에 아이에게 24시간 사랑의 말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나 또한 그러지 못하기에-


감사한 건 태권도 관장님이셨던 아버지와 유치원 원장님이셨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교육관이 명확하신 분들께 나는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마치 인생이라는 미지의 항해를 떠나는 어린 나에게 환한 등대같이 나의 부모님은 그렇게 빛을 밝혀주고 계셨다.

나의 근본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글을 나누던 시간.
아버지의 글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고 건강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를 마주하고 한 약속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열심히 쓰신 글, 제 브런치에 올려드릴게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육신은 사라지지만 혼은 살아있다는 말처럼. 아버지의 글을 본 다른 사람들 마음을 울린 한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글 제가 잘 올려드릴게요."

그러자 아버지는 기력이 없으셨던 중에도 환하게 웃시며 물으셨다.


"정말 그래 줄 거야? 그럼 아빠가 너무 행복하겠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쓰신 글 있는 곳 알려주세요. 제 메일로 옮겨놓을게요."


그러자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가리키셨다. 아버지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치고 로그인을 했다.

로그인이 되고, 메일 창이 열였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핸드폰을 보지 못했다.
그 메일에는 아버지가 그동안 써 내려가셨던 글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느 날의 행복에 대해, 어느 날의 고독에 대해서, 어느 날의 건강에 대해서 써내려 가셨던 글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아버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읽을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아버지의 49재이다.
아버지가 이생을 떠나시기 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 마음을 울렸던 아버지의 글들을 이곳에 올려 보려고 한다.
부디 보시는 분들께도 나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인 이 글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




아버지가 생각하셨던 행복에 대해.


행복이란?


한국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언제이고 싫어하는 요일은 언제일까?

당연히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이고 싫어하는 요일은 월요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월요병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한데 최근 조사에서 다른 결과가 눈에 띈다. 월요일보다 수요일이 더 싫다고 나왔다고 하니까 월요일은 싫어하지만 의미를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요일이 꼴찌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으려는 본능이 강하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물론 본질적인 행복은 돈으로 사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행복은 최종 가치이자 목적임에는 틀림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다. 행복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한 산물이다. 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고 행복을 너무 상위계층에 올려놓으면 곤란하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일상의 장면에서 얼마든지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책을 만날 때, 감동적인 영화나 연극을 볼 때, 좋은 사람과 만날 때 등등.  그래서 행복을 원하거든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설렘과 여행지에서 먹는 다양한 음식과 볼거리들이 얼마나 즐비한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가면 행복은 배가된다. 한마디로 여행은 행복 종합 선물세트이다.


마침 설날 연휴에 배낭여행을 떠났다 들어온 친한 동생과 전화를 했다 나와 함께 가자고 요청했지만 중앙아시아 쪽이라 추울 것 같아 포기했다.

헌데 날씨가 너무 따뜻하고, 여행하기에 좋았다고 생생한 목소리로 말했다.  러시아에서 당한 추위에 지레 겁을 먹고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제대로 놀란 꼴이다.

저녁 무렵 서울에서 주인 어머니 아들이 내려왔다. 저녁식사 시간이 다되어 내가 먹으려고 했던 시골에서 직접 끊여서 보낸 추어탕과 방금 지은 오곡밥을 맛나게 나눠먹었다.

이 또한 행복이 아닌가?

오곡밥에 추어탕에 도라지 무침에 정겨운 대화가 반주로 곁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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