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와 예니는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자매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둘을 함께 부를 때 예자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자매는 요즘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동안 사이가 아주 좋으셨던 부모님이 자주 싸우고 예자매에게도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얼마 전부터 더욱 심해진 보라색 연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겨울에 그 연기가 처음 생겼을 때 부모님은 새로운 미세먼지 일수도 있으니 마스크를 잘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거리를 걷는 어른들, 학교와 어린이집에 있는 친구들도 다 같이 마스크를 쓰고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했지만 매일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이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서 날씨가 따듯해지면 없어질 줄 알았던 그 연기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거리에서도 회사에서도 마트에서도 집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싸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학교와 어린이집에서도 화를 내며 싸우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예자매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친구들까지 변한 것을 보면서 너무 슬펐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겁이 많은 예자매는 부모님이 싸우면 놀이방으로 갔습니다. 의자와 장난감 그리고 이불을 이용해서 텐트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서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아빠가 지금처럼 화를 많이 내시기 전에는 항상 동화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고 나서 불을 끄고 천장에 빛을 비추면서 한 명씩 이야기를 지어내서 들려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예니야. 너는 나중에 크면 뭘 하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동화책이 정말 좋아. 그림형제 아저씨들이랑 안데르센 아저씨처럼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언니는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만화가가 될 거야.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서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보내 줄 거야. 언니가 편지를 주고받는 아프리카 친구가 있는데 그 아이는 가난해서 책을 살 수가 없대. 지금 글쓰기와 읽기를 연습하고 있는데 책을 너무 갖고 싶다고 했어.
그날도 아빠와 엄마는 저녁 내내 화를 내고 싸우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예자매는 점점 더 두려운 마음이 커졌습니다. 항상 따듯하게 웃고 안아주던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그리웠습니다. 불을 끄고 천장에 빛을 비추면서 이야기를 하던 예자매는 창밖에 지나가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어두운 밤이어서 선명히 보이진 않았지만 커다란 보라색 덩어리가 연기를 만들며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예자매는 아빠와 엄마가 달라진 것이 분명 그 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니야. 우리 저 보라색 연기를 따라가 보자.
그래 언니. 놓치기 전에 얼른 가자.
한참을 뛰어가던 예자매는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물컹물컹한 것이 다리를 감싸더니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이 액체 괴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곳은 액체 괴물의 늪이었습니다.
언니. 어떻게 해. 액체 괴물이 우리 다리에서 굳어버렸어.
나도 움직일 수가 없어. 큰일이야.
만약 엄마가 있다면 물풀과 글리세린으로 굳은 액체 괴물을 다시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예니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별빛이 내려오더니 예자매의 가방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습니다.
이게 뭐지? 예니야. 가방을 한번 열어보자.
와. 언니. 가방 안에 물풀과 글리세린이 생겼어.
정말이네. 이걸 사용해서 어서 여길 빠져나가자.
예자매가 다리를 감싸고 있는 액체 괴물에 물풀과 글리세린을 넣자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는 곳마다 물풀과 글리세린을 섞어서 겨우 액체 괴물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자매는 다시 보라색 연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자매 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건널 수 있는 다리는 부서져 있고 그 주위에는 수많은 대형 비즈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니야. 우리가 이곳을 건너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걸 생각하면 아까처럼 우리 가방에 그 물건들이 생겨날지도 몰라.
맞아. 생각해 보자. 음. 그래. 기름종이랑 다리미야. 예전에 우리가 비즈로 모양을 만들면 아빠가 기름종이를 깔고 뜨거운 다리미로 비즈들을 녹여서 완성해 주셨잖아.
맞아. 바로 그거야.
예자매는 다시 한번 마음속에 기름종이와 다리미를 떠올렸습니다. 잠시 후 또 한 번 별빛이 내려오더니 가방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자매는 가방 안에서 꺼낸 기름종이와 다리미로 비즈들을 이어서 긴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서진 다리와 연결해서 낭떠러지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낭떠러지를 건너고 나니 보라색 덩어리가 있는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동굴은 커다란 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열쇠가 있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예자매는 인형 뽑기를 발견했습니다. 통 안에는 여러 가지 인형들이 있고 그 사이에 열쇠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에 붙여진 종이에는 ‘기회는 단 2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예자매는 인형 뽑기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 뽑기를 사주셔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예니야. 기회는 단 2번이야. 우리가 늘 했던 작전 알지?
응. 언니. 먼저 시작해.
예리는 열쇠의 끝을 잡아서 최대한 앞쪽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어차피 한 번에 꺼내긴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니가 열쇠의 머리 쪽을 잡아서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자매는 기뻐하며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작전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