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는 마냥, 모든 일은 마케팅(물건을 파는 일)으로 통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뭔가의 붐인건지 마케터도 늘고, 마케팅에 대해 아는 비직업인도 늘었다.
그리고 직업 마케터들은 그 사이를 헤쳐나가야한다.
마케터로 살기 가장 빡센 순간이 언제일까.
마치 첫사랑에게 차인 사람이 친구를 앞에두고 술을 연거푸 들이키면서
"사랑...정말 힘들다..."라는 대사를 내 뱉는 상투적인 장면 마냥
"마케팅....정말 빡세다..."하는 대사가 단전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순간.
광고를 열심히 돌렸는데 성과도 안나오고 대체 왜 안나오는지 이해가 안될 때?
상사가 갑자기 팝업 프로젝트를 하자며 목적도 예산도 안주고 일단 기획부터 짜오라고 했을 때?
이미 기술적 발전이 한참 지난 상품을 팔아보라고 대뜸 던져 줄 때?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라고 해놓고는 정작 트렌디한 기획은 다 쳐내고 이상한 메시지나 업로드하라고 할 때?
함께 협력해야 할 아래 직원이 기획회의 결과를 다 무시하고 만들어 온 결과물을 볼 때?
갑자기 전혀 다른 컨셉과 아이템의 회사를 들먹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안되냐고 하는 고객을 볼 때?
ㅡ다 맞다.
벌써 다섯가지를 늘어놓았는데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끝도 없다.
이렇게 수 많은 허탈감과 분노와 힘듦을 다 제쳐두고
내가 마케터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그리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은) 순간은 언제냐면, 클라이언트(혹은 상사)가 내 말을 믿지 않을 때였다...
아니, 차라리 나의 행동을 못 믿는 것은 괜찮다. 끝없는 증명이야 마케터의 본질 아닌가. 기획안을 다시 쓰라고 하면 다시 쓰고, 기획을 진행하는 이유와 근거, 데이터 증빙, 예상 결과까지, 클라이언트가 납득할 때까지 쓰고 또 쓰는 것은 약간 속이 울렁거리지만 뭐 할 수 없는 일이다ㅡ고 받아들이는 편인데,
어디서들은 정보에 의하면, 자신이아는 것과 다르다며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고 우긴다거나(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데이터를 못믿겠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새로 테스트를 해보아야겠다고(그러면 그 성과는 제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냥, 하늘이 아주 노랗다.
프리랜서 마케터든, 인하우스 마케터든, 마케터란 결국 컨설팅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데이터를 측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매출을 위해 나아가는 것. 그런데 잘못된 정보를 주입받아 자신이 맞다고 하면, 저는 왜 고용하신건지말입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찾아와서는 의사에게 당당하게 유00에서는 이걸 먹으라던데요? 라고 대거리하는 환자를 보는 느낌이 이럴까?
내가 마케터로 처음 근무한 회사는 마케팅(브랜딩)-컨설팅 및 교육 회사였다.(라고 이름 붙여져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실행사도 겸하므로 기획사에 가까울 듯.)
나는 그 회사가 실험적으로 운영하는 브랜드 팀에 속한 인원이었는데, 아무래도 컨설팅과 교육을 업으로 하는 회다보니 전 직원은 브랜딩과 마케팅 이론에 대해 필수적으로 내부 교육을 받아야했다.
주기적으로 트렌드나 마케팅에 관한 내부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칼럼도 쓰고. 일도 바빠 죽겠는데 따로 공부까지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회사에서 인하우스 마케터로 구르다보니 적어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나를 신뢰하지 않는' 상사나 클라이언트를 만날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웬 걸,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다보니 밖은 더 정글이었다. 마케터가 서비스직인 줄은 몰랐거든.
초기에는 그런 클라이언트나 상사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면 결과가 안나와요. 그 정보가 이상해요.
그러나 마케팅이라는 이름을 단, 진실과 거짓이 섞인 정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지금은 설득을 하되 한 두번의 설득으로 통하지 않으면 웬만해선 해달라는 대로 해주게됐다.
네 알겠습니다. 네네, 말씀대로 100%의 가능성은 아니죠, 하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