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도 일이거늘 많이 미안해
“바뻐?”
“응. 자막 빨리 올려야 해.”
“바뻐?”
“응. 바로 미팅.”
몰랐다. 내가 몰랐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정말 몰랐을까? 그가 한두 번 다가와 커피나 한 잔 하자고 공기를 데우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내 편성표에만 갇혀 있었다. 나는 내 방송만 머리에 가득했다. 알 것 같았지만,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중에서
친정오빠 같은 사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언제든 시시콜콜 즐거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동료를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고개만 돌려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하지 못하는 여유와 위트를 후배들에게 퐁퐁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제 돌려앉아도 그가 없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물었다. 교육만 받으면 원래 업무로 복직될 거라 했다. 회사 자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분들은 창사때부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시간들을 채워오고, 우리의 마지막 방송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음도 문제시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교육인지 OT를 듣는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일 것이다. 버티고 감내하는 인생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내 친구이자 그의 아내는 “퇴사도 용기다.”라고 했다고 한다.
회사 안에 있는 우리는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회사 밖에서야 회사는 겨우 우물 아닌가.
열심히 하는 것과 그 끝은 맞닿아 있을까. 불경기를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함으로 봉합할 수 있을까. 매출은 인격일까. 과연 그 누구의 평가가 공정을 논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노력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을 쪼개 일을 집중력 있게 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잘 해내고자 사력을 다했다 핑계를 대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의 힘든 넋두리를 듣는 시간을 덜어내고 싶었다. 조언과 위로의 탈을 쓰지만, 대부분이 말실수인 시간을 줄여보고자 했다. 나의 공감에너지를 끌어다 쓰기에는 육아만으로도 벅차서 동료들을 돌보지 못했다. 나의 하루에 시간을 더 마련할 수만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욕심으로 채우려 했다. 죄스럽다.
나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