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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Apr 25. 2021

[영화 감상 두 번째] <침묵의 시선>(2014)

감은 눈의 시력을 맞추는 용기


피해자의 피를 마신 이들이 권력을 쥐게 된 사회


대학살의 희생자인 람리의 동생, 아디가 사는 사회가 그렇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군부에 의해 전복되고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조합원, 지식인, 소작농 등은 공산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어 1년 만에 100만 명의 무고한 이들이 학살된다. 어떤 노동자 조합은 공산당을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 학살의 주체는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세력을 장악하고 있다. 공산당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끔찍하게 학살한 행위가 영웅적인 투쟁으로 평가받아 학살을 주도한 가해자들이 권력과 부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아디는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그리고 수많은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가족들을 만나 학살의 기억을 들추어낸다. 가해자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일을 했으니 보상을 받는 것이라며 본인의 권력과 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디가 거주하는 지역의 행동 부대 단장이었던 가해자는 대량학살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행동 부대는 한 둘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군과 정부의 지휘를 거스를 수 없었다며 필사적으로 핑계를 댄다.



아디는 학살의 지휘자, 학살을 행한 사람 등 많은 가해자들을 만나지만 반성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압도적이다. 학살을 무용담마냥 서술하고 본인의 업적처럼 묘사하는 이들이 정작 학살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다. 아디는 그런 기만적인 모습은 개인에게 부여된 죄책감과 사회에 새겨진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가해자는 숨어서 공산당 짓을 하는 너(아디) 같은 놈들이 무서운 것이라며 날을 세운다. 이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태도이다.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일삼았더라도 부도덕한 행위의 주체가 승자가 된 역사에서 소수자의 자리는 없다. 학살을 긍정하는 주류의 역사에서 소수자의 돌발적인 증언은 그 자체로 다수자에게 위협이 된다. 스스로의 안위를 유지하고 싶은 다수자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강제로 지운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순간 지금껏 누려왔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자에게 치우친 역사는 그 자체로 소수자에게 폭력적이다. 학살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더라도 피해자의 유족에게서마저 목소리를 빼앗는 사회는 필사적으로 반성에 등을 돌린다.





학살 현장이었던 스네이크 강에 방문한 가해자들은 공산당을 어떻게 죽였는지 자세와 행동을 재현한다


피해자들이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던 말들까지 그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가해자의 진술을 대면하는 아디의 용기가 대단하면서도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들은 학살을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사회 정의를 구현한 것 마냥 이야기하며 그들의 말에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아디와 가해자들 사이에서 기억의 간극이 발생한다. 아디는 형 람리가 잔혹하게 살해를 당한 그 학살을 마주한다. 아디의 기억은 가해자들의 기억과 대조적이다. 그 기억의 간극에 무력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절망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디는 오히려 양극단에 놓여 있는 그 기억을 마주한다. 심지어 가해자들을 직접 대면하며 그들이 애써 덮으려는 역사를 들추어낸다. 

트라우마를 딛고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의지. 가해자들이 입맛대로 선정되고 분류된 기억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잊히고 지워진 사실을 기어코 지켜내려는 아디의 의지가 느껴졌다. 아디가 가해자들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지금껏 다수자의 권력에 의해 기록된 일방향적인 역사에 돌발적인 하나의 선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는 공산당을 '잔인한 놈들'이라고 가르친다


공산당이 정권교체를 위해 6명의 장군을 납치했다고 말하는 학교 선생님은 정해진 답을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공산당 학살 사건에 이유와 핑곗거리를 만들어 교육하고 있는 수업은 마치 국가가 어쩔 수 없이, 사회 보호를 위해 학살을 행한 것처럼 들린다. ‘사회 보호’라는 명분으로 소수자들을 배제한 역사를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편협하고도 왜곡된 역사를 양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정말 쉬운 일임을 느꼈다.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권력,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입맛대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비단 인도네시아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안경사 아디는 가해자를 만나 시력을 측정해 주고 안경을 만들어준다


가해자들은 아디가 바꿔 끼워주는 렌즈마다 잘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대답을 한다. 과연 아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눈앞에 놓인 대상뿐이 아닐 것이다. 가해자들이 너무 늦었다며 이제 와서 다 아문 상처를 무슨 이유로 들쑤시냐며 항의한 바로 그 역사. 더 이상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변명한 그 역사. 아디는 그 역사와 기억을 학살의 주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독재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먼저 그 역사를 배워야 한다. 현재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기억을 마주해야 하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미치는 것이 무서워 피해자의 피를 마셨던 이들은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그 피를 흘리게 만든 것에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 그 후에도 가해자들은 학살과 ‘상관있는’ 책임자로 반드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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