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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Apr 24. 2021

[영화 감상 첫 번째] <아이>(2020)

비현실적인 연대가 현실적인 이유


보육원에서 자라나고 파양 경험까지 있는 한 아이, 아영.(배우 김향기)


월 120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빠듯한 생활을 이어가는 아영은 일정한 금액을 꾸준히 지급받는다는 이유로 수급자 조건에서 배제되어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공을 살려 얻은 일자리에서는 고아라는 이유로 모난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아영은 지친 표정을 숨겨가며 본인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버거운 삶을 지탱하며 일과 육아까지 병행하는 또 다른 아이, 영채.(배우 류현경)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며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갓난아기를 키우는 영채는 아이 돌보미로 고용된 아영에게 무례한 언행을 서슴지 않으며 썩 유쾌하지 못한 첫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영에게 정제되지 않은 진심의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영채는 아이 혁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결국 아이를 불법으로 입양 보내고 그 사실을 안 아영과 영채가 충돌한다.




영화를 보며 나타난 느낌표와 물음표들



1. 아영과 철없는 친구들. 친구들과 아영은 상반되는 인물들인가?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아영이와 '아등바등 사는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아영의 동거 친구들. 영화에선 친구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영에게 매번 돈을 빌려 가고 그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며, 싸움을 하고 다니는 듯 보이는 친구들. 언뜻 보면 아영과 그 친구들이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아영은 친구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아영의 친구의 돌발적인 죽음을 발생시켜 자칫 상반된 인물들로 보일 수 있는 아영과 친구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약자들의 연대로 묶는다. 부모가 없기때문에 무연고자 취급을 받아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아영의 친구는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불명확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수사조차 받지 못한다. 함께 동거했던 친구들이 본인이 가족이라며 울부짖으며 수사를 요구하지만 약자의 연대를 인정하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 아영의 학교에 놀러 간 영채는 나잇대가 지긋한 분들도 야간 수업을 듣고 있는 풍경을 목격한다. 여기서 영채가 가진 배움에 대한 열망,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잠깐 등장한 야간 수업에서는 '정상 가족'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두 명의 주인공 모두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가족'에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점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영화는 마치 가족의 개념이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새롭게 정의되는 가족의 조건은 무엇일까?




2. 아영의 꿈, '유치원 교사'

아영은 유아교육과라는 전공 덕택에 육아 돌보미로 영채의 집에 고용될 수 있었다. 영화가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만하는 영채와 아영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아영의 전공을 유아교육과로 정한 걸 수도 있지만 아영의 유년시절을 짐작해보면, 과거에 대한 결핍된 기억이 진로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아이'에게 본인의 경험과는 다른, 좋은 기억을 주고 싶어서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건 아닐까?




3. 그들의 연대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 자식을 불법으로 입양 보낸 영채에게 아영은 "내가 도울게요"라고 말한다. 비현실적인 확신과 비현실적인 결정이다. 아영은 또다시 위태로운 생활에 놓일지도 모른다. 당장 본인의 내일을 책임지기도 벅찬 사람이 타인을, 거기다가 타인의 아이까지 도울 수 있을까.

이렇게 그들의 연대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제도부터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약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 둥둥 떠있는 제도와 그런 제도가 만든 사회. 현실적이지 못한 사회를 버티기 위해 약자들은 무리일 법한 연대를 보여주곤 한다.




4.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조명하고자 하는 디테일이 많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각 인물들에게 부여된 서사와 특징이 깊고 다양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영채를 보자. 영채는 남편이 일찍이 죽어 미혼모가 된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본인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당장 눈앞에 닥친 육아를 책임지기 위해 업소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배움에 대한 의지를 갖고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보려 하지만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본인의 생활력을 인지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팍팍한 삶에 치여 다듬어지지 않아 상대에게 상처를 내는 말을 던지는 동시에, 팍팍한 삶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하기도 한다.

영화관을 나온 직후에는 함께 영화를 감상한 친구와 영화가 너무 많은 이야기로 채워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다시 되짚어 보니, 약자들이 얼마나 촘촘한 구조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설정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5. 거리의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아이 셋. 과연 효과적인 결말 장면일까?

주인공들이 길거리의 사람들 속에 묻히는 엔딩 장면. '이 세상 속에 그 누가 약자일지도 모른다'라는 암시가 느껴지긴 했지만 굳이 그래야 했을까? 약자의 어려움을 보편성으로 확장하기보다는 개인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켄 로치 감독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등의 작품을 생각했다. 영화 <아이>와 마찬가지로 켄 로치의 작품 역시 사회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는 약자를 대중 속에 숨겨 버리며 끝이 난다. 이로써 관객은 '당장 우리 옆에도 약자가 있을 수 있다'라고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가정'에서 비롯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에서 유발된 공감인 것이다. 

하지만 약자를 대중 속에서 콕 집어 빼내서 가까이, 유심히 바라보게 되면 그의 처지에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미안해요, 리키>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이 내몰린 약자를 가까이에서 비추며 끝난다.(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결말이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현실이 이토록 가혹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것은 '가정'의 전제를 거치지 않은, 약자에 대한 직접적인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 효과적인 결말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게 된다.




+)

개인적으로 배우 김향기가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배우 류현경, 염혜란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서사를 이끌며 절대적인 분량을 갖는 인물이 김향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호흡이 길어진다 싶을 때 김향기가 나지막이 읊는 대사, 혹은 비명처럼 울부짖는 대사가 몰입을 도왔다. 무슨 역할을 맡든 언제나 존재감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오롯이 혼자서 극을 이끄는 원맨쇼 같은 작품을 소화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 졌다.

특히 영화 <증인>도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김향기는 흔히 주인공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인물이 주인공으로 서는 영화를 자주 고르는 듯 보인다. 앞으로의 행보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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