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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Jul 13. 2021

[영화 감상 네 번째] <플란다스의 개>(2000)

 봉준호 시선으로부터(1) 모든 개는 돌아오지 못했거나 않았다



짖지 못하는 삔돌이


주인공 윤주(이성재)는 개소리가 듣기 싫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슬기(황채린)의 시추 삔돌이를 지하 옷장에 가두는가 하면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김진구)가 자식마냥 키우는 치와와 아가를 옥상에서 던져버리기까지 한다. 야산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를 혼란에 빠트린 개 도난 사건을 시작한 가해자는 윤주였지만 마지막 피해자는 정작 윤주 본인이 된다.

    가해자였던 윤주가 피해자가 되는 이 순환적인 개 도난 사건은 윤주의 내적 갈등 그리고 사회의 거시적인 갈등과 연관되어 있다.





치와와 아가를 던져버린 직후 도망치는 윤주


인물의 발화에 담겨 단편적으로 지나가는 두 가지 일화는 각각 학원 비리와 아파트 건설 비리에 대한 내용이다.


윤주는 교수를 꿈꾸지만 두툼한 뇌물 없이는 강단에 설 수 없는 채용 관습에 절망한다. 한편 윤주의 동료 남궁민은 학장에게 돈을 바쳐 교수직은 따놓은 상당이었다. 그러나 학장이 권하는 폭탄주를 거절하지 못한 그는 만취 상태로 지하철에 치여 죽게 되고 이 비극은 윤주에게 기회가 된다. (제로섬 게임처럼 자리를 쟁취하는 과정은 <기생충>과 몹시 닮아있다)

    죽은 남궁민은 도난된 개들 중 치와와 아가를 닮아 있다. 남궁민은 만취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나머지 지하철 철로에 떨어져 죽게 된다. 아가 역시 옥상에서 떨어져 바닥에서 죽음을 맞는다. 윤주는 아가를 죽임으로써 더 이상 개소리 소음에 시달 키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남궁민의 죽음 역시 교수직을 노리는 윤주의 목적을 이루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아파트 건설 비리에 대한 전말은 경비원 변 씨에 의해 언급된다. 극 중 배경이 되는 아파트가 지어질 때 건설 비리를 알아챈 보일러 김 씨는 현장소장과 언쟁을 높이다 몸싸움의 사고로 죽게 된다. 그의 죽음은 아파트의 지하실에 시멘트와 함께 덮여 은폐되고 만다. 김 씨의 죽음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한국 사회의 부패로 암시된다.

    보일러 김 씨가 죽은 후 그 아파트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김 씨 특유의 사투리 말씨처럼 들려 아파트 주민들을 노이로제에 빠트린다는 점은 개 짖는 소리에 내내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윤주의 상황과 겹친다. 사회에서 지워진 크고 분명한 갈등은 아파트에서 벌어진 작고 모호한 사건으로 비유되어 드러나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봉준호의 다른 영화에 비해 루즈하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이입할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윤주는 지식인의 이기심, 지식인의 고뇌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다른 주인공인 현남(배두나)은 강하고 순수한 '선'이어야 보편적인 인물 구성의 무게가 맞는다. 하지만 관객은 현남에게도 쉽게 이입할 수 없다. 아무리 현남이 몸을 던져 강아지를 구해도 어딘가 께름칙하기 때문이다.


현남이 사라진 강아지를 찾는 안내방송을 내보낼 때 열린 창 앞에 서있는 그의 모습 아래로 정육점 간판이 화면에 크게 들어온다. 또 강아지를 열심히 찾는 과정에서 전기 통닭구이가 클로즈업되어 나타난다. 이는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은 스스럼없이 육류로 접하지만 사라진 강아지는 애틋하게 찾는 현남의 이중성을 강조하게 된다.


현남은 마지막으로 분실된 강아지 순자를 구조하고 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닭다리는 야무지게 먹지만 개고기는 용납할 수 없는 동물에 대한 차등적인 태도 때문에 이 영화의 모토는 '동물 사랑'이 될 수 없다. 종에 따라 달리 매겨지는 상한선 때문에 우리가 맘 편히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없는 것이다.






윤주는 통장 잔고 14만 50원으로 시작하지만 1,500만 원의 뇌물을 지불함으로써 꿈을 이룬다. 반면 개입하지 않아도 될 일에 발 벗고 나서며 주민을 도운 현남은 일자리를 잃으며 끝이 난다. 아무리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하지만 이 엔딩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현남에게는 그 어떤 득도 남지 않은 것일까?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룬 윤주는 어두운 강의실에서 딱히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막 모습을 보인다. 수업을 위해 커튼을 치는 모습은 그가 영화 첫 장면에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숲을 가리는 행위다. 이상적인 직업은 얻었지만 그가 바라던 온전한 이상향에는 한 겹 더 멀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남은 숲으로 간다. 훌쩍 떠나 숲에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고 싶다고 언급했던 현남은 그의 말을 실현시켰다. 한창 수풀을 걷던 중 현남은 뒤를 돌아 거울로 선명한 빛을 비춘다. 이 빛은 주인공 윤주에게 가닿을지도 모른다. 깜빡이며 흔들림에도 뚜렷한 빛이 스크린을 넘어 우리까지 비추는 건 아닐까.






"첫 장면에서 숲을 보는 것은 윤주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숲에 가는 것은 현남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역설적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 봉준호 x 이동진의 <플란다스의 개> 대담 中






참고문헌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저자 이동진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20.03.20.

       


        플란다스의 개 감독 봉준호 출연 이성재, 배두나 개봉 2000. 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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