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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Aug 12. 2021

[영화 감상 006] <모가디슈>(2021)

문을 열어 마주 했어도 결국 문이 열리면 나란히 걸을 수 조차 없음을

4개월 동안 진행된 100% 로케이션 촬영부터 300여 명이 넘는 보조 출연자를 동원한 <모가디슈>의 현장감은 그야말로 '프로덕션의 승리'였다. 소말리아의 내전 상황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혼란'은 사실 엄청난 '질서'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 연출이다. 주요 촬영지가 타국인 상황에서 여러 국적의 배우들과 함께 하며 수없이 발생했을 변수를 이토록 통제할 수 있는 프리 프로덕션을 구비한 나라가 과연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내가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옛날 필름 효과를 구현하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해 톤으로 느껴지는 시각적인 요소까지 신경 쓴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또 쑥색 수트를 비롯한 어딘가 예스러운 의상과 소품들이 오늘날과는 동떨어진 시공간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모가디슈>는 각 인물보다 전반적인 스토리에 집중한 영화다. 그리고 이 서사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소말리아 정부와 반군의 갈등, 반군과 소말리아 외교 국가와의 갈등, 남북 대사관의 갈등, 남북 각 내부에서의 마찰 등이 그것들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 내전보다도 더 핵심적인 갈등은 남북 대사관의 갈등이다. 한민족이지만 다른 국가에 소속되어 있어 이익도 목적도 다른 두 입장이 본격적으로 마찰하게 되는 지점은 남한이 북한에게 과연 '문을 열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남북은 북한이 소말리아 반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바로 전날까지 서로 적대적이었지만 결국 남한은 북한에게 문을 연다. 온갖 위험을 안은 채 이북 사람들을 경계 안으로 들이자마자 한 대사는 아이들에게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이는 앞으로 한 대사를 비롯한 남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이 뒤로 이어지는 남북의 식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남북이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측은 남한 사람들이 차린 밥상 앞에서 쉽게 수저를 들지 못한다. 이때 한 대사가 본인 앞에 놓인 음식과 북 대사관 앞의 음식을 바꿔 먹음으로써 그들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인다.

    남측 대사관 부인이 깻잎을 어렵게 짚을 때 북측 대사관 부인이 아무런 말 없이 다른 쪽 깻잎을 잡아주는 장면도 시각적으로 임팩트가 있었다. 깻잎이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반찬이라는 점도 유의미했고 북측 대사관 부인이 상대와 아무런 눈 맞춤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묘한 울림이 있었다. 온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것인지 선을 지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제된 온도의 배려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남북 간의 배려와 연결성이 두드러지는 오브제가 있었는데 당뇨를 앓는 환자에게 필수적인 인슐린 주사가 그것이었다. 군사분계선으로 나뉜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었고, 한 대사가 그 둘을 다르지 않은 온도로 걱정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한 민족이지만 다른 두 국가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상징성이 느껴졌다.



만약 영화에 무게중심이 있다면, <모가디슈>의 무게중심은 결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은 소말리아를 무사히 탈출하지만 이후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남북이 붙어 있는 모습을 각 대사관에게 들켜선 안 되는 상황에 놓인다. 착륙 후 서로를 모른 척하며 걷는 그들의 모습은 무미건조함을 넘어 어딘가 냉랭하기까지 한다.

    탈출의 성공, 목표 달성 등으로 과열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과잉이 느껴지지 않는 결말이 좋았다. 한국 영화 특유의 뜨거운 결말이 아니어서 신선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상대적으로 한국은 차가운 영화를 못 만든다는 평을 했었고 이를 유심히 되뇌곤 하는데 영화 <모가디슈>는 전체적으로 온도는 덜어냈지만 무게는 묵직하게 남은 영화였다.


그러나 분명한 아쉬움도 남는 영화였다.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갈등의 해소를 너무 축소해서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모가디슈>는 분명히 소말리아의 내전 상황보다, 한국의 un 가입 과정보다, 남북의 갈등이 협력을 통해 해소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한 민족이지만 분단된 두 국가에 초점을 맞추는 주제엔 문제가 없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모가디슈>이다. 배경이 한반도가 아닌 소말리아였다면 적어도 소말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갈등이 초래된 배경을 더 비중 있게 다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는 태준기 참사관의 죽음을 경종처럼 울린  후*모든 총성도, 비명도, 혼란도 멈춘다. 그토록 위태로웠던 온갖 폭력과 갈등이 고요해진다. 그러나 이 멈춤은 너무나도 비약적이었다. 그의 죽음은 엉킬 대로 엉킨 한국 대사관 내부의, 남북 대사관 간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풀 수 있었지만 소말리아 정부군과 반군, 소말리아 외교 국가들과 반군 간의 억센 갈등은 건드리지조차 못했다. 남북 관계 외의 갈등들은 온통 혼란으로만 남은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을 땐 여운의 쉼표 혹은 경이로운 느낌표보다 갸우뚱한 물음표들이 한가득 떠올랐다.



*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배우)의 죽음이 경고처럼 들려오는 찰나의 장면에선 잠깐 내 숨이 멎는 듯했다. 총성도 신음소리도 없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클랙슨 소리가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는 정말 '소리로 죽었다'. 경고, 구조 요청으로 쓰이는 소리가 그 어떤 비명보다 처절했다.



두 번째로 북측 캐릭터의 납작한 캐릭터성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김윤석 배우(한신성 대사 역), 조인성 배우(강대진 참사관 역)가 유달리 부각되는 반면 무척 기대하고 갔던 구교환 배우(태준기 참사관 역)의 활용도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주제이자 모토인 인간성,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김윤석은 차분하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마치 인물들이 아무리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기어코 화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연기가 돋보였다. 어떤 안정적인 연기는 다른 연기자들이 맘 놓고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반면 조인성은 김윤석과 정 반대에 위치한 인물로 다혈질의 성격을 갖고 있다. <모가디슈>는 비교적 담백한 톤을 유지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강대진 참사관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계속해서 팽팽한 긴장감을 갖게 되고 관객이 쉽게 안식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결말에 이르러서 한 대사보다 이성적인 머리로 북한 사람들과 함께 탈출할 이동 수단을 생각해내는 강대진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빠르게, 많이 변화했는지를 명료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구교환 배우는 이북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태준기 참사관은 문제 상황을 자체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한으로부터 도움받기를 거부하는 캐릭터이다. 실질적인 것들이 결핍된 와중에서도 그는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굳건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으나 어느샌가 그는 남한의 도움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본인이 운전하는 차를 방어벽 삼아 남북이 섞여 있는 생존자들을 지키며 희생한다.

    얼핏 보면 영화 내내 조금씩 마음을 열어 태도 변화의 폭이 가장 큰 인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조차 스테레오 타입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가?

    구교환 배우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톤으로 억양의 높낮이가 특징적인 북한 사투리를 본인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연기가 정말 좋았다. 구교환 배우는 가끔 말의 끝을 날리는 듯, 흘리는 듯하면서도 그 대사의 맛을 굉장히 잘 살리는 배우다. 그런데 <모가디슈>에서는 유달리 한 대사, 한 대사마다 정교하게 발음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구교환이 해석한 태준기는 과감함 속에 어떤 섬세함을 감추고 있는 사람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기대한 모습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구교환 배우다.



<모가디슈>가 올해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었다고 한다. (8/6 기준) 이는 제작, 스텝, 배우의 시너지가 만들어낸 영화가 받아 마땅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에 극장가가 위축된 세태에 개봉했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더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을 잠재울 수 없었다. 새로운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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