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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키 Aug 19. 2021

[영화감상007]<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2016)

사람을 믿지 말라더니 사랑을 믿어버렸네

"자기는 멍도 이쁘게 든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감독의 발언이 논란으로 불거져 개봉 직전의 불매운동 탓에 관객 수 100만 명도 넘지 못한 아쉬운 성적을 갖고 있다. 감독 개인의 논란을 영화 논외로 살펴본다고 해도 범죄/느와르 영화 특성상 분별없이 쓰이는 여성 혐오적인 표현과 워딩 역시 온전한 몰입을 방해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가 마니아적인 팬층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재미난 물음이 떠올랐다. '범죄, 액션 장르로 홍보된 이 영화가 '멜로'로 선전되었다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 물음이 얼마나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이지 않았기에 더욱 절절한 (브)로맨스 영화, <불한당>. 이 영화를 6가지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1 교묘히 맞물려 있는 오프닝과 엔딩, 수미상관


2 반전의 장면 전환, 플로팅의 재미


3 서로에게 물드는 색, 빛의 변화


4 혁신적인 또라이에 씌어버린, 서사와 대사


5 더하기가 아닌 빼기로, 배우의 연기


6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다.'




1 교묘히 맞물려 있는 오프닝과 엔딩, 수미상관

<불한당>은 조심스럽지만 함축적인 수미상관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고병갑(김희원)과 정승필(김성오) 두 인물이 '총'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총은 대상과 물리적 거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살상에 대한 죄악감을 줄여준다는 것이 그 대화 내용이다. 총은 멀리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누군가를 쏴 죽여도 죄책감이 적다는 것이다. 영화는 약간의 변주와 함께 수미상관으로 오프닝과 엔딩의 짝을 맞추고 있다.

   현수(임시완)는 천 팀장(전혜진)을 총으로 쏴 죽인다. 3년이란 세월을 감방에서 썩게 한 죄, 본인의 어머니를 지켜주겠단 약속을 맥없이 저버린 죄를 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살인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덜기 위해 총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천 팀장을 완전히 죽이고 나서도 마치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하는 듯이 빈 총의 방아쇠를 몇 번이고 당긴다. 그러고서 텅 빈 총을 재호(설경구) 손에 쥐여주곤 재호는 본인 손으로 죽인다. 두 손으로 직접.

   현수는 총도 칼도 아닌 두 손으로 재호를 죽였다. 이는 아주 가까이서 상대의 숨통이 멎어가는 것을 온전히 느낌으로써 살인의 죄악감을 고스란히 떠안는 행위다. 현수는 재호의 멎어가는 호흡을 두 손바닥으로 느끼며 최대한의 죄책감을 짊어진 것이다. 이는 현수가 재호를 잊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의 마지막을 최대한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아픈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 그게 미처 사랑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영화 초반, 재호는 채도 높은 칼라 배경에 빨간 차를 몰고 현수의 출소를 맞이하러 간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피를 묻힌 얼굴로 현수는 흑백 배경에서 빨간 차에 타있다. 변주가 포함된 수미상관은 서사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부분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여운이 더 오래가는 것이 아닐까.




2 반전의 장면 전환, 플로팅의 재미

<불한당>의 초반부에서 흥미를 돋우는 긴장감은 반전적으로 편집되어 있는 플로팅의 몫이 크다. 서로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의 범위가 달라 발생하는 반전적인 플로팅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잠입 수사하는 현수

> 이미 알고 있는 재호


2 "형, 나 경찰이야" 말하는 현수

> 이미 간파하고 있는 재호


3 경찰로 돌아선 현수

> 이미 알아챈 재호



현수는 재호를 필두로 한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교도소에 자진 수감된 경찰이다. 그는 재호의 눈에 띄기 위해 돌발적인 행동을 일삼고 온통 그를 주시하는 데에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재호는 현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를 회유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간을 보기 위해 덫을 심어두기까지 한다.

   흔히들 말하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서사가 이어짐과 동시에 그 반전 속에서 현수와 재호의 관계가 변화한다. 재호는 현수 한 명을 감아보겠다고 작정했지만 정작 감기는 건 재호 본인이었다. 이 점을 눈여겨보면 영화를 더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3 서로에게 물드는 색, 빛의 변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오렌지, 옐로 계열에서 점차 푸르스름한 계열로 색감이 변화한다. 초반부의 난색은 따뜻함이 충만한 인상이기보다는 풀잎 하나 없는 교도소의 삭막한 모래 운동장, 누런 죄수복, 건조하게 익어가는 노을 등으로 구현되는 미적지근한 느낌에 가깝다. 후반부의 한색은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로 파란 느낌으로, 때때로 무채색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새까만 밤에 번지는 시퍼런 새벽, 현수가 입은 코발트블루 색상의 수트 등이 그것들이다. 상반되는 두 색상에 각 인물을 대입해보자.



주황 / 죄의식을 못 느끼는 재호


파랑 / 죄의식을 느끼는 현수



각 색상을 인물로 치환해도 무관한 이유는 인물의 변화에 따라서 각 색상이 대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부, 재호가 현수 엄마를 죽이고 난 후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현수는 교도소에서 엄마의 죽음에 울부짖는다. 재호가 오열하는 현수를 바라보는 첫 장면은 무채색에 가깝다. 그러나 재호가 다시 같은 장면을 떠올리는 회상에선 해당 장면이 주황색으로 보인다. 이후 차를 타고 가며 반복해서 떠올리는 회상에선 주황색이 파랑색으로 바뀜으로써 재호가 평소와 달리 살인사건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색감 변화는 현수에게 동화되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엔딩에 이르러서 재호가 병건을 죽일 때 역시 파랑색 배경이다.

    음침하게 푸른 배경의 경찰 회의실, 파란 수트 등으로 파랑색은 현수를 표방한다. 그러나 현수의 가장 큰 변화는 재호를 죽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경찰 편으로 돌아선 현수가 재호의 아지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재호를 죽일 때까지의 배경은 주황색이다. 경찰과 범죄조직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 짓을 하며 현수가 여태 느껴왔던 일말의 죄책감도 상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영화 초반부의 재호에게 동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재호를 죽이고 난 후 현수는 갓 밝아오는 시퍼런 새벽에 놓인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재호는 주황>파랑, 현수는 파랑>주황>파랑으로 변화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관에 현수를 두고 나온 것 같다는 한 관람객의 평을 좋아하는데 아마 결말의 그 새벽이 영영 밝아오지 않을 거란 확신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4 혁신적인 또라이에 씌어버린, 서사와 대사

<불한당>에서 가장 큰 몰입을 요구하는 갈등은 마약 거래도 범죄조직 소탕도 아닌 재호와 현수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재호는 현수 그놈 하나 감아보겠다고 그의 하나뿐인 세계(엄마)를 앗아갔지만 정작 감긴 건 재호였고 현수는 끝까지 재호에게 감기지 않기 위해서 그를 죽여버렸다. 재호는 현수에게서 '엄마'라는 세계를 무너뜨리면 본인에게로 무너질 줄 알았을 테고 재호는 그런 방법밖엔 몰랐던 것이다. 재호의 사랑은, 그런 형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피 칠갑이 된 재호의 사랑은 이 대사로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진짜, 진짜 뭐에 씌었나 보다.'



이 말은 '씌었었던' 게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씌인 상태'라는 것이다. 본인의 세계를 무너뜨린 죄에 대한 대가로 작정하고 재호를 잡으러 온 현수를 보고서도, 그 어색한 말 속임과 연기에도 일부러 속아주면서도 여전히 현수를 사랑했다는 뜻이다.


한편 <불한당>에서는 기묘하게 에로틱한 장면이 번번이 연출된다. 재호와의 주먹다짐으로 입술이 터진 채 쓰러진 현수의 얼굴은 새하얀 피부와 빨간 피의 대비로 그렇게나 예쁠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의심이 든 재호가 현수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는 장면은 흔히 느와르 물에서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를 전유물로 삼아 본인의 우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연출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둘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않는다. 어떤 상투적인 스킨쉽도 없다. 모든 장면은 지금 두 인물이 '사랑'을 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총탄이 마구 흐트러지고 모두를 피투성이로 만드는 액션 장면도 두 인물의 감정선이 드러나는 장면에선 고요해진다. 둘이 '사랑 같은 것'을 한다는 인상이 은은하게 들뿐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기에 영화의 여운이 더 길 수밖에 없다.




5 더하기가 아닌 빼기로, 배우의 연기

관객들은 성애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어느 순간 영화에 감겨버리고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이 빈틈없는 몰입도는 임시완, 설경구 두 인물의 연기력이 정교하게 빚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여리고 고운 이미지가 강했던 임시완이 담담하고 때로는 여유로운 톤으로 '현수'를 소화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의 수술을 담보로 교도소에서 3년을 자진 수감한 경찰이 '하나뿐인 세상'이었던 모친을 잃고 오열하는 모습,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의 배후가 본인이 믿어보려 했던 '새 세상'이었던 사람임을 알고 재호에게 등을 돌리는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전자보다 후자에서 임시완은 훨씬 차분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장면에서 현수가 느껴지는 좌절감의 정도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하거나 거칠어질 수 있는 액션도 본인 특유의 빠르지 않은 템포로 잘 살린 것 같아 좋았다.

   흔히들 <불한당>을 임시완을 발견한 영화라고들 하는데 나는 설경구의 복귀작으로도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의 연기는 임시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에 위치해 있다. 그는 거침없이 과장된 톤을 사용하고 스스럼없이 거친 연기를 소화한다. 외면적으로 내면적으로도 동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정'을 만들어냈을 때의 적막감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면 현수가 경찰 편이 되어 재호를 꾀어내기 위해 전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찰나의 정적인 표정에서 관객은 재호의 혼란을 읽을 수 있다. 재호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 심란하게 흔들리는 배경의 나무와 재호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6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다.'

흔하디 흔한 말이 있다.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다.' <불한당>은 총이라는 도구가 얼마나 살인의 죄책감을 줄여주는지 언급하며 시작한다. 그래서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의 직접적인 살인은 단 두 번이 있었다. 병갑과 재호, 현수와 재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두 번의 살인이 그것이다.

   각 죽음을 살펴보면 더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주는 결과였다. 죽어버리는 것도 아닌 죽어주는 것. 병갑은 재호가 본인을 더 해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현수에게 씌인 재호를 되돌려 보려 했다. 재호는 부모가 독을 먹여도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토해가며 기를 쓰고 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현수가 본인의 목을 조를 땐 두 손을 바닥에 붙이곤 저항 없이 죽는다. 두 죽음의 형태가 명백하게 동일하다. 둘의 죽음은 사랑의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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