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존재한다.(ft. 퍼피)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여도 괜찮아.

by 다한

나는 겁이 많지만 소심하진 않아.

어릴 때 내가 사고 쳤던 일들만 따져도, 나는 꽤 대담하고 호기심 많은 강아지였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들을 저지르곤 했는데, 엄마는 절대 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진 않았어.

왜냐하면..., 나는 퍼피(puppy)니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존재한다.


새끼 강아지들은 5개월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을 하든 용서받을 수 있는 티켓이 주어져.

그게 바로 퍼피 라이선스(Puppy license)라고 불리는 시기를 말해.




어려서부터 나는 혼자 있을 때면, 혼자서도 엄청 잘 놀았어.

엄마가 외출하면서 내가 놀 수 있는 장난감들을 집안 가득 선물해는 덕분이지.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나도 견생이 처음이지만 엄마도 견주 인생이 처음인 건 마찬가지였거든.


원래 그렇잖아.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라는 건 말이야, 몸으로 터득하는 법이거든.


내가 어릴 때 일인데....

엄마랑 아빠가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

나는 혼자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이 많았지.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 일 년처럼 느껴지곤 했어.

하루는 이빨이 너무 가려운 거야.

잇몸을 비집고 새 이가 막 자라나는데, 아주 그냥 뭐라도 씹지 않고는 견질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웬 밀짚 같은 묵직한 바구니가 딱 눈에 띄는 거 있지?

그래서 그걸 씹고 당기고 놀기 시작했어.

아주 잠깐이었지만 참..., 행복했지.

영차, 영차! 뱅갈고무나무와 씨름하는 퍼피, 훈이.
"엄마 미안해."

이 이상한 나무가 힘없이 '픽-' 하고 쓰러질 줄은, 정말 정말 몰랐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

촤라락- 하며 모래들이 쏟아지는 순간, 어찌나 깜짝 놀랐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날은 어두워졌어.

엄마가 돌아오면 뭐라고 할까? 걱정이 태산이었지.


밤이 깊어서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불을 켜자마자 거실에 쓰러진 화분을 발견했어.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 입을 쩍 벌리고 멀뚱멀뚱 서있었.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ㅇ'모양으로 벌어진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고함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지.

아주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고,

엄마는 말없이 쓰러진 화분을 치우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오히려 "다 내 탓이다. 내가 저기에 화분을 둔 게 잘못이지..., 그렇게 심심했어?" 하며, 놀란 나를 쓰다듬어줬어.


사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몰랐어.

단지 이빨이 가려워서, 혼자 외롭고 심심해서 그랬을 뿐인데, 마구 소리 지르거나 콧등을 때리거나 했다면....

엄마가 내게 화를 냈다면.

나는 아직도 화내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했을 거야.


다만 그 날의 사건 이후로 한 가지 변화한 건..., 화분이 있는 곳에 울타리가 생겼다는 거야.

아쉽게도 다시는 저 라탄 바구니를 씹어댈 수 없었어. 쳇.


그 후로 사고는 안 쳤냐고?

.

.

.

설마. 그럴 리가....

이게 뭐... 야, 훈아? 아니..., 왜?
저도 체면이라는 게 있습니다.
디테일한 사건의 내막은 말하지 않겠어요.

대충..., 화장실에 걸려있던 두루마리 휴지와 딱 개껌 두께의 리모컨..., 매트와 벽지 아주 조금을....

휴,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려.

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더 이상 낯 뜨거워서 말을 아끼려고 해.

창피해서 털이 쭈뼛거리는 것 같아.


중요한 건!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우리 엄마는 내가 의젓한 강아지가 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줬다는 거야.

그리고 나를 지켜봐 준 엄마에게 하나둘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어.

엄마의 가르침을 하나둘씩 깨우치고, 끊임없이 훈련한 덕분에 지금의 내가 훌륭한 강아지가 될 수 있었지.


어설프고 실수투성이라 해도 괜찮아.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으니까.


물론, 아직도 나는 완벽한 반려견은 아니야.

한 번씩 실수도 하고, 고집불통에 가끔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도 해.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여전히 무섭고, 외롭고, 따분함을 견딜 수 없어.

그래서인지 우리 엄마는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면, 내가 심심할 틈이 없도록 온 집안에 재미있는 장난감과 놀잇감을 선물해주곤 해.

그 후로는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는 법을 터득했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분리불안'이라는 건 말이야.

알고 보면 엄청 단순하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건데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나처럼 도시 견생을 꿈꾸는 댕댕이들, 매일 사고 치는 강아지 때문에 골치 아픈 견주님들, 반려견과의 평화로운 동거생활을 꿈꾸는 예비 견주님들!

딱 한 가지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하는 시간이 30분이던, 몇 날 며칠이건 상관없답니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를 온종일 할 일 없이 주인만을 기다리는, 처량한 댕댕이로 만들진 말아 주세요. 당신이 열심히 일 하는 동안, 우리에게도 할 일을 만들어주세요.
훈이의 꼬물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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