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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Apr 01. 2022

코로나와 함께한 결혼기념일

부부라는 의미를 되새 긴 날

딸아이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어제 온 가족은 김녕동부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로나 양성입니다." 남편과 첫째까지 온 가족이 양성 통보를 받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거짓말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고열, 오한, 인후통을 호소하며 각자의 방에서 끙끙 앓기 시작했다.

확진을 받은 사람은 약을 처방받을 수 없어 음성인 내가 대리인으로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급히 병원에 다녀와서 죽과 물을 끓이고, 각자 방에 배분하고 약을 챙기고, 열체크에 케어하느라 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정신이 혼미하기 까지 했다.


저녁식사와 저녁약을 챙겨주고서야 쉼을 가질 수 있었다. 의미없이 핸드폰을 여는 순간 '손예진, 현빈'의 결혼식 사진이 눈에 띄었다.



아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3월 31일 바로  나의 결혼기념일이란 사실을...

'손예진 현빈'의 결혼 날짜와 우리의 결혼날짜가 일치함을 인지했다.유명 스타와 우리의 결혼날짜가 동일하다니  반가웠다.

사진 속 손예진은 아름다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신부의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사진을 마주하니 지금 처한 나의 상황이 잠시 초라하고 조금은 서운함이 느껴졌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월요일 딸아이의 확진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멘붕이 왔다. 처음 신속항원검사에는 음성이 나왔는데 열이 계속돼서 다시 한번 검사를 진행하니 양성으로 확인돼 보건소를 두 번이나 방문해야 했다.


제주에서 1년여 만에 완전체가 된 우리 가족... 이번만큼은  자축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허락지 않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끙끙 앓으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미안해,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맛있는 식사도 못하고... 자기 힘들게만 하네."

"괜찮아, 지금 결혼기념일이 문제야? 당신 이렇게 아픈데..."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은 가시지 않았다.





3월의 마지막 날 31일,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트릴 무렵, 우리는 7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식을 올렸다.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결혼서약을 하며 함께 하기를 맹세한 날이라 의미가 깊다.

가진 것 없이 정말 사랑과 믿음으로 시작한 결혼... 우리를 제외한  다른 요인의 험난한 여정의 변곡점 앞에 무너지고픈 날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몸이 아픈 홀시아버지를 갑자기 모셔야 했을 때, 남편의 사업의 위기로 인해  법원에서 회생 절차를 밟아야 했을 때, 둘째 딸아이로 인해 극심한 산후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자의가 아닌 타의로 생계형 워킹맘이 되어야 했을 때


남편의 자상함과 배려심이 아니었다면 결코 헤쳐나가지 못했을 순간들이었다.

절망과 우울감에 휘감겨 있을 때마다 나를 안아주며, 토닥이며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이도 남편이었다.

무엇보다 가정이 본인 삶의 1순위이고, 아이들에게 진심인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힘과 용기를 얻곤 했다.


나의  삶의 터전과 평생직장을 포기하고 제주살이를 선택한 것도 남편의 자상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삶의 큰 고민 앞에 허우적거릴 때면 남편이 제시해준 말 한마디가 명석한 해답이 되어 주기도 했다.


가끔 딸아이에게 물어본다.

" 딸~ 엄마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무엇인지 알아?"

"뭔데요?"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채은이 낳은 거야."

딸아이는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웃음을지어 보이곤 한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고 자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가족이 서로를 배려하며 아끼며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순간의 찰나가 행복으로 물들면 된 것이 아닐까?



요즘 제주는 그야말로 봄꽃들의 향연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주말마다  유채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소로 나를 데려가 준다. 사진기사를 자처하며 반응에 응답하며 나의 모습을 꽃과 함께 담아주기도 한다.

정석비행장 벚꽃길



 짜증이나 우울감이 감돌 때면  밖에 나가 외식을 자처해서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쓴다. 직장동료와 맛보았던 맛집을 기억해놓았다가 가족을 데려가 주기도 한다. 그 세심함이 참 감사하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늘 한결같은 모습에 나를 반성케 한다.



"부부"라는 글자는 더하거나 덜한 것 없이 똑같은 자음과 모음을 나눠가졌다.

똑같은 글자의 모양처럼 부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유난히 많은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부부라는 글자를 다시 보며 생각한다. 마치 시소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은 사람들, 어느 한쪽이 계속 내려가 있으면 재미가 없다. 오르락내리락하다가도 어떤 지점에서  균형이 맞아 평행을 이루면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부라는 것이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비록 온 가족의 코로나 확진으로 정신없이 보낸 결혼기념일이었지만 불평보다는 남편의 고마움,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긴 소중한 날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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