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잡았다. 마당은 어느새 아기자기한 이름모를 야생화들과 풀들이 초록초록의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났구나...' 2주전만 해도 얼굴을 빼꼼 내밀었는데 그동안 햇빛을 받아 열심히 광합성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릎길이였던 유채꽃도 딸아이 키만큼 자라났다. 매화꽃으로 흐드러졌던 나무도 어느새
새초롬한 연둣빛 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밖에 나와 햇빛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초록초록 풀들을 마주하니 거짓말처럼 우울했던 감정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기침이 잦아들고 몸이 따스하게 데워졌는지 딸아이도 기운을 회복했다. 집앞 벚꽃나무의 잎을 따다 흩날리는 눈꽃놀이를 하였다.
딸아이와 간만에 눈꽃놀이에 우리둘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솔잎을 따다가 장독대위에 올리고 소꿉놀이도 하였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소품으로도 활용해 보았다.
이번엔 마당에서 햇살한줌을 맘껏 흡수한뒤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은 옥상이지만
나와 딸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힐링 스팟이 되어준다. 이사오자마자 딸아이와 아들래미는 옥상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아이의 웃음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내 마음에도 그대로 전달된다. 아침에 일어나 아스라이 떠오르는 함덕해변 햇살을 마주하기도 하고 김녕바다의 풍력발전의 바람개비가 목격되기도 한다. 마을주변의 감귤밭과 빠져들듯 파아란 하늘에 솜사탕 구름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가득 차오른다.
옆집의 마당정원도 보인다. 잔디의 싹이 오르고 복사꽃도 꽃망울을 터트린 모습이다. 옆집 텃밭작물을 구경하며 다음엔 저 작물도 심어보고자 다짐도 해본다.
간만에 텃밭에 심은 딸기와 상추등 채소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졌다.
한달이 다되어가는 시즘이다. 여리고 아기손 같았던 연둣빛 상추는 잎이 풍성해지고 선명한 초록빛깔의 색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딸아이 손톱같았던 딸기 열매도 어느새 내 엄지 손톱만큼 굵어졌다.
이만큼 자랐어요.
딸기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기뻐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는듯 했다. 만약 예전 도시 아파트에 살고 있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한 풍경들이다. '어디갈까?' 계획하지 않아도, 멀리 차타고 가지 않아도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내눈앞에 펼쳐진 꽃들과 자연의초록의 풀들이 인사를 건넨다. 아침에 들려오는 짹짹짹 참새소리는 덤이다.
힘없고 낙담되었던 딸아이가 기운을 차리며 웃는 모습에 나또한 소모되기만 했던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