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는 여름방학 간식으로 감자떡을 해주셨다. 감자떡이 먹기 싫었다. 엄마는 줄곧 감자로 떡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시골집에 널린 감자들이 너무 흔해서 귀함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시골이라 해마다 여름이 되면 감자를 캐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 감자 줄기를 잡고 호미로 흙을 살살 긁어내어 조심스레 뽑아내면 감자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캐는 것까지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감자를 심을 밭에 고랑을 만들고 , 감자를 심고,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엄마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야 했다. 시골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농사일에 참여했다. 그래서 나의 어릴 적 여름 사진은 빼빼 마른 새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단발머리 소녀였다.
이른 봄 감자를 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산 중턱의 밭이라 자갈이 많았다. 작은 자갈을 골라내는 것부터가 감자심기의 시작이었다. 자갈을 골라낸 후 땅을 고른 다음 감자를 심을 고랑을 만든다. 땅을 두툼하게 언덕처럼 고랑을 만든 후 반으로 감자를 자른 다음 흙에 쏙 심는다. 물을 충분히 뿌려준다.
며칠 있으며 감자에서 싹이 올라온다. 싹은 봄 햇살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난다. 작고 앙증맞은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감자꽃이 지면 땅속에서 감자알이 뿌리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감자알은 점점 땅속의 양분을 흡수해 알이 점점 굵어진다.
이맘때 하지가 되면 감자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가 된다. 드디어 감자를 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호미랑 바구니 잘 챙겼지?"
"감자 담을 포대도 넉넉히 챙겼지?
엄마의 질문에 우리 5남매는 일사불란하게 준비물을 챙겨 감자밭으로 향한다.
꽃과 싱그러운 초록색 잎으로 뒤덮은 감자밭이 예쁘고 아름답기보다는 한숨으로 다가왔다.
"아~~~~ 저 감자를 언제 다 캐지?"
"옆집에 사는 00은 저기 정자에서 놀고 있는데 나는 맨날 밭에 와서 감자나 캐냐고? "
"나도 놀고 싶다! 언니도 놀고 싶지? 그렇지"
이 말에 언니는
"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감자나 캐!!"라며
호미를 건네준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감자밭을 쳐다본다.
밭고랑 사이에 쭈그려 앉아 감자알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점점 솟아오르더니 내 머리 위까지 떠올랐다. 뜨겁고 따가운 햇살은 내 몸을 직선으로 내리쬐었다. 땀은 줄줄 흐르고 다리와 허리까지 아파왔다.
당장 호미 던져 버리고 친구들이 노는 정자에 가서 놀고 싶었지만 무서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점심에 잠시 쉬고 오후까지 하루 내내 이어진 감자 캐기는 해가 산 밑으로 떨어지고서야 끝이 났다. 밭고랑 사이로 캔 감자들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였다. 이제 포대에 담을 시간이다. 포대에 담긴 무거운 감자를 이끌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몸을 씻고 쉬다 보면 엄마는 저녁밥상을 차려 오신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적중했다. 모든 반찬은 감자 퍼레이드였다. 감자된장국, 감자 알조림, 감자채 볶음, 감자 수제비.... 하지만 배가 무척 고팠기에 밥은 꾸역꾸역 먹었지만 감자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여름이 되면 그렇게 지겹게 마주했던 친정엄마표 감자 요리들이 지금은 한없이 그립다. 특히 엄마가 해주셨던 감자떡과 감자 수제비는 잊히려야 잊히지 않는 소울푸드이다.
말랑말랑 쫀득쫀득한 감자 피안에 녹두 앙금, 그때는 왜 이 쫀득함을 못 느꼈지? 이 말랑말랑한 촉감을 체감하지 못했는지? 아쉽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 친정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새삼 가슴 깊이 진동처럼 전달된다.
엄마, 그땐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감자떡의 정성을 몰라봐서 죄송해요. 그 많은 감자를 강판에 갈아 전분을 빼고 또 감자를 강포에 담아 물기를 빼셨죠. 그리고 그 귀한 녹두를 몇 시간씩 불리고 체에 걸러 맷돌에 갈아 앙금까지 만들기까지의 긴 여정의 수고스러움을 미처 알지 못했어요.
또 감자떡을 익히기 위해 뜨거운 여름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무릎을 꿇고 기다리셨을 정성 , 더운 여름 부엌에서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아니 주르륵 맺히셨죠. 그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정성을 다해 만들어 주셨는데...
그 귀한 감자떡을 지겹게 여기고 다른 거 해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실망이 크셨을지 가늠이 안되네요. 죄송하기 그지없네요. 그때의 철없던 철부지를 용서해주세요.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을 위해 간식 하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과 준비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함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수고스러움은 금방 잊힌다. 우리 친정 엄마도 그러셨을 텐데... 그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랑에 죄송함과 감사함이 교차하며 숙연해진다.
지금은 맛보려야 맛보기 힘든 정성 가득한 친정엄마표 소울푸드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윽함으로 가득해진다.
워킹맘이라 제대로 된 음식도 잘 못해주는데 "엄마가 만들어주는 건 다 맛있어" 라며 엄지 척해주는 딸내미의 칭찬 때문에 나는 오늘도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주방에서 뚝닥 뚝닥 음식을 만들어 낸다.
이젠 친정엄마표가 아닌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 친정엄마께 대접해 드려야 할 때인 듯하다. 열심히 레시피를 계획하고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