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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Jul 04. 2021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미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세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우연히 접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 님이 마지막 장면에서 낭송해 준 글귀를  들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할머니(김혜자)는 순간 젊은 날 헤어진 남편과 애절하게 바닷가에서 재회하며 잔잔하게 들려준다.  지나온 나의 삶을 천천히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과  관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늘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보다 출발선이 다른 이들을 따라잡으려 늘 안간힘을 썼다. 희망의 불씨가 보이지 않았다. 절망과 좌절로 짙게 물들어버린 삶을 벗어던지고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 줄 마법의 문을 수없이 두드렸다. 애타게, 간절하게...



타인의 잣대와 시선이 인정하는 마법의 문, 사회의 척도에서 부러움을  살만한  삶으로 인도할  마법의 문, 금전주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마법의 문,  그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내가 꿈꾸는 멋진 세상으로 유유히 인도해 줄 그런  다른 세상을 꿈꿨다.



하루하루의 삶의 찰나와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꿈을 찾아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안개가 자욱이 뿌옇게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순간순간 좌절했다. 아픔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임용고시 시험을 5년 동안 처절하게 준비한 삶을 살았다.  5년이란 시간은 10년 이상의 내 영혼과 심신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그 시기엔  사랑스러운 아이들, 자상한 남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임용고시에 당당히 합격해 타인들에게 부러움과  박수를 받으며  정교사가 되어 교직생활을  멋지게 해내는 꿈만 그려나갔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 늦은밤 아이들 재우고 공부에 전념했다. 주말엔 아이들 밥만 차려주고 방으로, 또는 도서관으로 가서 시험공부를 했다.  only 시험 패스만이 내 삶의 주된 목표였다.  성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올랐다. 하지만  임용 합격의  큰 벽을 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올인해서 공부하는 아가씨 샘들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그래서 직장에 일하면서도 피곤이 몰려와도  잠을 줄여가면서 더 공부에 열의를 쏟았다.



'아... 책으로만 공부하면 안 되겠구나. 학원에 가서 강사의  강의를  직접 듣고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를 거야.'


라는 야심 찬 마음을 먹고 그  몇 백만 원하는 강의를 결재했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기고  방치한 채  도망치듯 나와 1시간  넘는 거리의  노량진 고시 학원을 오가며 공부했다.



노량진 학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숨이 막혔다.  절로 기가 죽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나 홀로  30대 중반 아줌마였다.  젊고 싱그러운 20대  아가씨 선생님들 속에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모르는 척  부끄러움도 잠시  공부에 매진했다. 오가는 전철 안에서 20과목이  넘는 교육 개념과 용어들을 외우고  누리과정의 목표와 구성 방향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공부하는 시간들이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사랑하는 아이들 내팽개치고  나 뭐하는 짓이지? , ' 지금,  여긴 어디? 난 누구지?', '나의 꿈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라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 후의 당당해진 내 모습만을 상기하며 그 어려운 마음을 이겨나갔다.

인내와 끈기만 장착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 , 내 최대의 장점은 인내와 끈기니까 버티자'를 되뇌며 끈을 놓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체력장 시험에서 철봉 오래 매달리기를 할 때였다. 친구들은 힘들다고 1분도 안되어서 툭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중간에 떨어진 적이 없다.  끝까지 남아 마지막까지 버텼다. 숨이 막힐 듯  턱까지 차올랐지만 오기로 버티고 또 버텼냈다. 그 마지막까지 견디는 자는  늘 나이고 싶었다.  체력점수에서  1급, 최고의 점수를 받고 싶었기에...



어릴 적부터 인정 욕구가 강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내가 기댈 곳,  살아갈 힘은 "인정, 칭찬"만이 유일한 방어기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인이었고, 아이 둘을 케어해야 하는 엄마였고, 아내이자 며느리라는 수식어가  많은 역할 부자 수험생이었다. 이 악조건을 이겨내고 싶었고, 일하면서도 공부해서 엄마는 꿈을 이뤄냈다 라고 아이들에게 좀 더 당당하게 꿈을 이룬 롤모델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 과한 욕심이었을까?



공부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수록 가정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큰아이는 사춘기에 돌입하면서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둘째 딸아이는 불안 애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 이해심을 장착한 남편도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면서 짜증과 불만이 섞인 모습을 자주 보였다. 모두들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자아가 쉼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든시기를 꼭 이겨내 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꼭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만이 가득했다.






결국 몸에 이상신호가 나타났고,  수술을 2차례 받고 나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동아줄처럼 잡고 있었던 임용의 끈을 놓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수년간 손때 묻은 전공서적들, 요약해놓은 노트들, 논술 프린트, 문제 프린트.... 들을 정리해야 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5년 이상의 고군분투하며 처절하게 공들인 시간들이 한낮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나의 유일한  희망의 씨앗이 바람에 흩어져 버린 것처럼...



혹독한 몸살과 성장통을 앓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좌절과 공허함 속에 허우적거렸다.

이  성장통을 이겨내기 위해 가까스로 찾은 돌파구가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힘들고 낙담된 마음을 풀어내면서 지난 과거와 서서히  화해를 시작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커가는  소중한  찰나들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겨주기로 했다.


무던히도 미워했던 나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안아주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마법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삶의 조각조각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후회와 아픔으로 점철되었던 과거의 순간을  아름다운 시간으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다 버리고 남은 그시간의 흔적들 이제는 살포시 미소가 지어진다

삶의 오아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  그 오아시스는 내가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다른 누가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 사회가 그어놓은 잣대의 마법에 맞추기 위해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예기치 못한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다. 만약 '왜 내 삶은 불행할까? 꼬이기만 할까?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마음이 불러일으킨 오해일 뿐이다. 누구의 인생이든 어떤 날은 좀 더 행복한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좀 더 불행한 날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새하얀 캔버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 캔버스 위에 어떤 색의 물감을 칠할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온전하게 나의 자유다. 다른 누가'이런 그림은 안돼'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나 자신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좀 더 해방시켜야 한다. 좀  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살아갈 희망을 찾길 바란다.


먼 훗날  이 세상과   '안녕'하는 날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소소한  행복을 되뇌며 추억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련다.


"충분히 애썼어, 넌 누구보다 눈부신 삶을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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